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의료인력 정책 기초부터 다시 짚어봐야

[의학신문·일간보사]

김계현 의료정책연구원 연구부장
김계현 의료정책연구원 연구부장

예로부터 교육은 백년지대계(百年之大計)라 하였다. 사람을 키우는데 100년의 큰 계획을 세워야 한다는 의미다. 의과대학 증원의 문제는 국민의 생명을 책임질 의사를 양성하는 의과대학 교육과 관련된 문제이다. 세월이 변해 100년이 너무 길다면 적어도 10년은 준비된 정책이어야 하지 않을까?

해를 넘겨 이어지고 있는 이번 의료사태의 후유증은 장기간에 걸쳐 국민 생활에 영향을 미칠 것이고, 정부의 일방적인 의대 증원 결정은 역사적인 오점으로 남을 것이다.

급격한 의대 증원의 문제점은 한둘이 아닐 것이나, 우리가 가장 심각하게 고민해야 할 문제는 의과대학 교육의 파행과 의과대학 교육의 질 저하 문제이다.

증원된 신입생 휴학‧유급된 학생들을 합쳐 7500명이 한꺼번에 수업을 들어야 하는 상황에 대해, 정부는 이론 수업 위주인 예과 수업에는 무리가 없을 것이라며 귀를 닫고 있다.

의과대학 증원 교육 파행 우려

의과대학 교육의 파행은 의사의 양성과 배출에 문제로 이어질 뿐 아니라, 충분한 자질을 갖추지 못한 의사의 배출로 이어져 국민의 건강과 생명을 위협할 수 있다. 한편, 의학교육 기관은 국민의 생명을 다루는 의사를 양성하는 곳으로 사회적 책무성을 가지며, 의과대학 학생들은 양질의 교육을 받을 권리가 있다. 정부의 이번 의대 증원 결정은 이러한 의학교육의 본질은 물론, 의과대학 학생들의 권리를 철저히 무시한 처사이다.

의료정책연구원은 의학교육 현장에서 실제 학생들의 교육을 담당하는 교수들을 대상으로 의과대학 증원과 관련된 견해, 대학별 증원 대비 사항, 의과대학 교육과 관련된 교수들의 우려 사항에 대해 서면조사를 실시하였다. 해당 조사결과는 한 토론회를 통해 공개될 예정이었으나, 현재 국가 상황과 맞물려 토론회 자체가 연기된 상태이다.

먼저 이번 정부의 의과대학 증원 규모에 대한 견해를 물었다. 대부분 부정적인 의견이었는데, 그 이유는 근거 없는 증원규모, 일방적인 정책 발표 및 졸속 정책, 절차적 정당성 문제를 지적하였고, 일부 의견으로는 증원이 필요하더라도 체계적인 준비, 교육 여건과 인프라에 대한 점검과 분석이 선행되었어야 한다는 의견이 있었다.

정부는 의대 증원에 맞춰 2030년까지 5조원의 예산을 투입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세부적으로는 국립대 의대 교수 증원, 실험·실습 기자재 지원, 병원 지원, 사립의대 교육 환경 개선 자금 융자 등으로 투입하겠다고 하였으나 주로 국립대 중심의 지원이라는 지적이 있었다.

그렇다면 과연 실제 의과대학들은 어떠한 준비를 하고 있는지 조사하였다. 먼저 대학별로 교육을 위한 교수진을 채용하였는지 조사하였다. 대학마다 사정이 달랐으나, 절반 이상은 신규 교수진 채용이 있었거나 진행 중이었다. 그러나 교수채용이 있더라도 주로 기존의 기금 교수들을 전환하거나, 신규 채용이 어려운 기초의학 교수의 경우 자격 기준 완화를 계획하는 대학도 있었으며, 채용 계획이 없거나 교수들의 이직으로 인한 빈자리만 채용하는 대학도 있었다.

전체적으로 교육 현장에 있는 교수들이 체감할 수 있는 만큼 인력 채용이 늘어난 상황은 아닌 것으로 파악된다. 특히 기존의 기금교수를 전환하는 방식은 순수하게 교수진을 늘리는 방식이 아니라는 문제와 교수진 외에 행정 인력, 지원인력도 필요한데, 이에 대한 계획이 없는 것이 문제로 지적되고 있다.

다음으로 증원에 대비해 시설과 교육자원의 확충 계획에 대해 조사하였다. 대부분의 대학에서 시설과 교육 자원에 대한 확충 계획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으나, 구체적인 내용은 파악할 수 없었다. 다만 확충을 진행 중인 대학의 경우 건물 증축예정, 강의실·실습실·컴퓨터실 등의 확장을 추진하고 있으며, 논의만 있을 뿐 예산 배정이나 실행은 이루어지지 않은 대학도 있었다.

증원 시 교육 인프라와 관련하여 교수들이 우려하는 사항에 대해 조사하였다.

현재 의과대학의 교육 인프라는 증원 전학생 교육에 맞춰진 것이라 증원 시 교육 인프라가 열악해질 것이라는 점에 큰 우려를 하고 있었다. 강의는 대부분 온라인으로 전환되고, 실습은 축소될 것이며, 카데바 실습 조의 인원도 대폭 늘어 제대로 된 교육이 어려울 것이라는 의견이 있었다.

의대교수, 전공의 수련도 걱정

한편, 교수들은 전공의들의 수련 환경에 대해서 더 크게 걱정하고 있었다. 임상교육과 수련 교육, 수련환경은 또 다른 차원의 문제라는 것이다. 수련환경은 질적으로 우수한 환경에서 충분한, 양질의 교육이 이루어져야 한다. 현재의 수련환경도 열악한 상황이라 개선이 필요한데, 증원 시 수련환경은 더욱 열악해지고 수련의 질은 더 나빠질 것이라는 의견이다.

의료기관의 입장에서는 전공의 수련이 우선이기 때문에 학생들의 임상실습은 더 소홀해질 수밖에 없고, 이는 전반적인 임상실습 경험의 부족, 교수진의 과부하로 인한 멘토링 질적 저하, 교육의 질 저하로 이어질 것이라는 우려였다.

증원 이후 각 대학의 한국의학교육평가원 평가인증 통과 전망에 대해서는 모든 응답자가 향후 인증통과가 어려울 것으로 전망하였다. 대학마다 우려하는 평가인증 영역은 달랐으나 교육 자원, 교육과정, 교수 영역에서의 우려가 컸다.

의과대학 평가인증의 의미는 의과대학이 교육여건을 제대로 갖추고 의학교육 수행에 문제가 없는지 평가하고 인증하는 것이다. 의과대학의 사회적 책무성 수행을 확인하는 제도이기도 하다. 정부는 이미 의과대학 인증평가 기준을 완화하는 것도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입장이지만, 이는 의과대학의 존재 의무와도 연결되는 것이다.

이번 조사를 통해 의과대학에서 교육을 담당하는 교수들 모두 의학교육의 질저하, 의학교육의 파행을 걱정하고 있음을 확인하였다. 정부는 의과대학 교육의 현장에서 교육의 문제를 걱정하는 교수들의 목소리를 무겁게 받아들여야 한다. 의학교육, 의사 양성의 본질이 무엇이어야 하는지 깊은 성찰을 토대로 지금의 문제를 바로잡아야 한다.

이번 의대증원 문제가 사회적 이슈가 되면서 필자에게는 다양한 분야에서의 강의 요청이 있었다. 다른 분야에 의료인력의 문제가 왜 중요한지, 의사 양성의 양적·질적 문제가 왜 중요한 의미인지 설명하려다 보니 기초 이론부터 설명하게 되었다. 요약하자면 이렇다.

모든 분야에서 인적 자원은 조직 혹은 한 사회가 특정 목표를 달성하는데 필요한 전략적 자원으로 매우 중요한 가치를 가진다. 그런데 의료인력의 경우에는 양적· 질적 수준과 노력 정도가 조직의 성과에 미치는 영향이 타 분야보다 지대하다. 또한 정책의 부재 혹은 미흡으로 야기될 수 있는 사회경제적 부담이 타 분야보다 훨씬 크다. 의료조직의 최종 성과는 환자의 건강이라는 점을 고려할 때, 의료인력 정책은 국민의 건강과 연결되어 국가적으로도 매우 중요한 문제가 된다.

한편 의료인력 양성과정이 부실할 경우 의료서비스의 질 저하, 국민 건강에 직접적인 위해를 줄 수 있다. 이 때문에 선진국들은 의료인력 정책을 통해 의료인력 양성에 대한 정교한 계획을 수립하고, 의료인력들의 성과와 역량 강화를 위한 다양한 지원 정책을 시행한다.

특히 미래의 의료인력 정책은 필요 의료인력에 대한 계획을 수립하고 시행해야 하는데, 이를 위해서는 미래의 건강 목표에 맞는 필요 의료인력의 종류, 각각의 양적·질적 수준을 정하고, 이를 위한 우선순위와 구체적인 전략을 수립해야 한다. 또한 의료인력 정책에는 교육 및 훈련 계획, 성과관리, 근로조건이 포함되어야 한다.

정부는 ‘정책은 정부가 하는 것’이라고 큰소리친다. 선진국은 정부가 정책을 하지 않아서 전문가들과 논의하는 것일까? 정책 당국은 의료인력 정책의 기초부터 다시 짚어보길 강력히 권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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