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계 ‘논의구조 부재’ 매듭짓고 가자!

[의학신문·일간보사]

채동영 대한의사협회 홍보이사
채동영 대한의사협회 홍보이사

의료대란이 이제 10개월을 넘겼다. 나름대로 의료계는 붕괴를 막기 위해 2024년 내내 고군분투하였으나 대통령의 일방적 정책 추진으로 인해 해결은 요원하다. 사태가 어떤 형태로 끝나게 되더라도 투쟁에 참여한 전공의들과 의대생들의 피해는 불가피해 보인다. 그리고 24학번과 예비 1년차 전공의들, 미필 전공의들의 피해는 이루 말할 수 없을 것이다. 만약 승리하더라도 절반뿐인 승리일 것이고, 패배하면 2020년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의 와해 가능성도 있다.

2024년을 한 번 돌아보자. 의료계가 1년간 가장 많이 한 이야기는 “의료전문가인 의사들의 말을 들어 달라”라는 것이다. 정책은 전문성으로 결정되는 것이 아니다. 정책이 결정되기 위해서는 전문가가 그 방향성을 제시하되 사회적인 합의를 거쳐야 한다. 그러나 우리 의사들은 그러한 사회적 합의를 위한 설득과정에 소홀했고, 전문성만을 내세웠다. 권위를 내세우며 계몽하려고 했다. 그러한 태도는 국민으로 하여금 의사들이 이익집단이라는 생각을 공고히 하는 계기로 작용했다. 이러한 배경 속에서 의·정 갈등은 점점 대중들의 관심에서 멀어져 갔다.

의료계의 투쟁이 실패한 직접적인 이유는, 의료계가 논의 구조의 부재에서 오는 문제를 해결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논의 구조, 다른 말로 하면 거버넌스. 우리는 이 거버넌스라는 것을 가볍게 얘기하지만 사실 모든 사회적 합의는 논의 구조에서 나온다. 의료계는 내부의 합의조차 제대로 이루지 못한 상태로 싸움을 시작했다. 그리고 그것이 사태의 초반과 중반에는 드러나지 않았지만 결국 종결할 수 없는 상황에 도달하도록 만들었다.

의료계는 정책이 추진될 때마다 그것에 반대하는 것만을 금과옥조처럼 여겨왔다. 일부 찬성하는 목소리를 낼 경우 정계 진출을 위한 욕심으로 의료계를 팔아넘기려 한다는 비난을 받기 일쑤였고, 개인이 목소리를 내는 것은 금기시되었다. 조금이라도 나서는 사람은 돌팔매질을 맞기 일쑤다. 여느 집단같이 온건한 목소리는 묻히고 강경한 목소리들만 남았다. 그리고 그것이 결국 사태 해결을 막는 가장 큰 벽으로 작용했다.

대한의사협회 비상대책위원회는 12월 22일 이촌동 의협회관에서 ‘의료농단 저지 및 책임자 처벌<br>을 위한 전국의사대표자대회’를 개최했다.
대한의사협회 비상대책위원회는 12월 22일 이촌동 의협회관에서 ‘의료농단 저지 및 책임자 처벌
을 위한 전국의사대표자대회’를 개최했다.

사태 해결을 위해 의료계가 가장 먼저 할 일은 의견을 모으는 것이다. 예과 학년과 20년 개원의의 입장은 너무나도 다르다. 그러나 이들의 목소리를 모아서 내는 것이 협회의 역할이고, 이를 위해 필요한 것이 의료계 내부의 거버넌스다. 제대로 된 논의구조 없이 산발적으로 의견을 모으려는 시도만 해왔다. 이러한 거버넌스의 부재는 결국 의사들의 단합력을 약화시킨 것은 물론, 대안을 제시하는 것도 불가능하게 만들었다. 소위 ‘욕먹는 선택’을 하기 어렵게 만든 것이다. 회원들에게 비난받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고 이끌 수 있는 리더의 부재도 영향을 미쳤다.

의사들이 진정 정책의 전문가로 국민에게 인정받고 다시금 신뢰받는 직역으로 발돋움하기 위해서는 먼저 비전을 제시하고 설득해야 한다. 지금의 정부가 진행하는 의료정책을 비판하는 것을 넘어 대안을 제시하고 우리가 그릴 수 있는 지속 가능하고 합리적인 정책 말이다. 그러기 위해서라도 의료계 내부의 논의구조가 정착돼야 한다. 이것은 정부가 해야 할 일이라고 말하는 이들도 있겠으나 우리는 수십 년간 보지 않았는가, 그게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정부는 2024년을 의료 개혁의 원년이라고 했다. 정부는 실패했지만 하나 된 의료계는 2025년을 진정한 의료 개혁의 해로 만들기를 간절히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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