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우철<br>한국보건의료정책연구소 이사<br><제주한국병원 흉부외과 과장, 의사평론가><br>
송우철
한국보건의료정책연구소 이사
<제주한국병원 흉부외과 과장, 의사평론가>

[의학신문·일간보사] 지난 1 부에서는 디지털 헬스케어의 국가적 아젠다에 대한 살펴보았다. 이번에는 대기업과 스타트 업들이 접근하고 있는 디지털 헬스케어에 대해 알아보자.

현재 디지털 헬스케어 업계의 비즈니스 구조는 환자 혹은 사용자의 생체 정보를 습득하고, 이를 분석하고, 분석된 정보를 전송하며, 이를 통해 사용자를 관리(healthcare) 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생체 정보의 취득을 위해서 심박, 체중, 심전도, 산소포화도, 호흡수, 혈압, 걸음 수 등의 센서가 개발되어 사용되고 있으며, 이 센서는 별도의 기기나 스마트 폰, 스마트 워치 등에 있으며, 최근에는 더 다양한 센서를 갖는 웨어러블 디바이스들이 개발 되고 있다. 특히, 연속 혈당 모니터(CGMS, Continuous glucose monitoring system) 도 빠른 속도로 보급되고 있고, 무채혈 혈당 측정기 개발도 박차를 가하고 있다. 혈당, 혈압 등의 생체 정보는 대사 증후군 환자 관리에 필연적이라고 할 수 있다.

이 같은 생체 정보의 관리, 저장, 전송은 스마트 폰을 통해 이뤄지는 것이 일반적이다. 따라서 이를 위한 모바일 앱의 개발도 중요한 디지털 헬스케어 산업군의 하나이다. 생체 정보는 스마트 폰에 저장할 수도 있지만, 클라우드 서버에 저장할 수도 있으며, 취득된 생체 정보를 통해 사용자 상태를 분석, 평가할 수 있다. 이 같은 분석에는 인공지능이 사용된다. 그 분석 결과를 사용자에게 회신하거나 사용자에게 어드바이스를 하는 것을 Tele-monitor 혹은 Tele-health 라고 하며, 이 또한 디지털 헬스케어의 한 영역이다.

이같은 모바일 헬스 앱, 건강 분석, 건강관리, 원격의료를 디지털 헬스케어의 4대 영역이라고 하며, 현존하는 디지털 헬스케어의 근간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 구조의 핵심적 역할을 하는 것이 PHR 이다. PHR (Personal Health Record) 의 컨셉이 만들어지고 이 용어가 사용된 건 이미 1970년대이나, 실제 PHR의 필요성이 본격적으로 대두된 건 2000년 이후이다.

의무기록(Medical record)을 전산화한 과정은 OCS, EMR, EHR, PHR 등으로 발전해왔는데 OCS (Order Communication System) 는 처방만 전산 처리를 하는 것이고, EMR (Electronic Medical Record) 은 처방을 비롯해 모든 환자 기록을 전산화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여기에 병원 행정, 재고 관리 등 부가적 기능을 넣은 걸 HIS (Hospital Information System) 이라고 한다. EMR과 영상저장전송시스템인 digital PACS(Picture Archiving and Communication System)가 널리 보급되면서, 병원간 환자 정보 공유 체계의 필요성이 대두되었고, 이를 EHR(Electronic Health Record) 이라고 한다.

EMR이나 EHR은 환자 정보를 병원이 저장, 관리하는 반면, PHR은 의료기관이 환자에게 의무기록을 주고, 환자가 이를 관리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 정부가 야심차게 진행 중인 ‘마이 헬스웨이’ 역시 PHR의 일종인데, PHR의 장점은 여러 기관에 흩어져 있는 자신의 건강 정보를 본인이 직접 소유 관리할 수 있고, 이에 따라 자신의 건강 정보에 대한 결정권을 가지며, 이를 원하는 곳에 원하는 방식으로 사용 가능하며, 의료 정보의 가장 큰 문제인 정보의 비대칭성을 개선할 수 있다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PHR 이 활성화되면, 의료 정보를 넘어서 디지털 헬스케어 영역의 생체 정보 즉, 자가 측정하는 혈압, 혈당, 체중, 운동 정보를 융합하여 자신의 건강 상태를 저장, 분석, 관리 받을 수 있게되므로, PHR이 디지털 헬스케어의 핵심 사항이라고 할 수 있다.

이처럼 디지털 헬스케어는 ICT와 의료의 융합이므로, 애플, 마이크로소프트 (MS), 구글 알파벳, 아마존 등 빅테크로 불리는 IT기업들이 주도적으로 이 산업을 이끌고 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국내에서는 네이버와 카카오가 선두에 있다. IT 기업들이 디지털 헬스케어에 눈독을 들이는 이유는 IT 시장보다 디지털 헬스케어의 성장세가 더 가파르고 IT 시장은 포화상태인데 비해, 디지털 헬스케어 시장은 더욱 커지고 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이에 대한 기술 개발도 늘어나 지난 10년간 빅테크 기업들의 헬스케어 관련 특허는 연평균 약 100 건으로 과거에 비해 10배가 늘어났다.

빅테크 기업들의 PHR 이 일반 사용자에게 제공되기 시작한 건 2006년 설립된 알파벳의 자회사인 구글 헬스와 2007년 마이크로소프트가 출시한 헬스볼트(HealthVault) 라 할 수 있다. 애플은 헬스 레코드(Health Record)란 앱을 2014년부터 아이폰에 탑재하여 출시하기 시작했다.

빅테크 기업들이 구글 헬스(알파벳), 헬스볼트(MS), 헬스레코드(애플) 등 PHR에 몰두했던 이유는 PHR이 디지털 헬스케어의 Core가 될 수 있기 때문이며, 비록 막대한 예산을 필요로 하는 국가 단위의 정밀의료(Precision Medicine) 프로젝트에는 이를 수 없어도, 상대적으로 적은 비용으로 많은 소비자의 의료 정보를 수집하고 이를 토대로 데이터를 분석하고 활용할 수 있으며, 가입자를 대상으로 하는 새로운 플랫폼과 시장을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비교적 이른 시기에 시작한 구글 헬스와 헬스볼트는 2012년, 2019년 각각 서비스를 종료했다. 여러가지 배경이 있지만, 결론은 시장이 성숙하지 않았기 때문으로 볼 수 있다. 그렇다고 빅테크들이 디지털 헬스케어 시장에서 물러난 건 아니다. 구글은 2018년 구글헬스 재개를 선언했고, 2021년 21억달러를 들여 웨어러블 기기회사인 핏빗(Fitbit)을 인수하여 2900만명의 건강, 운동 정보를 갖게 되었고, 자회사인 딥마인드 (DeepMind)를 통해 영상 분석, 단백질 구조 분석에 뛰어들었다.

PHR이 활성화되려면 병원이 검사 결과, 영상 정보, 진단, 처방 등 의무기록을 사용자의 PHR로 전송하여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먼저 병원이 의무기록을 전산화하여야 하는 건 당연하다. 우리나라의 경우, 비교적 타국에 비해 의무 기록 전산화를 조기에 실현하였으나, OCS나 EMR이 개발사에 따라 각기 다른 포맷으로 데이터를 저장했다는 결정적 문제가 있다. 즉, 의무기록의 표준화와 상호호환성은 다른 나라에 비해 매우 떨어진다.

전자 의무기록이 우리나라보다 늦었던 미국은 2009년 HITECH(Health Information Technology for Economic and Clinical Health) 법을 만들고, 약 400억달러를 투입해 표준화한 의료정보망을 구축하였고, 유럽은 2002년 EuroRec (European Institute for Health Records) 이란 기구를 설립해 ARGOS, HITCH, Q-REC 등 여러가지 프로젝트를 추진하며 EU내 국가들의 의무기록 표준화를 이루고 있으며, 일본은 1994년 이미 JAHIS(Japanese association of healthcare information systems industry) 를 설립해 환자기록 표준화를 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2020년 뒤늦게 EMR 인증제도를 도입하여 보안성 및 상호호환성을 검증하도록 하고 있으나, 2022년 7월 현재 전체 의료기관의 5% 가량만 인증된 상태이다.

우리 정부가 추진 중인 ‘마이 헬스웨이’ 역시 의료기관이 사용자에게 의무기록을 넘겨주는 것이 아니라, 심평원이 가지고 있는 의료기관 방문 기록과 처방 이력 정보를 제공할 뿐이다.

반면 미국 등은 서로 다른 시스템 간에 의료 정보를 전자적으로 교환할 수 있는 표준을 정해왔는데 현재 사용 되는 규약은 HL7 FHIR 이다. HL7 (Health Level Seven) 은 의무기록의 상호운용성을 향상하기 위해 의료정보의 추출, 공유, 교환, 통합 등을 위한 CDA(Clinical Data Architecture) 의 표준을 정하는 국제 기구이다. HL7은 EDI 기반의 V2 (1987년), XML 기반의 V3 (1995년), V3 CDA(2005년) 을 거쳐 현재는 API 기반의 FHIR 2.1 을 표준 규약으로 채택하고 있다. 따라서 이 규약을 따르는 EMR 과 PHR 은 의무기록을 서로 주고 받을 수 있다.

반면, 국내 의료기관의 OCS, EMR의 표준화는 이미 90년대부터 강력히 추진했으나 번번히 실패했다. 국내 의료기관의 EMR이 표준 규약을 따르지 않아 상호운용성의 걸림돌이 있는 건 국내 디지털 헬스케어 산업 측면에서는 큰 제약이 아닐 수 없다. 만일 국내 병원간 의료 정보를 교환하려 하려면, 모든 EMR 을 HL7에 맞춰 재설계하도록 강제해야 한다는 문제가 있다. 그러나 이건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그렇다고 대안이 전혀 없는 건 아니다.

만일 환자가 요구할 경우 의료기관이 환자에게 환자의 의무기록을 PHR로 제공하도록 의무화하고, 이때 사용되는 PHR이 HL7 FHIR 규약을 따른다면, 각 EMR 개발 업체들은 자사의 EMR 정보가 표준화된 환자의 PHR에 환자 정보를 제공하도록 데이터를 변환해 제공하면 된다. 이같은 데이터 매핑이 난제는 아니다. 이 경우, 환자의 의무기록은 환자의 스마트 폰이 아니라 클라우드 서버에 저장되고, 만일 환자가 다른 의료기관에 자신의 의무기록을 제공하려면, 자신의 클라우드 데이터에 접근할 수 있는 권한을 주면 된다. 즉, PHR 은 디지털 헬스케어의 핵심일 뿐 아니라, 사용하기에 따라 표준화되지 못한 국내 의료기관 간의 데이터 호환을 이끌어 낼 수 있는 대안이 될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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