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개월 만의 복귀…의대생·전공의 교육·수련 환경, ‘뉴노멀’로 재설계해야
수련 연속성 보장 최우선 돼야…교수 업무부담↓·교육 전담 교수 필요성 제기도

지난해 의대증원 2000명으로 촉발돼 12월 비상계엄으로 최고조에 이르렀던 의정갈등이 1년 6개월째 계속되고 있지만, 최근들어 의료정상화를 위한 의정간 대화 분위기속에서 빠른 변화를 맞고있다.

지난 6월 정권교체로 이재명 정부가 들어서고, 7월 의사 출신 정은경 보건복지부 장관이 취임하면서 ‘의정 신뢰회복’이 전면에 부상했으며, 의대생 복귀 선언과 전공의의 수련병원 복귀 움직임 등 실질적인 갈등봉합에 대한 기대감이 높아지고 있다.

그러나 누구도 신뢰 회복이 즉각 ‘행복한 엔딩’으로 이어진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신뢰는 본격적인 문제 해결을 위한 최소한의 전제로, 본격적인 ‘의료정상화’는 출발선에 서지도 못 한 것이다.

의정사태는 단순한 사회적 충돌을 넘어, 현행 의료제도의 근본적 문제를 드러낸 만큼, 이번 정책 재설계가 향후 의료계 뿐 아니라 국민 건강에도 큰 영향을 미칠 것으로 전망된다.

이에 의학신문은 의료계에 당면한 과제를 살펴보는 한편, 전공의·의대생부터 의대교수, 의료기관까지 의정사태의 의료계 당사자들로부터 '뉴노멀(New Normal)'에 대한 현장의 목소리를 담았다.

<글 싣는 순서>

①출구 보이는 의정사태, 남은 과제는?
숫자로 본 ‘의정사태 1년 6개월’

②현실에 막힌 젊은 의사들, 미래는?

③의정사태 또다른 주인공, 의대교수들이 바라본 숙제들

④공공성강화, 달라지는 의대병원 생존전략

⑤개원가가 맞이할 새로운 의료환경은?

⑥의-정 '폭삭속았수다' 하지만 이제부터 시작이다

[의학신문·일간보사=정광성ㆍ최진욱 기자] 지난해 2월 시작된 의정갈등은 의대 교육과 전공의 수련 시스템을 뿌리째 흔들었다. 의대생들은 집단 휴학했고, 전공의들은 사직서를 내고 병원을 떠났다.

그로부터 1년 6개월, 의대생 복귀와 전공의 복귀 준비가 본격화되고 있지만, 현장은 단순히 시계를 되돌릴 수 없다는 데 의견이 모인다. ‘뉴노멀’에 맞춘 새로운 교육·수련 시스템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8월을 기점으로 의대생들이 복학을 시작했고, 전국 40개 의대들은 각자 교육 환경에 맞춰 학사 계획을 만들고 있지만 학사 운영은 여전히 혼란스러운 상태.

의대생 A대표는 “학교마다 1학기와 2학기 과정을 병행하거나, 계절학기와 특별학기로 나눠 운영하는 등 방식이 제각각”이라며 “성적 산출, 장학금 지급 같은 행정적 문제도 남아 있다”고 말했다. 특히 그는 “24·25학번이 한 학년에 몰리는 ‘학번 적체’ 문제는 시급히 해결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의대생들이 우려하는 학번의 적체 문제는 결국 ‘수련 연속성 보장’에 대한 우려를 낳고 있으며, 복귀에 시동을 걸고 있는 전공의들 역시 이를 최우선으로 해결돼야 할 문제로 생각하고 있다.

이 같은 상황에서 일부 상급종합병원이 복귀 전공의들의 제한적 수용을 검토하고 있다는 말이 나오며 전공의들의 복귀의 장애물이 되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나오기도 했다.

B사직 전공의는 “전공의 수련재개 논의 과정에서 일부 상급종합병원이 제한적 수용을 검토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라며 “가득이나 필수과 전공의들이 부족한 상황에서 수련을 축소하는 것은 수련 연속성에 대한 우려와 함께 복귀를 어렵게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복무를 마치고 전공의로 돌아가야하는 공보의들 역시 수련 연속성의 보장의 필요성을 강조하며, 제도적인 장치 마련을 요구했다.

C공보의는 “의정 갈등으로 수련이 중단된 채 입영한 공중보건의사의 36.6%가 고년차 필수의료 전공의로, 의도치 않게 군복무 3년간의 공백이 발생한 상황”이라며 “병역법 시행령 개정 등 제도적 장치로 수련 단절을 방지해야 한다”고 말했다.

더 나아가 공보의들은 3년이라는 공중보건의·군의관의 복무기간을 현역병 수준으로 단축해야 한다는 의견을 제시하기도 했다.

C공보의는 “매달 수백 명의 의대생이 현역으로 입대하며, 군 의료자원 체계가 불가역적으로 붕괴되고 있는 심각한 상황”이라며 “복무기간 단축은 문제를 해결할 유일한 방법이자, 의정갈등으로 배출되지 못한 의사들의 조기 배출을 통한 의료 정상화에도 기여할 수 있다”고 제언했다.

또한 전공의들 사이에서 피교육자가 아닌 노동자로 여기던 열악한 수련환경 역시 개선돼야 한다는 의견도 제기됐다.

D사직 전공의는 “전공의 과정은 교육보다는 노동의 성격이 강하다고 느낀다. 인턴으로 근무할 당시 주 80시간 중 75~78시간을 근무했다”며 “미국은 레지던트 근무시간을 주 80시간 ‘최대’로 규정하지만, 한국은 사실상 ‘최소’ 기준처럼 운영된다. 식사·휴게 시간조차 보장받지 못하고, 연차도 강제로 일정 기간에 몰아 쓰는 환경”이라고 꼬집었다.

실제 해외의 경우 미국은 수련시간을 최대 주 80시간, 과별 40~60시간 탄력적으로 운영 중이며, 영국은 주 48시간 캐나다는 전공별 주 60~80시간을 기준으로 삼고 있으며, 다만 수련기간에서는 차이가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어 D사직 전공의는 “전공의 교육과정에 있어서 여태까지 교육보다 노동의 관점에서 봤던 것 같다”며 “이번 사태 이후 노동자에서 피교육자로서의 인식의 전환이 이뤄지지 않을까 생각된다”라고 덧붙였다.

아울러 전공의에 대한 피교육자로의 인식전환과 더불어 의대교수들의 업무 부담을 줄여 교육에 전념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줄 필요가 있다는 목소리도 나왔다.

E사직 전공의는 “의대 교수들은 교육·연구·진료를 동시에 수행해야 해 일반 교수에 비해 업무 부담이 크다”며 “각 대학에 교육 전담 교수를 두고, 의학 교육학과의 역할을 전국적으로 확대해 교육의 질을 높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현장의 교수들도 단순 복귀만으로는 이전의 환경을 재현할 수 없다며, 이 같은 의견과 결을 같이했다.

수도권 대학병원 F교수는 “전공의 수련환경 개선을 말하고는 있지만, 근무시간 제한이나 필수의료 전공의 사법 리스크 완화 같은 구체적인 제도 설계가 없다”며 “정책적 세부 설계 없이는 상황이 반복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또 그는 “전공의들의 근무 시간이 줄면, 그만큼 전문의와 교수 인력이 진료와 교육 공백을 메워야 한다”며 “전임교원 확보와 PA 등 진료지원 인력의 병행이 필수”라고 조언했다.

한편 젊은 의사들은 합리적인 의료 정책이 나올 수 있도록 정부와의 소통을 이어나가겠다는 의지를 피력했다.

G의사는 “정부에 대한 신뢰가 무너진 것은 사실이지만, 정책이 합리적 방향으로 나아가려면 소통이 단절돼서는 안 된다”며 “끊임없이 의견을 전달하고 소통을 이어갈 것”이라는 의지를 피력했다.

이어 그는 “이 과정에서 특혜를 요구하는 것으로 비춰질 수 있지만, 전 정부의 잘못된 의료정책 추진을 바로잡기 위한 과정으로, 국민들의 이해를 바란다”며 “전공의의 잘못에 대한 양해를 바라는 것은 아니다”라고 덧붙였다.

3부-<의정사태 또다른 주인공, 의대교수들이 바라본 숙제들>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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