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의사회 중심 의료·요양·돌봄 구축 필요

[의학신문·일간보사]

조현호 대한개원의협의회 의무부회장
조현호 대한개원의협의회 의무부회장

2024년 2월 정부의 일방적인 의대정원 증원 추진으로 촉발된 의료대란 문제의 해결이 아직도 요원한 상태다. 사태 초기 국민 여론이나 언론에서 의사들의 주장에 대한 공감은 찾아볼 수 없었고, 기득권 지키기라는 비난이 압도적으로 많았으며, 지금은 많이 달라졌지만 그렇다고 완전히 우호적으로 상황이 바뀐 것은 아니다. 환자나 국민들이 직접 접하는 개별 의사들에 대한 신뢰도는 상당히 높지만, 의료계 전체는 여전히 돈만 밝히는 직역으로 매도당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OECD 의사들 평균 노동 강도보다 3배 이상의 엄청난 업무량을 수행하고 있는 대한민국 의사들이 왜 이렇게 국민 신뢰를 잃은 직역이 되었을까? 여러 원인들이 있겠지만, 가장 큰 이유는 변화하는 시대 정신에 부합하는 역할수행의 부족이다.

대한민국은 건국 이래 지속적으로 다이내믹한 격변의 시대를 겪어 왔다. 그동안 변화하는 시대상에 요구되는 역할을 의료계가 과연 선도적으로 충분한 강도로 수행했는지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우리나라는 이제 베이비부머 세대의 본격적인 노령화로 2017년 말 고령사회(노인비율 14%) 진입 이후 7년 만인 2025년에 세계에서 가장 빠른 속도로 초고령사회(노인비율 20%)로 진입하게 되며, 세계 최저 출산율 문제가 더해져 향후 생산 인구감소 및 노인부양부담 증가가 점점 더 가속화된다. 여기에 높은 노인 빈곤율, 가계부채 비율, 2040년 OECD 중 가장 높은 기대수명으로 속된 말로 ‘헬조선’을 걱정해야 된다.

이러한 사정으로 궁즉변 변즉통 통즉구(窮卽變 變卽通 通卽久)의 해결책이 절박한 시기이다. 2049년에는 노인인구가 2000만명을 넘어서는 등 초고령사회 문제로 향후 50년 이상 요양·돌봄의 부담이 급격하게 증가하게 되는데, 이와 연관하여 의료가 어떻게 제대로 된 중심 역할을 하느냐에 따라 국민건강수호 및 비용 부담은 하늘과 땅 차이로 다가올 것이 자명하다. 따라서 의료계가 앞장서서 시대적 핵심 과제를 국민과 정부에게 먼저 제시하고 초고령사회 대한민국의 해법과 비전, 진정한 가치를 내세워야 한다.

노인의 존엄성 있는 삶을 보장하고 저출산 문제를 혁신적으로 개선하여 급격한 초고령사회에 대응해야 하며 이를 위해 새마을 운동처럼 슬로건을 내걸고 보건의료분야에서 5개년 종합계획을 세워 헤쳐 나가야 한다. 보건복지부에서 가장 큰 비중으로 전담 부서를 만들고 의료계를 비롯한 다양한 직역을 포함한 정책협의체를 구성해야 하며, 지금까지의 일방적이고 비효율적, 분절적인 정부 정책 추진을 혁신하여 제도 하나하나의 효율을 극대화할 수 있도록 현장과의 소통을 최우선시하고 산발적으로 흩어져 시행되는 제도를 통합적·상호 보완적인 방식으로 개편 또는 추진하여야 한다. 질병의 예방 및 조기진단, 만성질환관리, 노인의료·통합돌봄 관리가 지역 단위에서 동네의사 책임하에 연속선상에서 통합적인 관리됨으로써 질적 담보 및 지속적인 성과를 달성해야 한다.

구체적인 초고령사회 해법으로 지역 단위의 강력한 거버넌스를 구성하고 동네의원 네트워크 형성 및 지역의사회 중심 플랫폼 역할을 통해 지역 내 의료·요양·돌봄 체계를 구축하여 이를 가장 중요한 기본 단위로 하며, 지역을 확대해 권역별 통합관리가 이루어지도록 하여야 한다.

세부 내용으로 예방 분야 관련 지금의 국가일반검진이 단순 검사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사후관리가 적극적으로 수행될 수 있도록 동네의원 중심으로 제도 개편이 이루어져야 한다. 즉 지금의 국가검진에서 이루어지는 비만, 음주, 흡연, 운동 부족 등 생활습관 문제, 인지기능·정신건강(치매·우울증) 문제 등과 난청, 당뇨병 등 만성질환자에서 안과 정기검진분야에서 전국 사업이 아닌 지역의사회·지자체 단위에서 동네의원 네트워크 구축으로 적극적으로 관리하는 시스템을 만들고, 지역단위 다양한 시범사업을 통해 효율성을 증명한 후 이를 전국적으로 확대하는 방안이 필요하다.

만성질환관리 관련해서는 일차의료에서 만성질환관리는 환자 부담을 무료 또는 최소화하는 나라들이 적지 않음을 반영해 환자들과 동네의원이 참여하여 건강생활실천을 적극적으로 시행할 수 있는 제도를 만들어야 한다. 연령과 복합만성질환 정도, 위험 요인 등 위험군을 체계적으로 분류하는 많은 연구들이 필요하며, 위험군에 따른 수가차등화를 통해 고위험군 집중관리 방안에 더 많은 비중을 두어야 한다. 또 만성질환 환자관리 성과에 대한 합당한 보상으로 국민건강수호 및 의료비 절감의 효과를 높여야 한다. 300여 곳 종합병원 이상의 의료질평가 지원금이 연간 8000억원을 넘어서는데 1만 9000개 동네의원 고혈압·당뇨병 적정성평가 지급액은 300억원 내외에 불가한데, 질병의 예방 및 조기발견, 만성질환관리가 초고령사회 대응의 핵심축이다.

노인의료·통합돌봄 관련하여 지역의사회 플랫폼 역할, 방문진료, 재택의료제도 개선을 위한 연구용역을 통해 합리적인 제도를 마련하고, 만성질환관리 사업의 예처럼 보건복지부·국민건강보험공단이 대한의사협회 TF와 상호 협력해 컨트롤타워 역할을 지속적으로 할 수 있는 체계를 만들어야 한다.

이제 대한민국은 건국 이래 최대의 위기상황을 맞이하고 있다. 하지만 대한민국 국민은 세계 최고의 위기 극복 능력과 저력을 가지고 있으며, 다른 희망적인 부분도 적지 않다. 이미 대한민국 정부는 고령사회 진입 후 세계에서 가장 빠른 시기에 초고령사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커뮤니티 케어 시범사업을 시행하고 있으며, 정치권은 관련된 기초적인 법안을 제정하였고, 지자체들도 매우 적극적으로 움직이고 있다. 또 베이비부머를 포함한 신노년층은 도시 위주 거주, 높은 학력, 상대적으로 높은 소득률, 대부분이 스마트폰을 보유하고 있고 인터넷도 사용에도 능숙한 편으로 자기관리에 충실하다.

시대적으로도 4차 산업혁명으로 세상이 급변하고 있으며, 의료 분야에서도 인공지능, 플랫폼 업체 활용 등으로 급변하고 있다. 이제 이러한 시대 상황을 정확히 반영해 의료계·정부·정치권·사법부·민간기업 등 모두가 힘을 모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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