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학교육 정상화 위해 의·정 머리 맞대야

[의학신문·일간보사]

한희철 고려대학교 의과대학 명예교수
한희철 고려대학교 의과대학 명예교수

깜짝 비상계엄의 트라우마가 아직도 온 나라를 흔들고 있다. 탄핵소추에까지 이른 이 사태는 아직도 끝을 알 수 없는 상태이며 이 와중에 그동안 그토록 무리하게 진행되던 의대 증원 사태는 과연 어떻게 해결될 것인지 여전히 안개 속에서 그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있다.

◇의료계만이 폭력적 의대정원 증원의 심각한 문제점을 알고 있는 것인가?= 2024년 2월 6일 정부가 의대정원 2000명 증원이라는 발표를 한 이후 끊임없이 문제점을 지적해 왔던 의료계는 꿈적하지 않는 정부에 지칠 만도 한데 입시가 진행되는 가운데에도 2025년 입시를 중단해야 한다고 온 나라를 대상으로 호소하여 왔다. 애당초 2000명 증원의 과학적 근거가 무엇인지에 관하여 물었으나 정부는 의료계와 지속해서 논의하였다는 명백한 거짓말로 국민을 호도하였으며 여론조사 결과 국민의 대부분이 의대정원 증원을 원한다는 것으로 의료계의 반발을 일축하였다. 의료계는 급기야 사법부에 이에 대한 판단을 구하였으나 사법부 또한 공익이 중요하다는 논리로 정부의 손을 들어주었다. 이후 의료계는 국회에 호소하며 폭력적인 의대정원 증원을 멈추어달라고 하였으나 이 또한 잘 진행되지 않았다. 특히 의료계를 가장 잘 이해한다는 보건복지부도, 의학교육을 담당하는 교육부도 의학교육 현장의 목소리를 무시한 채 무작정 2000명 의대정원 증원만을 위해 움직였다는 것이 더욱 마음을 아프게 한다. 결국 의대정원의 증원은 정부, 사법부, 국회 모두가 한편이 되어 의료계에 압박을 가하는 상태에서 입시는 진행되었으며 이제 수시를 마치고 정시모집 단계에 들어갔다. 며칠 전 의료계가 마지막으로 기대했던 대법원의 의대 증원 효력정지에 대한 판결이 최종 기각되면서 이 상황을 더욱 공고하게 만들었다.

국민건강수호를 위해 필요한 의대정원을 증원하는 것은 그리 어려운 문제가 아니다. 정부와 의료계가 함께 논의하여 얻어진 결론을 사회적 합의를 통해 시행하면 된다. 사회에서 요구되는 적정의사수를 함께 추계하여 의대정원의 증원계획을 세우고 단계적으로 시행하면 되는 것이다. 하지만 이번 정부는 2024년 2월에 당장 1년 후에 입학할 2025년 입학생부터 2000명을 증원하겠다고 발표한 것이다. 이 정책이 실현 가능한 일인가? 의대정원이 3058명에서 5058명으로 67% 증가하는 경우 교육이 불가능하여 의학교육의 질이 떨어진다는 것을 몰랐을까? 의료계는 정부가 2000명 증원을 발표할 때 믿을 수가 없었으며 아마 의료계의 반대에 부딪혀 적정수준으로 조정될 것이라 믿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정부가 변화하지 않으리라는 것을 점차 인지하게 되었고 결국 닥쳐올 의학교육의 문제점에 대하여 꾸준히 문제를 제기하였다.

이처럼 폭력적인 정책 시행에 대하여 공정의 가치를 중시하는 젊은 의사인 전공의와 의대생들은 교육현장을 떠나는 것으로 저항하여 왔으며 아직도 교육현장으로 복귀하지 않고 있다.

◇사회의 의학교육에 대한 이해가 우선되어야 한다= 의료계는 의대 정원 증원에 대하여 반대하는 것이 아니라 과학적 근거를 가지고 증원 규모를 정한 후 정상적 의학교육이 가능하도록 계획을 세우고 점진적으로 증원하자고 하는 것이다. 의료계가 이토록 의대정원의 급격한 증원을 막고자 하는 이유는 의사를 양성하는 의학교육만의 특별한 점이 있기 때문인데 의사는 환자의 생명을 다루므로 매우 철저한 교육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의학교육 과정은 성과바탕교육(outcome-based curriculum)이며 이는 강의실과 실습실에서 배운 내용을 실제 환자를 대상으로 할 수 있는지를 반드시 확인해야 하는 교육이다. 결국 의학교육에서는 교육의 질이 담보되지 못한다면 양질의 의사를 배출할 수 없다는 것이 가장 고민되는 부분이며 그런 이유로 의료계는 급격한 증원만큼은 꼭 피하고 싶기에 입시가 진행 중인 가운데에도 증원의 규모를 줄여야 한다고 하였다. 그러나 의료계의 의학교육에 대한 우려에도 불구하고 수시의 미충원 인원은 정시로 이월되었으며 의대 정시 접수가 시작되어 이제 2025년 입학생은 대학 당국의 정상적 의학교육이 가능한가에 대한 자체적 판단에 따른 신입생 조정 노력을 제외하면 더 이상 방법이 없게 되었다. 이제 늘어난 신입생들을 대상으로 한 정상적 의학교육이 가능한가에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

◇7500명이 한 학년에 공존하는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야 하나?= 이제 가장 중요한 것은 7500명의 의대생이 같은 학년에 공존하는 상태에서 어떻게 정상적인 의학교육을 할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이다. 답이 잘 안 나온다.

이번처럼 정원의 50% 이상을 증가시키려면 시간을 가지고 분명히 사전에 준비 작업이 끝났어야 하는 것이다. 불과 1년의 시간을 주고 이를 준비하라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이를 밀어붙였으며 정상적 교육을 위해 가장 앞장서야 할 교육부가 실로 의학교육의 질을 떨어뜨리면서까지 정원 증원에만 집착하는 대책을 세우는 것을 보면서 의학교육을 담당하는 대학의 입장에서는 이 점이 가장 비참하게 느껴졌을 것이다. 정당하게 교육을 수행해야 할 대학과 교육받아야 할 학생들의 권리가 심각하게 침해받고 있기 때문이다. 교육부의 이러한 행태는 의학 교육계와의 신뢰를 깨는 사건으로 역사에 기록될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의료계의 노력이 수포로 돌아간 현실로 돌아오면 의학교육의 질을 담보하면서 7500명의 의대생을 교육할 방법에 대하여 의료계가 심각하게 고민해야 할 시점이 되었다. 구체적인 방법에 대해서는 대학의 힘겨운 노력과 한국의학교육평가원(의평원)의 주요변화 평가가 중요한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한다.

◇급격한 의대정원의 증원으로 인한 혼란을 안정시키기 위해서는 오랜 시간이 필요하다= 일단 이러한 문제가 발생하게 되면 이는 적어도 10년간 지속해서 의학교육의 모든 면에서 문제를 일으키는데 이는 의대생 쓰나미 현상처럼 늘어난 학생들이 계속 진급하면서 전공의를 거쳐 전문의를 획득할 때까지 지속된다.

강의실 문제는 정부의 지원과 대학의 노력으로 해결된다고 하더라도 천막에서 수업을 할 수도 있다는 대학의 행정상황을 생각하면 단기간에 해결될지는 불분명하며 적어도 2~3년 동안은 효율적인 강의실 운영이 어려울 것으로 생각되지만 정부와 대학의 노력이 충분하다면 더 일찍 강의실 문제는 해결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강의를 담당하는 교수들이 부족한 문제도 강의실과 같은 양상으로 진행될 것이다. 즉 정부와 대학의 노력에 따라 의대증원에 따른 부작용은 줄일 수 있으며 이에 대해서는 의평원에서 시행하는 주요변화평가가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다.

다음은 실습에 대한 문제이다. 그동안 3058명의 의대생에 맞추어 운영되던 실습시스템이 7500명의 의대생을 어떻게 소화할 수 있는지가 문제이다. 의학교육에서 실습은 의대에서 이루어지는 기초의학실습과 병원에서 이루어지는 임상의학실습이 있다. 기초의학실습 중 특히 해부학실습은 해부용 시신 1구당 실습 인원이 적을수록 좋은 교육이 이루어지므로 반드시 대학별 해부용 시신의 준비 상황을 점검하여 충분히 확보할 필요가 있다. 시급하게 시행된 정책으로 인하여 부족한 실습실, 기자재 및 교수진이 부족하여 의학교육의 질을 담보할 수 없는 상황이며 다른 기초의학 실습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임상실습의 경우는 환자를 대상으로 병원에서 이루어지므로 가장 어려운 부분인데 실습인원을 작은 단위로 나누면 교육효과는 좋지만 환자를 접촉하는 빈도가 늘어나 환자들이 불편을 겪을 수 있고 실습을 지도할 담당교수에게는 교육적 부담이 늘어나게 되는 문제가 있어 실습담당 교수의 추가적인 채용이 필요한 상황이다.

다음은 7500명이 의대를 졸업하여 의사면허를 취득한 후 전문의가 되기 위해 전공의 수련을 받게 될 때 만일 수련병원이 현재 수준의 전공의 수를 유지한다면 50% 이상의 졸업생들이 전공의 수련을 받을 수 없게 된다. 이에 대한 대책도 필요할 것이다. 또한 전공의 TO가 늘어난다고 하면 전공의 수련교육을 위한 지도인력이 증원되어야 하며 전공의가 많아지면 전문의 수급에 영향을 미치므로 한시적인 변화를 통한 대책은 가능하겠지만 많은 논의가 필요할 것으로 생각한다.

◇2026년과 그 이후의 의대정원에 대한 논의를 서둘러 진행하여야 한다= 7,500명에 대한 교육이 첫 번째 문제이지만 다음으로 중요한 문제는 2026년부터는 어떻게 할 것인가 하는 것이다. 2025년에 입학한 4,500여 명의 의대생들을 어떻게 해서라도 교육해야 하는 대학의 입장은 황당하기에 그지없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육을 수행해야 하는 상황이다. 그렇다면 2025년은 어쩔 수 없다고 해도 이제 이 부작용을 얼마나 빠르게 수습할 수 있을지에 대한 논의를 신속하게 진행하여야 한다. 즉 2026년과 그 이후의 의대정원을 신속하게 결정해야 하는데, 이에 따라 부작용의 시간도 줄어들기 때문이다. 따라서 2025년의 급격한 의대정원 증원의 문제점을 교훈 삼아 2026년 정원을 얼마나 감축할 것인지에 대한 사회적 합의를 이루기 위해 정부와 의료계가 빠른 시일안에 마주 앉아서 우선 미래에 필요한 의사 수가 얼마인지 과학적 추계를 통하여 결정하고 그다음으로 이를 목표로 2026년 이후의 정원을 논의하는 일을 서둘러 시작해야 한다.

“빨리 가려면 혼자 가고, 멀리 가려면 함께 가라”는 아프리카 속담처럼 국민건강수호를 위해 정부는 진정한 파트너인 의료계와 함께 현장의 문제점을 파악하고 전문가적 지식에 바탕을 둔 지속 가능한 의료정책을 수립할 수 있기를 바란다.

저작권자 © 의학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