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우철<br>한국보건의료정책연구소 이사<br><제주한국병원 흉부외과 과장, 의사평론가><br>
송우철
한국보건의료정책연구소 이사
<제주한국병원 흉부외과장, 의사평론가>

[의학신문·일간보사] 의사 주 업무는 진단을 내리고 치료를 하는 것이다. 진료이다. 진료에 질병예방, 건강 관리 등을 더한 진료의 확장된 개념이 의료(medical care)이다. 간호사는 의료인이지만 진료를 할 수 없다. 의료법에 의사는 의료와 보건지도, 간호사는 간호와 의사의 진료 보조 업무 및 보건활동을 하도록 업무 규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진료는 오로지 의사만 할 수 있는 배타적 권리이고 이 권리를 의권이라고 한다. 국가가 의사에게 배타적 권리를 주는 건, 의사가 이뻐서가 아니라 그렇게 하는 것이 공공의 이익에 부합하기 때문이다.

진단은 의사의 진찰과 검사로 내려진다. 진찰은 시진, 청진, 촉진 등 다섯가지 방법에 의해 이뤄지는데 사실 경험 많은 의사들은 진찰 만으로도 대부분의 진단을 내리며 심지어 환자를 처음 만나 증상과 병력만 듣고도 진단을 붙이기도 한다. 이게 가능한 건 대부분의 질병은 대개 일정한 패턴을 갖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검사를 하는 이유는 자신의 초진 결과가 맞다는 것을 입증하거나, 특정 질환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기 위함이라고 할 수 있다.

예를 들어, 3~4 일전부터 상복부 통증이나 불편함이 있고 시간이 지남에 따라 우하복부로 통증이 이동해 점차 그 통증이 더 심해지면 충수돌기염의 가능성이 크다. 이런 병력이 있는 환자의 배를 촉진할 때 우하복부에 명료한 압통과 반발통이 있다면 충수돌기염의 가능성은 더 높아진다.

의사가 내리는 검사는 매우 다양하지만, 대표적으로 CT, X-ray 등 영상 검사와 혈액, 소변 등 환자로부터 채집되는 표본으로 하는 임상 검사가 있다. 위의 환자의 경우, 복부 단층촬영이나 초음파 검사, 혈액 검사로 쉽게 충수돌기염을 확진할 수 있다. , 혈액에서는 백혈수 수치와 염증단백질의 증가를 볼 수 있고, 영상 검사에서는 충수돌기의 비대와 주위 염증 등을 확인할 수 있는 것이다.

이처럼 검사는 진찰로 붙이는 진단의 오류를 예방하며, 보다 확실한 진단을 내리는 역할을 한다. 특히 세포 수준을 검사하는 조직 검사는 진단의 최종결자 역할을 하며, 이를 시행하는 과를 진단검사의학과라고 한다.

의사가 치료에 실패하는 경우는 잘못된 진단을 붙이는 오진, 잘못되거나 적절하지 못한 치료, 예상치 못한 돌발 변수 때문이다.

의사는 왜 오진을 할까? 여러 이유가 있지만, 그 중 가장 큰 이유는 의사의 의학 수준이 다르고 경험이 적기 때문이다. 사실 사람은 기계처럼 동일하지 않고 상이하다. 때문에 동일한 수준의 외상이나 질병에 걸려도 증상이 서로 다르며, 병의 과정이나 예후도 다르다. 또 성별이나 나이, 인종에 따라 특정 그룹에서 잘 생기는 질병이 있는 반면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다. 따라서 삼단논법처럼 무엇을 전제로 늘 결론을 내릴 수 없으며, 앞서 언급한 질병의 패턴이 보이지 않을 수도 있다. 패턴이 보이지 않는다는 건 통계적으로는 특정 질환명을 떠올릴 수 없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예를 들어, 위의 환자는 충수돌기염의 가능성이 더 클 뿐 게실염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무엇의 가능성이 더 크다는 건 통계적으로 그렇다는 의미이다. 그래서 의학교에서 가장 많이 가르치는 것이 ‘the most common’ , ‘가장 흔한 것이다. , ’어떤 증상을 보일 때 가장 흔한 질환명과 같은 것을 배우는 것이다.

때론 통계 범위 밖에서 병명을 찾아야 할 때도 있다. 이런 통계 밖의 병명은 대개 희귀 질환이거나 보통 수준의 의사들이 생각하는 범위 외의 질병이므로 간과되기 싶다. 통계 밖에 있다 해도 단 한번이라도 경험한 환자는 잊어지지 않아 다시 같은 질환을 가진 환자를 진단할 수 있다. 그러나 아무리 교과서로 배웠다 한들 직접 진료하지 않는 환자의 통계 밖 질환명을 붙이기는 사실 어렵다. 따라서 경험이 적을수록 오진의 가능성도 커진다고 하는 것이며, 환자가 의사의 스승이라 하는 것이다.

의사들이 오진을 피하는 방법은 자신보다 더 경험 많고 능력 있는 의사에게 협진을 요청하거나 더 많은 검사 방법과 장비를 가진 병원으로 전원을 보내는 것이다. 과거에는 대학병원에서 대학병원으로 전원을 보내는 경우는 극히 드물었다. 왜냐면 대학병원의 시설과 장비에 큰 차이가 없었고, 대학 교수들의 수준도 그랬으며, 자신이 해결 못해 다른 대학병원에 보내는 건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언젠가부터 상급종합병원이 생기고 병원간 계급이 생기면서 환자를 전원 보내는 것이 더 이상 부끄럽거나 흠이 되지 않을 뿐더러 오히려 해결하지 못하면서 환자를 붙잡아 두는 행위는 소송감으로 전락해 버렸다. 그러다 보니 딱히 그럴 필요 없는 환자들도 의사의 안내가 아니라 스스로 판단해 위로, 위로 올라만 가게 되었다. 이를 막을 기전이 의료법이나 건강보험법 등 어디에도 없기 때문이다. 결국 이것이 반복되면서 의료가 왜곡되기 시작했다.

의사가 치료에 실패하는 두번째는 잘못되거나 적절하지 못한 치료 때문이다. 그러나 치료에 실패하는 이유는 이 뿐이 아니다. 치료 적기를 놓치거나 치료 방법을 쓸 수 없거나 치료에 반응하지 않거나 치료를 거부하는 경우에도 치료에 실패한다.

뇌경색이 발생한 후 골든 타임이 지나 내원하거나, 중증 외상을 당한 후 너무 늦게 병원에 오는 경우 등이 치료 적기를 놓치는 경우이다. 치료 적기를 놓쳐 내원해 치료에 실패할 경우 그 책임을 의사에게 물어서는 안된다. 그러나 이 나라는 그렇다 하여도 숨이 붙어 병원에 들어온 환자가 사망하거나 상태가 나빠지면 일단 의사에게 책임을 지운다.

치료 방법을 쓸 수 없는 경우도 의외로 많다. 예로, 기관 삽관을 해야 하나 어떤 이유로 할 수 없는 경우, 특정 약품이 없는 경우, 당장 수술해야 수술방이나 수술할 의사가 없는 경우 등이 그렇다. 치료에 반응하지 않는 경우도 많다. ARDS 라 불리는 급성호흡곤란증후군, DIC라 불리는 파종형 혈관내 응고 등은 대부분 치료에 잘 반응하지 않으며, MERSCOVID-19 등과 같은 호흡기 바이러스 감염에서 나타나는 사이토카인 분비증후군 등에서는 치료에 반응하지 않아 실패하는 경우가 많다. 이런 중증 질환 뿐 아니라 만성통증을 가진 환자들이나 유전 질환을 갖는 경우도 치료에 반응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이렇게 치료 방법을 쓸 수 없거나, 치료에 반응하지 않아 치료에 실패할 때, 과연 그 책임을 의사에게 묻는 것이 정당할까?

치료를 거부해 치료에 실패하는 경우도 있다. 얼마 전 자살을 목적으로 농약을 먹고 응급실로 와 위세척을 하려는 의료진에게 거칠게 거부하며 수액과 주사만이라도 맞으라는 의사의 간곡한 요청에도 이를 거부한 체 전원간 후 사망한 환자에게 1억원에 가까운 배상을 하도록 대법원이 판결한 사례가 있다. 당시 대법원은 환자의 자기결정권보다는 의사의 생명보호의무가 우선한다며 의사의 책임을 물었다. 그런데 이 이상적인 판결이 현실 사회에서 가당키나 한 말인가? 그렇다면 의사의 생명보호의무는 환자의 자기결정권을 어느 정도 침해하고 용납 받을 수 있는 건가? 이 판결의 후폭풍을 법원은, 국가는, 국민은 감당할 수 있을까?

물론, 의사가 잘못하거나 적절하지 못한 치료로 환자의 상태를 악화시키거나 심지어 사망에 이르게 하는 경우도 있다. 이런 경우는 대부분 의사의 malpractice (의료과오) 때문이다. Malpractice 는 단순한 업무상 과실 뿐 아니라 경험이나 실력의 부족에 기인하기도 한다. 업무상 과실은 여러가지 병원 프로토콜 등으로 교정할 수 있지만, 경험이나 실력은 처벌한다고 나아지지 않는다.

의사의 경험 실력 따위는 관심 없고 과실 했으니 malpractice 의사의 가운을 무조건 벗겨야 할까? 1984년 한 해 뉴욕주에 있는 51개 급성기 병원에서 퇴원한 2,671,863 명 중에 98,609 (3.7%)에서 명백한 의료 사고가 있었고, 이중 2,564 명에서 영구적 장애가 남았으며, 13,411 명은 사망한 것으로 추정된다는 하버드 의대 1991년 연구 논문이 있다. 이 연구에 따르면, 의료사고의 27.6%가 의료진의 태만 즉 의료과오에 의한 것이었다. 이 뿐 아니라 1992년 유타와 콜로라도 주에서도 비슷한 연구가 있었고, 비슷한 비율의 의료사고와 사망자가 있었다. 시기나 지역과 관계없이 비슷한 malpractice 가 생긴다는 것이다.

미국 CDC2011년 미국 내 병원에서 75,000 명 가량이 병원내 감염으로 사망한다는 보고를 했다. 2014년 뉴잉글랜드저널 (NEJM)에 실린 논문에는 미국 내에서 수술 받은 환자의 12.5%에서 수술 후 뱃속에 거즈나 가위가 발견되었다는 조사도 있었다. 수술 받은 환자 10명 중 한 명 꼴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이 의료사고를 일으킨 미국 의사들은 모두 형사처벌을 받았을까? 단연코 아니다. 미국 뿐 아니라, 영국 등 유럽, 일본이나 대만 그 외 다른 그 어떤 나라도 의도적으로 환자를 해치려고 한 경우가 아니라면 단순 malpractice로 의사를 법정에 세우지 않는다. 이유는 간단하다. 의사는 신이 아니며, 무오류성을 가진 교황도 아니고, 의사의 경험과 실력은 제각각 다르고, 이에 따라 치료 결과는 달라질 수 있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이다. , 만일 의도성이 없는 의료 과오로 의사를 형사 처벌하거나 의사의 옷을 벗기면 당장 의사의 10%~20% 혹은 그 이상이 사라질 수 있으며, 치료에 실패할 수 있는 의료 행위를 하려는 의사는 더 이상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 설령 그가 환자 뱃속에 거즈나 가위를 넣고 나와도 그 의사가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는다면 그는 훨씬 더 많은 환자들의 생명을 구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malpractice 는 처벌이 아니라 재교육이 더 효과적이라고 보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나라 법원은 알빠노이다. 판사는 의사가 신이 아니며, 경험과 실력이 제각각이라는 점을 망각한 체 가장 경험 많고 실력 좋은 의사를 기준으로 그에 미치지 않으면 온갖 이유를 붙여 결국 배상하게 하고 또 이를 근거로 형사 처벌을 한다. 그 결과 의사들은 더 이상 응급의학이나 중증 의학 등 필수의료를 하려 하지 않고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한 검사를 하며 건강보험 재정을 축내고 있다.

이런 판결 경향이 지속되면 점차 의사들은 문제가 생길 것 같은 환자를 회피하는 편의적 선취(cream-skimming) 경향을 보이게 될 것이다. 이미 많은 응급실에서 119 구급대가 문제 환자를 이송하려고 하면 상급 응급의료기관으로 이송하라고 하고 있다. 그 결과가 이른바 응급실 뺑뻉이다. 자신의 경험이나 실력, 응급실의 시설이나 장비가 없거나 부족해 환자를 보지 못하겠다고 하는 것이다. 응급의료체계가 구축되어 있어 환자를 상급 기관으로 보내는 게 죄는 아닐텐데, 정부는 이런 현상이 반복되자 환자 수용을 거부하면 불이익을 주겠다고 엄포를 놓는다. 엄포, 강제 등으로 이런 문제가 해결될까?

결국 일부 판사들과 법원의 이런 무모한 판결 경향은 파국을 초래할 것이며, 그로 인한 폐해는 고스란히 국민의 몫이 될 것이다. 그걸 모른다. 알고도 이런 판결을 난무했다면 씻을 수 없는 죄를 짓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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