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아니스트 김지훈의 ‘음악의 품격’ -26
[의학신문·일간보사]
헨 델Ⅱ
헨델은 오라토리오를 많이 작곡하였다. 오라토리오는 오페라와 비교했을때 제작비가 훨씬 적었고, 준비해야 하는 스태프들의 인원도 줄일 수 있었기에 오페라에 비해서 조금은 쉽고, 빠르게 무대를 준비할 수 있었다.
또한 영국 런던에서 오페라의 인기가 점점 식어가면서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오라토리오에게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눈치가 백단이었던 헨델은 진작에 오페라의 인기가 떨어지는 것을 캐치하였고, 새로운 대안으로 오라토리오의 작곡을 시작하였다. 참 똑똑하고 시야가 넓은 예술가였다.
보통 그 시대의 오페라들은 이탈리아어로 만들어진 작품들이 다수였기에, 영국에서 오페라를 즐길 때 항상 뭔가 자존심도 상하는거 같고, 찝찝한 느낌이 있었는데, 헨델이 영어로 오라토리오를 쓰게 되면서 영국인들의 니즈를 충족시켜 주게 되었고, 더 많은 사람들이 쉽게 받아들이고, 더욱 사랑하는 하나의 장르가 되었다.
헨델 오라토리오 영국인 니즈 충족
헨델은 꾸준히 오랜시간 오라토리오를 작곡하였고, 지금까지도 많은 합창단들이 그의 작품을 연주하고 있다. 이 오라토리오들은 헨델의 유명세를 더 만들어 주었고, 그의 인기를 길게 가져갈 수 있게 해 준 정말 중요한 장르이자, 헨델의 작곡실력을 유감없이 모두 펼칠 수 있는 그의 놀이터였다.
헨델의 오라토리오를 이야기 할 때 빠질 수 없는 작품이 있다. 바로 ‘메시아’이다. 이 작품은 현재도 전 세계의 합창단과 성가대에서 아주 많이 연주되어 지고 있는데, 이 메시아가 처음 세상에 나왔을 때는 어땠을까? 당시 작품이 발표되어 초연이 되면 1~3회만에 종료가 되어지고, 조금 인기가 있으면 5회 또는 7~8회 정도에서 마무리가 되어진다.
그러나 헨델의 오라토리오 ‘메시아’는 정말 뜨거운 호응과 사랑을 받았고, 10회, 20회, 100회를 넘어 그 시대부터 지금까지 3개월 이상 연주가 멈춘적이 없고 전 세계 어딘가에서 계속 연주되어지고 있다. 이러한 사실을 헨델이 알고 있다면 감동, 감사라는 단어로는 표현할 수없는 벅찬 마음의 울림이 있을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비행기나 기차도 없던 그 시대에 헨델은 독일에서 이탈리아, 다시 독일로 그리고 영국·독일 또다시 영국으로 많은 이동량이 있었고, 길에서 많은 시간을 보냈다. 여기에 끊임없는 곡 작업 등 체력적으로 힘든 일정들을 모두 소화하고 있는 헨델은 체력 하나는 타고났다. 크게 앓아 누운적도 없었고, 쉬는날 없이 소처럼 일만 했지만 그는 언제나 감사한 마음을 가지고 열정적으로 맡은 일들을 훌륭하게 해내었다. 타고난 건강함에 성실함 그리고 빠른 눈치에 힘입어 롱런 음악가로 자리 잡을 수 있었다.
영국 왕립아카데미 만들어 후학 양성
영국에서 왕립아카데미를 만들며 후학을 양성할 뿐 아니라, 본인의 음악철학과 작곡법 등 많은 이들에게 아낌없이 지원하였고, 음악가의 자세 등 귀중한 가르침을 많은 후배들에게 베풀었다. 물론 이렇게 잘 나가고, 끊임없이 바빴던 헨델을 미워하고, 질투하며 여러가지 방법으로 그를 괴롭히고 스트레스 받게 했던 인물들이 주위에 많이 있었지만, 헨델은 굴하지 않고 앞만 보며 강직하게 밀고 나갔다.
본인에 대한 믿음이 있었고, 자존감 덕분에 지치지 않고 일들을 할 수 있었다. 또한 파이터 기질도 있었기에 마음속에 쌓아 두기만 하지 않고, 실제로 주먹으로 싸움도 많이 하였다. 그리고 뒤끝없이 풀거나, 아예 보지않았다. 그는 열정남이었고, 불꽃같은 상남자였다.
헨델이 음악적으로 굉장히 열정 넘치는 모습을 보여주고 앞만 보며 달려갔던 가장 큰 이유는 바로 돈 때문이었다. 확실한 동기부여가 있었기 때문에 쉬지 않고 열심히 살았다. 빚을 크게 졌거나 가난해서가 아니라, 헨델은 더 인정받고 싶고, 더 높은곳에 오르고 싶었고, 더 유명해지고, 본인 금고에 돈도 더 많이 쌓고 싶었다.
주위에서는 고귀한 음악가라고 평하기보다는 금전욕에 사로잡힌 음악가라고 조롱하고 손가락질 하는 사람이 굉장히 많았지만, 결국 헨델의 작품을 만나고 나면 그래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누군가에게 존경받거나 롤모델은 아니었지만 실력으로 깔 수 없는 능력자였다. 이 훌륭하고 멋진 음악성 만큼은 당대의 바흐와 견주어도 절대 밀리지 않는 실력이었다.
이렇게 성공하기 위해서 욕심이 아주 많고, 욕도 많이 먹었던 헨델이었지만 그래도 가슴 한켠에는 따뜻한 마음도 있었다. 힘들게 지내고 있는 가난한 후배 음악가들을 위해 금전적인 도움을 기꺼이 자청했으며, 당연히 해야하는 사명으로 생각하고 꾸준히 도왔다. 또한 아픈 환자들을 위해서 지속적인 음악회를 열며 희망과 감동을 주었고, 치료를 위한 기부금도 선뜻 내어놓는 따뜻한 음악가였다. 일적으로 돈을 벌때는 악착같이 열심히 하고, 그 돈으로 힘들게 지내는 많은 사람들에게 베풀며 지낸 것이다.
이런 헨델에게 돈에 미쳐있다고 손가락질 하는것은 마땅하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이러한 일들이 꾸준히 이어지면서 영국 내에서 조금씩 헨델의 선행이 소문이 나고 사실을 알게 된 국민들은 독일에서 건너 온 이 음악가를 더욱 사랑하고 존경하게 되었다. 헨델이 세상을 떠나고 그의 장례식에 3천명이 넘는 많은 이들이 와서 추모를 했을 정도였으니 이 정도면 거의 국민 음악가라 할 수 있겠다.
그의 곡을 들여다보면 바로크시대의 걸맞는 기법들이 너무나도 훌륭하게 쓰여져 있다. 계속 들어도 지루하지 않고, 굉장히 세련된 느낌을 받게 된다. 이런 작품들을 굉장히 빠른 속도로 써 냈으며, 많은 곡들을 다양한 장르로 탄생시킨다. 시대가 원하는, 고용주가 원하는, 관객들이 원하는 모티브를 뽑아내고, 화성을 만들고, 곡을 완성시킨다. 거의 팩토리 수준으로 곡을 찍어내는 형식이었지만 그의 음악은 너무나 완성도, 퀄리티가 높아서 지금까지도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우리의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존재로 큰 부분을 차치하는 것이 어머니다. 음악의 어머니 헨델은 과거에도 지금도 앞으로도 음악사에 큰 부분을 차지하는 존재로 남을것이다.
-이달의 추천 음악-
Handel Messiah
헨델은 오라토리오 ‘메시아’를 불과 24일만에 완성하였다.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과 고난, 부활 후 승천에 대한 메시지를 담고 있다. 1742년 아일랜드 더블린에서 초연된 후 현재까지도 전 세계 공연장과 교회, 성당에서 쉬지 않고 연주되어지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