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학신문·일간보사=안병정 기자] 최근 산부인과 의사 2명이 업무상과실치상 혐의로 검찰에 불구속 기소되어 의료계의 강력한 반발을 사고 있다. 이 사건은 약 8년 전의 일로 자연분만으로 태어난 아기가 출생 직후 뇌성마비 진단을 받아 당시 진료를 맡았던 교수와 전공의가 소송에 연루된 것이다. 이후 지난 5월 1심 민사재판이 끝난 뒤 검찰이 의료진을 불구속 기소하여 형사재판으로 비화 된 것이다.

그러자 의료계가 아우성을 치고 있다. 전문학계는 “뇌성마비는 그 원인이 완전히 밝혀지지도 않았으며, 이 같은 불가항력적인 분만사고에 대해 의료진의 잘못을 단정하여 형사책임을 묻는 것이 온당하냐”며 억울함을 토로하고 있다. 의료계 전반에서도 “필수의료를 붕괴시키는 것을 넘어 산부인과 진료의 기반을 뒤흔드는 무리한 사법적 절차”라고 규탄하며, 법원의 현명한 판단을 촉구하고 있다.


물론 사건의 향방은 재판을 지켜봐야 알 수 있다. 그러나 결과를 떠나 이번 처럼 의료인의 정당한 의료행위가 업무상과실치사상죄로 검찰에 송치되고 형사재판을 받는다는 일 자체가 필수의료 현장을 위축시킨다는 점에서 우려가 크다.


이미 의료계는 오래 전부터 “의료사고의 위험으로부터 보호 받지 못하는 진료환경 때문에 중증 필수의료가 고사되고 있다”며 정부에 대책을 호소해 왔다. 특히 지난해 의료사태 당시 전공의들이 제기했던 대정부 요구사항 가운데도 ‘불가항력 의료 사고에 대한 법적 대책’은 우선으로 꼽혔던 과제다.

이에 정부도 그 문제점을 인식하고 지난해 ‘의료사고 안전망 구축’을 의료개혁 4대과제의 하나로 삼아 의료인에게 형사처벌 특례를 부여하는 내용의 ‘의료사고처리특례법’ 초안을 만든 바 있으며, 국회에서도 ‘응급의료 형사책임 면제법안’을 추진하는 등 혁신적인 의료사고 안전망 대책을 추진해 왔으나 정권이 바뀌는 격변을 겪으면서 일련의 개혁 추진과제들이 답보상태에 머물고 있다.

그 사이 의료현장에는 산부인과, 흉부외과, 응급의학과 등 불가항력적 사고의 위험에 많이 노출된 전공분야에는 젊은 의사들이 눈길도 주지 않고 있다, 힘들기도 하지만 형사책임 위험 부담까지 감수하며 중증 필수 의료 분야에 뛰어들려 하지를 않는 것이다. 학계에서는 이대로 가면 필수 의료분야를 지망하는 젊은 의사들의 씨가 말라 머지않아 학문의 후속세대가 끊이지 않을까 걱정하고 있다. 상황적으로 볼 때 특정 의료 분야의 소멸이 문제가 아니라 앞으로 필수 분야 국민 건강을 누가 지켜낼지가 걱정이다.

정부가 이런 문제를 진정으로 심각하게 받아드린다면 의료사고와 관련하여 적어도 필수의료분야에서는 의사들이 형사책임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특단의 조치를 취해줘야 한다. 그 길은 의사를 위함이라기 보다, 어떻게 해서라도 국민 생명과 직결된 필수 의료의 붕괴 만큼은 막아야 하기 때문이다. 물론 환자단체 등 일각에서는 '법 형평성'을 들어 의료인에 대한 형사책임 특례를 반대하는 경향이다. 그러나 불가항력적인 사고에도 형사적인 책임을 묻는다면 누가 그 길을 가겠는가. 그렇다고 고의과실까지 덮어주자는 것은 아니다. 필수분야 의사들에게 최선을 다해 생명을 살리는데 분투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 주자는 것이다.

때늦은 감이 있지만 이번 산부인과 의사 기소사건을 계기로 필수의사를 보호하고, 의료사고 피해자도 충분히 위로할 수 있는 의료사고 안전망이 확립 되도록 의료계와 정부, 정치권이 하나되어 힘을 모아 주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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