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성호 이사 “인지부하-디지털피로 새 부담요인…전문가 중심 성능 모니터링 지속 필요”
[의학신문·일간보사=오인규 기자] 최근 의료 AI(인공지능)가 점차 고도화되면서 전문의를 넘어서는 정확도를 기록했다는 국제학술지 결과들이 나오고 있지만, 정작 가장 널리 활용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 영상의학 분야에 진단보조에 있어서도 의료 AI가 아직 잠재력 수준을 넘지 못하고 있다는 학회의 묵직한 메세지가 나와 주목된다.
대한영상의학회(회장 정승은)는 지난 17일 가톨릭의대 의생명산업연구원에서 환자와 의료진을 위한 진단보조 인공지능의 적절한 적용 포럼을 개최했다.
이날 학회 박성호 편집이사(서울아산병원)는 ‘진단보조 인공지능은 환자와 의료 개선에 도움을 주고 있는가?’라는 주제 발표를 했다.
박성호 편집이사<사진>는 “그동안 많은 연구를 통해서 통제되거나 제한된 연구 환경에서는 AI가 환자 의료 개선에 도움을 줄 잠재력이 확인된 것은 사실”이라며 “그런데 잠재력 단계를 넘어서 실제 진료에 널리 보급돼 개선 효과를 보여준 사례는 아직 드물다”고 말했다.
그동안 의료 분야 AI에 대해 △비전문가가 AI를 사용함으로써 전문가와 비슷한 수준이 된다 △의료인의 업무 부담을 낮추고 이를 통해서 번아웃을 방지한다 △궁극적으로는 의료의 결과를 향상시킨다 등 기대감이 있었다고 밝혔다.
하지만 박 편집이사는 “그동안 수많은 연구 및 사용 경험을 통해서 얻은 교훈은 현재 진료에 단지 AI를 더하는 것만으로는 이러한 기대가 충족되기는 어렵다는 사실”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먼저 비전문가에게 그냥 AI를 주면 전문가처럼 되라는 보장이 없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대비책으로 AI는 가급적 전문가를 통해 사용하도록 해야 하며, 의학/의료와 AI 사용 모두에 대한 충분한 교육과 AI 결과의 해석/이해를 도와주는 기술 개발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또한 워크플로우 개선 효과도 의문을 던졌다. 중국 1143개 병원을 대상으로 이뤄진 한 AI 사용과 영상의학과 의사 업무 관련 번아웃 간 상관관계 연구를 바탕으로 AI를 사용하는 경우와 안 하는 경우를 비교한 결과 AI를 많이 사용할수록 번아웃 빈도가 유의하게 높았다는 것.
건강검진과 같은 특별한 상황이 아닌 일반적 진료환경에서는 AI 결과 확인으로 인한 ‘인지부하’와 ‘디지털피로’ 증가가 새로운 부담요인이 됨을 시사했다.
박 편집이사는 “AI를 통해 기대하는 효과를 제대로 거두기 위해서는 인간과 AI 사이의 상호작용에 대한 보다 심도 있는 이해가 필요하고, 이를 바탕으로 세밀하고 과학적으로 도입을 해야 한다”며 “적절한 전문가를 통해서 AI를 활용하는 것이 바람직하고, 전문가에 의한 지속적인 AI 성능 모니터링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발표를 마치며 박 편집이사는 “이러한 요소들을 간과 및 생략한 환자/진료 중심적 고려가 아닌 금전적 이익 등을 강조한, 근시안적 도입은 AI 보급에도 궁극적으로 부정적 영향을 미칠 것이며 환자에게 위해가 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효과 없을 경우 퇴출 시스템 갖춰야, 돈 되니까 쓸 것이라는 태도도 문제"
한편 이밖에도 의료AI의 실제 의료현장 도입을 위한 고려사항은 어떤 것들이 있을까?
이날 국내에서 의료AI 진단 보조 프로그램을 가장 많이 활용해봤다고 본인을 소개한 정승은 회장(은평성모병원)은 병원 신속대응팀과 함께 입원 환자의 전자의무기록(EMR) 등에서 수집한 활력징후를 기반으로 위험 예측 정보를 제공해 사전 조치를 돕는 AI 솔루션을 활용하면서, 일부 환자 경우에서 많은 도움을 받은 것을 확인했다고 언급했다.
정 회장은 “분명히 도움을 받는 부분도 있었고, 환자 사용에 불필요할 경우 도입과 구독 등에서 투입비용이 발생하기 때문에 시장서 자연히 도태되겠지만 확실히 퇴출할 수 있는 시스템도 갖춰야 한다”며 “프로페셔널인데 당장 비급여고 돈이 되니까 필요 없는 걸 계속 쓸 것이라는 태도도 너무 성악설에 기본이 된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여전히 정확성 보다는 본인의 판단과 일치했을 때 얻는 심적 부담을 덜어주는 부분을 주목하고 싶다. 다만 의료 행위 자체가 다양한 가능성이 있고 병원별 의사별 환자별로 다르기 때문에 일률적으로 얘기하기는 어렵다”며 “영화 ‘엘리시움’과 같은 세상이 오려면 아직 (갈 길이) 멀었다”고 덧붙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