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보건의료정책연구소 이사
제주한국병원 흉부외과 과장, 의사평론가
[의학신문·일간보사] 지난 해 말 의료계 최대 이슈는 2023년도 소청과 지원율이었다. 소청과 전공의를 모집한 주요 수련병원 66곳의 모집 정원은 201명이었는데 33명만 지원해 역대 최저 지원율 16.4%를 기록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소위 5대 메이저 병원 중 정원을 채운 병원은 서울아산병원 뿐이며, 서울대병원 71.4%, 삼성서울병원 50%, 서울성모병원이 소속된 가톨릭중앙의료원은 단 한명이 지원해 7.7%이었고, 세브란스병원은 한명도 지원하지 않아 0% 였다. 연세대만 지원이 없었던 게 아니다. 올해 56개 주요 대학병원에는 1년차 소청과 수련의가 없다. 이렇게 소청과 전공의 지원이 급감하니 전공의 부족으로 이미 소아 응급 환자의 진료 차질이 빚어지고 있다.
관련 소식이 일파만파 퍼지자 여론은 소청과 전문의가 부족하다고 호도하고 있다. 그러나, 줄어든 건 올해 소청과 전공의 지원자이지, 소청과 전문의가 아니다. 보건산업진흥원의 자료에 의하면, 2010년 소청과 전문의는 모두 5,501 명이었으며, 10년간 1,626명이 늘어 2019년에는 7,127 명이었다. 즉, 130%가 늘어난 것이며, 10년간 매년 약 162명씩 늘어난 셈이다. 소청과만 늘어난 것이 아니라 전체 전문의 수도 10년간 26,733 명이 늘어 136%가 늘어났다. 해마다 2,673명 씩 전문의가 늘고 있는 셈이다. (그런데도 의사가 모자랄 것이라고 한다. 천만의 말씀이다. 오히려 전문의를 줄여 나가야 한다)
소청과 전공의 지원은 왜 줄었을까? 일각에서 얘기하듯 의대 정원을 늘리면 소청과 지원도 늘어날까? 최근 5년간 소청과 현황에서 답을 찾을 수 있다. 2021년 전국 소청과 의원 수는 대략 2,111개소이다. 2017년 소청과 의원은 1,319개소이었으므로 5년 사이에 1.6 배나 늘어난 셈이다. 2017년 소청과 의원 진료건수는 청구 기준 약5천38십만건으로, 의원당 연간 약 4만8백 건을 청구했다. 월평균 약 3,400건이다. 그런데, 5년 뒤인 2021년 소청과 의원 총 진료건수는 2천810만건으로 52% 급감했다.
그런데 의원 개체 수가 오히려 160% 늘어나는 바람에 의원당 진료건수는 32%로 쪼그라들어, 의원당 연평균 진료 건수는 1만3천 건에 불과했다. 월평균 1,100 건인 셈이다. 불과 5년 사이에 의원 수는 1.6배 늘어났는데, 진료 건수는 1/3 토막이 나 버린 셈이다. 그 결과 소청과 의원들의 진료비 총액은 10년 전에 비해 24.74%가 감소했다. 진료비 규모로 보면, 현재 소청과 매출은 전체 의원의 2.73%에 불과하다. 만일 소청과 개원가에 파레토 법칙(20%가 80%를 차지한다는 이태리 경제학자의 이론)이 적용된다면, 소청과 개원의의 80%는 폐업을 심각하게 고려해야 할지 모른다.
그런데 사실 의원 중 소청과만 진료 건수가 준 건 아니다. 의료기관 종별 진료 건수를 2017년과 2021년을 비교하면, 상급종합병원은 112.2% (입원 121.1%, 외래 111.6%) 증가하고, 종합병원은 106.1% (입원 108.6%, 외래 105.9%) 증가한 반면, 의원은 88%로 감소했다. 의원 중에서도 성형외과 (227%), 정신건강의학과 (164%), 신경과 (122%), 재활의학과 (119%), 마취통증의학과와 피부과 (111%), 신경외과 (109%), 정형외과 (105%)를 제외한 다른 과목의 진료 건수는 모두 줄었는데 이중 가장 많이 줄어든 과가 소청과 (52%)와 이비인후과(62%)일 뿐이다. 업무량이 늘어 의사가 부족해 질것이라는 보건사회연구원의 연구 결과대로라면, 성형외과 의사를 대폭 늘려야 한다.
소청과와 소아들이 많이 찾았던 이비인후과의 진료건수는 저출산의 여파로 더 가파르게 줄어들 것이 분명해 보인다. 이렇게 수요가 줄면 소청과 전문의 공급 역시 줄어들어야 하는 건 당연하다. 그러니 소청과 전공의 지원율 16.4%가 마냥 놀라운 일이 아니다. 문제는 감기나 배탈 등 경질환을 맡을 의사가 주는게 아니라 미숙아 등 중증 질환을 담당할 소청과 의사가 줄어드는 것이다.
그런데 과연 지난 해 인턴들이 이런 통계적 분석으로 소청과의 불확실한 미래를 미리 예측해 소청과 지원을 포기할걸까? 또다른 이유는 없을까? 지난 1979년 덩샤오핑은 급격히 늘어나는 중국 인구를 통제하기 위해 이른바 독생자녀제 (1가구 1자녀)라는 산아제한 제도를 도입했다. 이로 인해 1980년생 이후부터 부부는 한 자녀만 낳을 수 있었고, 만일 둘째를 낳으면 무거운 세금을 부담해야 했다. 이 제도는 2016년까지 무려 35년간 지속되었고, 수많은 부작용을 낳았다.
아무튼 1980년부터 2015년 사이 태어난 아이들을 이른바 소황제(小皇帝), 소공주(小公主) 혹은 바링하우(80後)라고 부르는데, 이들은 중국의 급격한 경제 성장과 함께 부모의 관심과 지원을 독점하며 성장한 세대라고 할 수 있다. 어느 한국 언론은 중국의 소황제를 “4명의 조부모와 2명의 부모가 한 아이에게 매달려 사는 소위 '4-2-1 증후군' 때문에 어른들의 과보호와 맹목적 사랑을 누리며 자라, '응석받이, 고집불통, 버릇이 없음, 남을 생각할 줄 모름, 참을성이 부족함, 자립심이 부족함, 환경 적응력이 부족함, 문제 해결력이 부족함' 등으로 그 인성을 요약할 수 있는 허약한 자식을 뜻한다”라 풀이한다.
그런데 중국의 이 문제는 한국도 예외가 아니다. 중국의 2021년 출산율은 1.15명이지만, 한국의 출산율은 이보다 훨씬 적어 2021년 0.81명이었다. 이 때문일까? 누구에게나 자식은 귀한 존재이지만, 내 자식은 더 특별하고 더 소중하다는 부모들이 많아도 너무 많다. 물론 모두가 그렇지는 않겠지만, 소셜미디어에 올라오는 소청과 의사나 간호사들의 자조 섞인 진료실 백태는 혀를 차게 만든다.
예를 들면 이런 것이다. 소아는 성인에 비해 정맥주사관을 꼽기 훨씬 더 어렵다. 그런데, 단번에 바늘을 꼽지 못하면, 의료진에게 화를 내거나 욕을 하는 부모들이 더 많아졌고, 심지어 바늘을 꽂으며 아이를 아프게 했다고 간호사를 ‘땟지’한다며 간호사 손을 때리는 부모도 있다는 것이다. 소아 환자의 부모가 의료진을 직접 폭행하는 일이 흔치 않겠지만, 폭언과 무례함은 상상 이상이라고 호소하는 소청과 의사도 있다.
‘내 아이가 먹을 건데…’로 시작하는 음식 주문이 ‘내 아이가 아프다는데…’로 바뀌거나 ‘부모 마음에 걱정돼서…’로 무장하면 그 부모의 행동은 절대권력이 되고 갑질은 모두 용서되어야 한다. 청진 중에 큰 소리로 휴대폰 통화하는 아빠, 안 낫는다고 하루만에 병원을 바꿔오거나 심지어는 같은 병원 다른 원장에게 또 진료받는 엄마, 진료실에 들어와 소독액을 뿌리며 물티슈로 진료 의자를 닦아대는 엄마 (정작 환아는 코로나-19 확진), 동생 진료 보러 와서 형 약도 동생 이름으로 처방해달라는 엄마, 몰래 진료 내용을 녹음하는 엄마, 인플루엔자 확진 아이에게 타미플루 처방하겠다고 하니 어린애에게 그걸 써도 되냐고 따지는 엄마 등을 매일매일 만나고 지역 맘카페의 평가질에 시달리며, 환자 때문이 아니라 그 부모 때문에 자괴감에 빠져 있는 소청과 의사들이 한둘이 아니다. 이들을 보고 누가 소청과를 지원하고 싶을까?
소청과 의사들이 환자 부모들에게 시달리는 이유를 낮은 ‘본인부담금’에서 찾는 의사도 있다. 보통 의원에서 진찰할 경우, 65세 미만 성인의 경우 진찰료의 30%를 본인부담금으로 지불하는데, 소아의 경우 상대가치점수에 ‘소아 가산’을 주고, 1세부터 6세 미만까지는 이 본인부담금의 70%만 지불한다. 이 경우, 초진 본인부담금은 3,600원 재진은 2,500원이다. 스타벅스 아메리카노 한잔 값에도 한참 모자란다. 1세 미만 소아(이를 영아라고 부른다)는 유아(1~5세)에 비해 진찰이 더 어렵고 시간이 걸리지만 영아의 본인부담율은 진찰료의 5%이기때문에 보호자가 내는 진료비는 훨씬 더 적다. 얼마나 되냐고? 초진의 경우 본인부담금은 900원, 재진의 경우 600원이다. 이렇게 6세 미만 소아의 본인부담을 적게, 영아의 본인부담금을 더 적게 하는 건 부모의 진료비 부담을 줄여 영유아의 진료접근성을 강화하기 위한 저출산대책의 일환이라고 할 수 있다. 본인부담금과 진료접근성은 반비례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컬럼을 통해 누누히 주장했지만, 진료접근성 강화는 문제 해결의 첩경이 아니다. 게다가 의료접근성은 빈도와 비례한다. 즉, 접근성이 좋으면 의료이용 빈도도 높아진다. 그러니, 지나치게 낮은 본인부담금은 매우 높은 빈도를 보일 수 밖에 없고, 툭하면 애들을 데리고 소아과로 온다. 심지어 모기에 물려도 데려온다.
그러니, 진료의 가치가 추락한다. 흔한 건 원래 가치가 없는 법이니 말이다.
게다가 지나치게 낮은 본인부담금은 진료가 싸구려라는 인식을 심어준다. 천원을 내면 몇 백원 거슬러 받던 엄마들은 아기 가슴 엑스레이를 찍자고 하면 몇 천원을 더 내야 하니 화들짝 놀란다. 낮은 본인부담금은 경제적 부담을 빌미로 아이들의 진료를 늦추지 말라는 것이지, 의사나 간호사를 부담 없이 맘대로 대하라는 게 아니다. 그런데 그것이 한국판 ‘소황제’ 때문인지, 소황제들의 조부모가 바쁘단 핑계로 자기 자식(소황제 부모)을 잘못 가르쳤기 때문인지 알 수 없지만, 그 소중한 아이들의 건강과 생명을 위해 노력하는 소청과 의사들을 이렇게 하찮게 대하는 부모가 많은 나라는 어디에도 없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과거 의사들은 환자나 보호자에게 멱살을 잡히거나 빰을 맞아도, ‘그건 그 거고 환자는 치료해야 한다’며, 메스를 잡고 청진기를 들었다. 그렇게 하는 게 참의사라고 가르친 선배들 덕에 소청과는 지금 천원 내면 백원, 4백원을 거슬러주는 진료를 한다. ‘맘’들의 진상에 시달리며 말이다. 평생 누구에게 무슨 과를 하라 거나 하지 말라고 한 적 없었는데, 작년 인턴들에게는 절대 소청과는 선택하지 말라고 말렸다. 그게 선배가 가져야 할 양심이라 생각한 오지랖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