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아니스트 김지훈의 ‘음악의 품격’ -25

김지훈의 음악의 품격

[의학신문·일간보사]

헨 델

음악의 아버지라 불리는 독일의 위대한 음악가인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와 함께 바로크 시대를 이끌어간 음악계의 대가이자 거장이라 할 수 있는 게오르크 프리드리히 헨델(Georg Frideric Händel, 1685.2.23-1759.4.14)도 바흐와 같은 해에 독일에서 태어났다.

너무나도 비슷한 점이 많은 두 음악가이지만 바흐는 평생 독일을 떠나지 않고 활동하였고, 헨델은 너무나도 독일을 떠나고 싶어했으며, 결국은 영국에서 활발하게 활동하였다.

보통 헨델을 표현하면 ‘음악의 어머니’라고 할 정도로 바흐와 양대산맥으로 평가되어 지고 있다.

헨델 (출처: Google)
헨델 (출처: Google)

헨델은 많은 작품을 세상에 내놓았지만 특히나 오페라와 오라토리오 작품들을 많이 썼고, 그의 대표적 작품 중 ‘메시아’는 매년 연주되는 작품이다. 그 만큼 우리는 헨델의 음악을 매년 듣고 있었고, 친밀하게 지내왔다.

평소 자존감이 굉장히 높았던 헨델은 독일에서 지내며 나름 음악활동을 열심히 하고 있었다. 나의 음악을 알리고 나의 재능을 펼치기에는 이 독일이라는 나라는 작다는 생각을 늘 하고 있었던 헨델은 독일을 떠나서 넓은 시야로 음악을 봐야겠다는 결심을 하고 이탈리아로 유학을 가게 된다.

극음악과 오페라를 너무나 사랑해서 더욱 유학을 결심하게 된다.

유학을 가자마자 그는 오페라 ‘로드리고’라는 작품을 만들고 피렌체에서 초연을 하게 되는데, 이 공연은 대성공을 거두게 되며, 헨델이라는 이름을 이탈리아에 알리게 되었다. 그는 재능이 뛰어났고 천재적인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는 독일인이었지만 이탈리아에서 사랑받는 작곡가였기에 헨델은 만족하며 더욱 힘을 내서 좋은 작품들을 썼고, 계속 발표를 하고 열심히 활동하였다.

헨델은 이탈리아에서 유학을 하며 굉장히 중요한 인물을 만나게 된다.

그 당시 독일의 중심이었던 하노버 왕실의 실세를 만나게 되면서 스카우트가 되었고, 하노버 왕실의 음악감독이 되어 좋은 대우를 받고 고국으로 다시 돌아왔다. 유학시절 뿐 아니라, 평소 영국에서 음악활동을 하고 싶은 마음을 품고 있었던 헨델은 독일로 다시 오고 싶지 않았지만 스카우트 조건이 워낙 좋았고, 나의 실력이면 언제가는 더 좋은 기회와 조건으로 영국을 갈 수 있을거라는 생각을 하였기에 헨델은 스카우트 조건에 하나 더 추가를 하면서 하노버에 오게 된다.

헨델이 제시한 조건은 휴가 때마다 런던에 가는 거였고, 이것은 그리 어렵지 않게 왕실의 승인을 받게 된다. 이렇게 헨델은 휴가시즌이 되면 영국으로 가는데 이 여행은 단순히 휴가를 즐기기 위해서 가는것이 아니라, 새로운 일자리를 찾고, 본인의 작품을 알리는 시간을 만들기 위해서였다.

철저히 계획된 휴가였던 것이다. 2월 휴가 때 런던으로 간 헨델은 본인이 미리 심혈을 기울여 만든 오페라인 ‘리날도’를 무대에 올리고 이 오페라가 대성공을 거두게 되면서 10회 이상 앙코르로 올려지는 쾌거를 이룬다. 이로인해 영국 런던에서 헨델의 이름이 알려지는것 뿐 아니라, 대스타가 되면서 영국 왕실의 관심도 받게 되며 헨델의 목표가 거의 이루어져 가고 있었다. 그는 이곳에서의 이 관심과 기쁨을 누리며 눌러 앉고 싶었지만 독일로 돌아가야 했기에 무거운 발걸음은 하노버 왕실로 다시 향할 수 밖에 없었다.

하노버 왕실의 음악감독을 하면서도 헨델의 머릿속에는 오로지 런던에서의 생활만 가득 차 있었다. 어떻게하면 독일에서 떠날 수 있을까 고민했지만 좋은 방법이 떠오르지 않았다.

휴가시즌은 아니었지만 다시 영국에 가기 위해 헨델은 하노버 왕실에 금방 돌아온다는 약속을 하고 떠나게 된다. 잔뜩 신이 난 헨델은 그 당시 영국 국왕인 앤 여왕께 선물을 준비한다. 여왕을 위해서 곡을 썼는데 제목이 ‘앤 여왕님의 탄생을 위한 송가’였다. 너무나 속이 들여다보이는 아부성 작품 이었지만 워낙 작곡 실력도 좋고, 최선을 다해서 썼기에 이 작품은 앤 여왕의 마음을 사로 잡을 수 있었고, 헨델은 이 작품을 통해서 큰 돈을 하사 받고 영국에서 생활하게 된다면 큰 어려움 없이 지낼 수 있을거란 생각이 들었다.

또한 굉장히 중요하고 큰 국가적 행사가 있을때에는 헨델에게 곡을 의뢰하기도 하였는데, 이때마다 그의 작품들은 히트를 치고 높으신(?) 분들의 마음을 빼앗기에 충분했다. 이러다보니 헨델은 생각이 많아지게 되는데…

이곳 런던은 하노버보다 훨씬 크고 좋은 무대이며, 대우도 더 좋고, 내 꿈을 펼치기 위해서는 평소 너무나도 갈망했던 이곳에 머무는게 좋을거라는 결심을 하며, 배신자의 모습으로 변신을 한다.

결국 독일로 돌아가지 않았고 금방 돌아오겠다고 약속한 헨델에게 하노버 왕실은 극대노 하였으나, 헨델은 그러든지 말든지 영국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하게 된다. 이 선택은 헨델을 곤경에 빠뜨리게 된다.

헨델을 적극적으로 지지하고 후원해주었던 영국 앤 여왕이 세상을 떠나게 되면서 앤 여왕에게는 자녀가 없었기에 하노버 왕국의 선제후가 영국 국왕으로 즉위를 하게 된 것이다.

이렇게 되면서 하노버 왕실 음악감독직을 무단 이탈하고 영국에서 지내고 있는 헨델은 굉장히 곤란한 상황에 놓였고, 불편한 관계로 지낼 수 밖에 없었다.

이 때 헨델은 본인의 똑똑한 머리로 한 가지 방법을 생각해 낸다. 바로 새로 즉위한 왕을 위해서 정말 끝내주는 작품을 만드는 것이었다.

헨델의 수많은 작품들 중 굉장히 작품성이 높고 유명한 곡인 ‘수상음악 모음곡’이 이 때 작곡이 되어진다. 이 수상 음악은 제목 그대로 물 위에서 연주하기 위해 작곡된 음악으로, 새로 영국으로 온 국왕을 위해 본인의 배신자 행동(?)을 용서받기 위해서 헨델은 연주자들을 배에 태워서 음악회를 하도록 시켰다. 하노버에서 온 새로운 국왕을 위해 아부성 작품을 만들게 되었는데, 이 작품은 대성공을 거두었고, 헨델에게 증오심을 가지고 있었던 국왕의 마음도 풀리게 되었다. 이 작품 덕분에 핸델은 영국에서의 음악활동을 지속할 수 있었고, 더 좋은환경에서 작품도 쓸 수 있었다.


-이달의 추천 음악-
Handel Water Music Suite

템스강에서 초연된 이 곡은 크게 3개의 모음곡으로 나눌 수 있고, 오케스트라 규모의 곡이다. 큰 배에 50명정도 되는 연주자들의 연주는 너무나 멋졌고, 국왕은 크게 흡족하며 앙코르 공연을 요청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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