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학신문·일간보사]
새벽의 여신 에오스가 오른손으로 백합꽃 향기를 살포시 쥐고, 장밋빛 선명한 왼 손가락으로 밤의 장막을 집어 하늘로 사무치게 걷어 올린다. 저 멀리 부드러운 황금빛 지평선. 곧이어 태양신 헬리오스가 빛을 한껏 비추면 세상엔 아침이 가득해질 것이다. 프랑스 사실주의 화가 아돌프 부그로는 여성 몸태의 아름다움과 우아함을 존중하면서, 새벽에서 아침으로의 부드럽고 섬세한 깨어남을 백합화 향기 모으듯 포착한다.
여느 때처럼 어둠을 거두던 어느 날, 에오스는 트로이 왕자 티토노스를 만난다. 사랑에 빠진 그녀는 티토노스를 납치하여 세상의 조용한 끝으로 가 자식을 낳고 산다. 그러나 사랑의 불꽃 사이로 어른거리는 현실을 깨닫는다. “나는 신이지만, 그는 인간이어서 죽어야 하지 않는가.”
제우스를 찾아가 티토노스의 영생을 간청한다. 그러나 장밋빛-밤을 거두는 손가락의- 사랑은 눈을 멀게 했을까. 인간 세상에 넘쳐흐르는 늙음, 바로 닥칠 그 늙음을 못 보았다. 목숨의 길이 연장에 집착하여, 젊음의 불길이 꺼지지 않게 해달라는 청을 잊는다. 제우스는 그녀의 간절한 청에 철저히 충실하게, 불멸을 허락한다. 결국 무한한 늙음을 준다.
세월이 쌓여가자, 티토노스는 어쩔 수 없이 시들어간다. 기력이 떨어져 점점 낡아가는 흉하게 쪼그라든 사지와 허물어진 의지는 그를 꼼짝 못 하게 한다. 거동 못 하고 스스로 일상을 거둘 수 없으면서도, 죽을 수 없어 고통스러워하는 사랑을 차마 지켜볼 수 없다. 또한 자신의 짧았던 생각에 슬피 낙담하며 그를 골방에 가둔다. 티토노스는 더 쪼그라들고, 쇠하며 희미하게 스러져 가는 목청으로 끊임없이 중얼거린다.
“에오스, 에오스, 불멸의 은총을 찾아줘.” 한참 뒤, 골방 문을 열어보니 티토노스는 간데없고 매미 한 마리가 울고 있다. 제우스의 측은지심이 변신시킨 불멸의 티토노스는 여전히 중얼거리고 있다. 물론 매미 소리로, “맴 맴”
새벽의 여신 에오스의 연인 티토노스는 왜 하필 매미로 변신했을까. 언뜻 플라톤이 쓴 ‘파이드로스’의 한 대목이 떠오른다. 매미 떼 맴맴거리는 강둑에서, 소크라테스는 제자 파이드로스와 대화한다.
“매미는 원래 사람이었다. 먼 옛날, 최초의 뮤즈는 그들에게 노래를 들려주었다. 노래에 빠진 그들은 먹고 마시고 자는 것을 잊고 죽어갔다. 뮤즈는 그들에게 먹지 않아도 자지 않고도 살 수 있는 혜택과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노래하는 선물을 주었다. 매미는 노래하며, 그들의 노래가 인간을 게으르게 만드는지, 아니면 노래의 달콤한 유혹을 견뎌낼 수 있는지 지켜보고 있다.”
매미는 허물을 벗고 우화(羽化)하며 이전과 다른 꼴로 살아간다. 이런 생태 특징 때문에, 동서양 모두에서 매미는 재생·부활 심지어 동양에선 탈속(脫俗)의 신선으로까지 상징화되었다. 특히 동양의 선비들은 이슬을 먹고 사는 청렴과 처소 없이 지내는 검소와 때가 되면 죽음을 맞는 신의를 갖춘 매미를 군자의 표상으로 여겼다.
동서고금을 넘나드는 제우스가 이런 사정들을 모를 리 없었을 게다. 절절한 사랑을 누구보다 잘 아는 애처로움이, 재생하고 부활하여 쉴 새 없이 연인의 이름을 부르는 매미로 바꾸었으리라. 그 후 에오스는 매미 울음을 들을 때마다 사랑했던 인간, 티토노스를 그리워했다.
장밋빛 동살이 빌딩과 빌딩 사이를 지나 진료실에, 의료계 뜰 안에, 새벽으로 스며든다고 무엇이 바뀔까.
해결해야 할 안타깝고 답답한 문제들은 겨울 나목의 가지처럼 매서운 찬바람에 떨고 있는데, 아끼고 아끼는 의업의 고갱이만이라도 훼손되지 않기를 바라는 간절한 소망을 이룰 수 있을까. 큰 목소리로 외치고, 억센 험상으로 떨쳐 보인다고 이루어질까.
먼저, 에오스처럼 사랑이란 이름 하나로 덤벙대며 구하지 말자. 정작을 빠뜨리기 십상이다. 무엇을 구할지 새벽 햇살을 한 가닥 한 가닥 차분히 헤아려보자.
그러다가 혹여 만에 하나라도 매미가 되어, 되돌릴 수 없는 불사의 수레바퀴에 매달려 울어야 한다면, 누구에게도 지청구를 퍼붓지 말자. 수레바퀴는 저절로 굴러간다. 누가 굴리는 게 아니다. 노후한 목소리로 스러져가는 ‘에오스 에오스’는 신음일 뿐이다. 바퀴 회전 속도에 운율 맞추어 노래 부르자. ‘맴맴’ 부활이 재생하고 재생이 부활하도록 ‘맴 맴’ 고작 열흘 남짓이라도 제대로 하늘 보고 살 결기로, 십여 년이고 땅속에서 뿌리의 수액으로 목축이며, 불멸의 은총을 만끽하자. ‘맴 맴’ 귀 어지러운 이들에겐 신음으로 들릴지라도.
세월의 진한 은빛 수레바퀴로 아침은 어김없이 밝아 온다. 새 아침은 지난해의 허물을 벗은 새로운 아침을 부르는 이름이다. 되도록 알몸으로, 껍질을 벗고 맞는 그 아침만이 새 아침이라 불릴 값어치가 있다. 새 아침을 갈망하는 새벽, 영국의 계관시인 알프레드 테니슨의 시 ‘티토노스’의 마지막 부분을 떠올린다.
그러면 아침마다 너의 아름다움을 새롭게 할 것이다.
나는 땅속의 땅에서 이 텅 빈 안뜰을 잊고, 그리고 너는 은빛 바퀴로 돌아온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