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학신문·일간보사=의학신문 ] 국민 건강권을 위한 성분명 사용, 왜 WHO(세계보건기구)는 권고하는가?
WHO는 환자의 안전과 합리적인 약물 사용을 위해 성분명 사용을 적극 권고하고 있다. 그 이유는 명확하다. 약의 성분명을 기준으로 처방·조제하는 것이 의약품 오남용과 약화 사고, 알레르기, 중복 복용을 줄이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기 때문이다.
한국의 의료현장에서도 상품명 위주의 처방으로 인해 의약품 사용 과오(medication error)가 반복되고 있다. 다음 두 사례는 단순한 착오가 어떻게 생명과 직결되는지 보여준다.
첫 번째 사례는 항경련제를 위점막 보호제로 착오 조제한 사례이다. 전간증(간질) 환자가 경련을 예방하기 위해 복용해야만 하는 항경련제 프로막(성분명: 발프로산, valproate) 대신, 이름이 유사한 위점막 보호제 ‘프로맥’(성분명: 폴라프레징크, polaprezinc)이 조제되었다. 해당 환자는 항경련제를 복용하지 못했고, 운전 중 경련을 일으켜 교통사고로 입원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성분명 처방을 통해 한 성분에 이름이 하나로 통일되어, 각각 성분명인 발프로산, 폴라프레징크로 되어 있었다면 이런 오류가 없었을 것이다.
두 번째는 상품명으로 인해 치명적 알레르기 의약품을 처방한 사례이다. 한 환자는 과거에 ‘잔탁’(성분명: 라니티딘, ranitidine) 복용 후 전신 알레르기 반응이 있었고, 병원 기록에도 해당 약에 대한 알레르기 정보가 명확히 기재돼 있었다. 그러나 이후 다른 브랜드인 ‘큐란’(성분명 동일: 라니티딘)이 처방·투약되었고, 결국 쇼크 반응으로 인한 뇌 손상, 사지 강직, 식물인간 상태에 이르게 되었다.
만약 이름이 성분명(라니티딘)으로 통일되어 있었다면 이런 치명적인 사고는 막을 수 있었을 것이다. 위 두 사례만 보더라도, 상품명 처방은 환자 안전의 가장 기초적인 장벽조차 무너뜨릴 수 있다. WHO에서 환자 안전을 위해 성분명 사용을 권장하는 이유이다.
건강보험 재정 절감, 성분명 처방은 '국민이 납부한 보험료'를 지키는 정책이다. 최근 많은 국민들이 국민연금, 건강보험 등 사회보장 재정의 지속가능성에 대해 우려하고 있다. 고령화가 가속화되는 지금, 국민이 낸 건강보험료가 새고 있는 곳은 없는지 점검할 시점이다.
그중 하나가 바로 ‘상품명 중심의 고가 제네릭 약가 구조’이다. 2024년 국정감사에서 김윤 의원은 "특허가 만료된 제네릭의약품에도 40% 이상 거품이 끼어 있으며, 우리나라는 미국·영국·독일·프랑스보다도 특허만료 약에 매년 4조원 이상 더 많은 재정을 쓰고 있다"고 지적했다.
의약품정책연구소는 성분명 처방으로 다음과 같은 건보료 절감효과를 예측하고 있다. △OECD 평균보다 훨씬 높은 현재의 약가제도 하에서도, 성분명 처방시 최대 연간 7조 9000억원 절감 가능 △사회경제적 효과(불필요한 위장약 처방, 약화 사고, 리베이트 감소 등) 포함하면 연간 9조 3614억원 절감 가능. 심지어 이는 폐의약품 처리 비용이나 환경비용을 제외하고도 달성할 수 있는 수치이다.
국민 개인의 예시를 들어본다. 예를 들어, 알츠하이머(치매) 치료제 도네페질(10mg)의 경우 동일 성분임에도 최저가는 544원, 최고가는 2460원으로 5배 가까운 가격 차이가 존재한다. 하루 1정 복용 기준으로 연간 약 70만원의 차이가 나고, 고용량 복용자나 장기 복용자라면 부담은 수백만 원 이상으로 늘어난다. 결국 이 차이는 환자 본인뿐만 아니라, 국민 전체가 건강보험 재정을 통해 함께 부담하게 되는 구조이다.
‘도네페질’이라고 성분명으로 적혀있었다면 환자가 선택할 수 있지만, ‘2460원짜리 A 회사 제품을 드세요’라고 지명했기 때문에 건강보험료가 새고 있다.
성분명 처방은 약사를 위한 제도가 아니다. 국민을 위한, 국민이 주장해야 할 공공정책이다. 성분명 처방은 환자의 알 권리, 건강권·재정권을 회복하는 일이다. 이는 약사를 위한 특혜가 아니다. 환자가 어떤 약을 먹는지 알고, 더 안전하게, 더 합리적인 가격에 복용할 수 있도록 돕는 정책이다.
성분명 처방은 정부와 국회가 국민을 위해 추진해야 할 시대적 과제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국민 스스로가 지지해야 할 권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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