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학신문·일간보사] 희귀질환자에게 치료의 ‘골든타임’은 생명을 결정한다. 특히 ‘비정형 용혈성 요독증후군(aHUS)’이라 불리는 신장질환은 발병 후 2~3일 안에 치료를 시작해야 생명을 지킬 수 있다. 이 시기를 놓치면 평생 혈액투석에 의존하거나, 심한 경우 목숨을 잃을 수도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현실은 다르다. 이 질환의 유일한 치료제인 에쿨리주맙(Eculizumab)은 ‘사전심사 대상 약제’로 지정되어 있어, 건강보험 적용을 받기 위해서는 사전 승인 절차를 반드시 거쳐야 한다.
공식 심사기간만 최소 14일, 의사가 진단서, 검사결과, 소명자료 등 수십 장의 서류를 준비하는데도 적잖은 시간이 필요하다. 병원 내부 행정 절차까지 포함하면 실제 투약까지는 훨씬 더 긴 시간이 소요된다.
이러한 제도는 환자의 생명을 사실상 ‘기다리게’ 하고 있다. 치료가 시급한 희귀질환 환자에게 지금 필요한 건 심사가 아니라 즉각적인 치료다.
문제는 단지 시간 지연뿐만이 아니다. 의료현장에서는 같은 약임에도 질환에 따라 승인율이 크게 다른 불합리함도 지적된다. 실제로 aHUS 치료를 위한 에쿨리주맙신청 승인율은 36.4%에 불과한 반면, 다른 질환에서는 거의 모든 건이 승인되는 사례도 있다.
치료 필요성은 현장에서 가장 잘 알고 있는 의사와 환자에게 있는데도, 현재 제도는 행정기관의 재정 기준이 임상적 판단보다 우선시되는 구조다. 생명보다 비용을 먼저 따지는 구조라는 비판이 나올 수밖에 없다.
다른 나라는 다르다. 미국은 ‘가속 승인’, 영국은 ‘조건부 급여’, 일본은 ‘조건부 조기승인’ 등, 환자에게 먼저 약을 투여하고 이후 평가하는 방식으로 환자의 치료 기회를 보장하고 있다. 생명을 위한 골든타임을 제도가 지켜주는 것이다.
국민권익위원회는 이러한 문제를 개선하기 위해 ‘선(先)치료, 후(後)심사’ 방식 도입, 심의체계의 전문성 강화, 희귀질환 치료제에 대한 재분류 체계 마련 등을 관계기관에 권고할 예정이다. 제도는 사람을 살리기 위해 존재해야 한다. 더 이상 환자의 시간이 멈추기 전에, 제도가 먼저 바뀌어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