[의학신문·일간보사]
대한안과의사회 보험이사
지난 2월 1일 보건복지부는 ‘생명과 지역을 살리는 의료개혁’을 주제로 개최한 민생토론회에서 필수의료 정책 패키지를 발표했다. 이 발표를 보면 비중증 과잉혼합진료금지에 대한 내용으로 도수치료, 백내장수술이 있다. 이어서 3월 13일 의사집단행동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는 앞으로 불필요한 비급여 관리를 강화해 가겠다고 밝혔다.
대책본부에서 바라보는 재난 상황에 비급여 진료가 포함되어 있다. 그 일환으로 4월부터는 의원급 의료기관을 포함한 전체 의료기관 대상으로 비급여 보고자료를 제출받으며, 비중증 과잉 비급여에 대한 혼합진료금지정책 등을 대통령 직속 의료개혁특별위원회에서 지속적으로 논의할 예정이라고 한다.
의료행위는 급여와 비급여로 나누어 볼 수 있다. 건강보험이 적용되는 급여는 환자가 전체 치료비 중에서 일부만 비용을 부담한다. 비급여는 국민건강보험이 아닌 환자 본인이 진료비 전액을 부담을 하며, 이때 실손보험 가입자는 보험사에서 급여진료와 함께 발생하는 비급여 항목에 대해 본인부담금을 일정부분 지급해 준다. 현재 우리나라는 급여 항목의 범위가 좁고 원가에 한참 못미치는 가격을 책정하고 있어 건강보험 체제하에서 그나마 비급여 항목으로 의사들의 행위에 대한 보상이 어느 정도 유지되고 있다. 이런 보험사와 환자, 건강보험재정과 의료계의 이해관계 속에서 대한민국 비급여 시장은 2013년 17조원에서 2022년 32조원으로 2배 가량 증가하였다.
혼합진료라는 단어조차 생소한 진료 방식은 건강보험 급여 항목에 비급여 항목을 끼워서 진료하는 것에 대한 현 정부의 부정적 시각을 잘 보여주고 있다. 필수의료에서 필수라는 단어의 선택은 왠지 당연하고 정의로운 가치를 의사들이 지키지 않는 듯 비추고 있다. 마찬가지로 혼합이라는 단어는 부도덕한 행위를 의사들이 암암리에 시행하고 있는 듯한 느낌을 준다.
대한민국은 의료시스템상 거의 모든 진료 분야에서 혼합진료가 이루어지고 있다. 사실 허가된 의료행위마다 건강보험을 적용해 줄 수 없는 상황 속에서 환자의 건강과 안전에 반드시 필요한 의료행위들에 대해 부득이 비급여로 시행하는 것이다.
그런데 정부는 이러한 진료행위가 건강보험 재정을 악화시키고 환자의 의료비 부담을 가중한다는 이유만으로 마치 부도덕하고 과잉 지출을 조장하는 의료행태라고 단정하고 있다. 정부가 혼합진료 금지의 예시로 제시하는 도수치료, 백내장수술이 과연 의료개혁특별위원회에서 다루어야하는 우리나라 의료의 시급한 문제인가 하는 의문이 든다.
불필요한 의료행위는 의료기술로 허가를 내주지 않으면 된다. 의료행위라고 허가하고, 수요가 과잉되자 이를 억제하는 방향이 옳은 정책인지 의문이 든다. 국민의 건강을 생각하고 의료비 부담을 걱정한다면 의료행위로 인정된 항목에 대해서는 환자들에게 최소한의 부담이 돌아가도록 건강보험에서 보장을 해주고 그 범위를 고민하는게 맞다고 본다.
한정된 건강보험 재정으로는 날로 발전하는 의학기술과 새로이 인정되는 모든 의료행위를 다 보장하기 어렵기에 궁여지책으로 비급여라는 제도가 생긴 것이다. 지금까지 우리 정부와 의료계는 의학발전과 국민건강, 국가재정 등을 고려하여 적절한 균형을 이루어 왔기에 오늘날 대한민국이 의료선진국으로 발전할 수 있었다.
이러한 대한민국의 의료시스템에 느닷없이 정부가 환자 진료 및 치료행위를 급여나 비급여 어느 한쪽으로 편중되어 규정하려 하고 있다. 이는 다양한 질병의 치료 단계와 구성에 대한 여러 상황을 고려하지 않은 탁상행정으로 현재 의료현실과 거리가 멀게 느껴진다. 내과 시술 및 외과 수술 자체만 놓고 봐서도 경계가 불분명한 영역이 적지 않다. 급여와 비급여의 불분명한 영역들에 대한 경계를 명확히 하고 나서야 혼합진료 금지정책이 어느 정도 설득력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성급한 정책의 시행과 맞물려 발전하는 의료기술과 한정된 재정하에서 불분명한 경계에 대한 명확한 기준을 정하는 것에 대해 과연 누가 책임을 질 수 있을지 되묻고 싶다.
현재 정부의 실책은 혼합진료가 보험급여치료에 검사·재료·시술 행위를 다 포함한 것인지 명확히 규정하지 않고, 의료계를 배제하고 오로지 국민들에게 홍보만 하고 있는 것이다. 이번에 제기된 도수치료와 백내장수술도 자세히 보면 비급여로써의 실체가 다른데 과비용을 유발한다고 같이 묶어 규제하려 하고 있다. 대한민국 의료행위를 단지 비용과 재정으로만 통제하려는 의도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백내장수술의 경우는 인공수정체가 수술에 꼭 필요한 재료이다. 현재 기본적인 인공수정체보다 난시교정이나 노안교정 같은 기능을 보완한 기능성 인공수정체를 환자 본인이 원하는 경우에 비급여 재료로 환자가 추가로 비용을 부담하고 있다. 이는 환자의 개인적 만족만을 위해 시행하는 미용적 목적의 완전 비급여 수술 행위와는 다르다.
백내장수술은 비급여 인공수정체 사용여부와 상관없이 백내장의 수술적 치료가 필요한 상황에서 이루어지는 수술 행위이기 때문에 보험급여로 환자가 혜택을 받을 수 있게 해야 한다. 오히려 지금까지 받던 혜택을 환자들이 받지 못하게 된다면 대한민국의 의료가 역행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난시나 노안도 질환이기 때문에 난시나 노안교정까지 가능한 기능성 렌즈 또한 필수치료의 일부로서 급여로 환자들이 혜택을 받는 것이 당연하다. 여기서 국가 보험재정을 걱정한다면 그 재료만 비급여로 하는 혼합진료가 가능해야 함이 현재로서는 타당하다.
섣부른 급여, 비급여 혼합진료금지정책의 발표로 인해 환자의 건강상의 위해와 편익을 해치는 실험적 정책의 추진은 재논의 되어야 한다. 무조건적인 규제와 제한으로 환자들의 치료받을 권리를 침해해서는 안된다. 정부는 지속적으로 의료계와 보다 현실적인 대화와 협조를 통해 안정적인 보험재정의 확충과 운영에 힘써야 한다. 이를 통해 건강보험 재정의 악화와 그로 인한 피해를 우리 모두 그리고 다음 세대에 남기는 오류를 범하지 말아야 한다.
<최경섭 대한안과의사회 보험이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