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의대 강의실서 사진과 운명적 만남…동적인 취미 못지않게 활동적
중앙의대 김재찬 명예교수 “작품에서 일상의 소중함 알리고파”
[의학신문·일간보사=정광성 기자] “환자의 눈물층을 사진을 통해 관찰하다가 깨달았다. 인간도 우주의 일부로서 끊임없이 변화하는 존재라는 것을”
중앙의대 안과학교실 김재찬 명예교수<사진>는 현재 미국·일본·중국 등 70여개 국가에서 활용되는 양막이식을 세계 최초로 성공시키고, 중간엽 줄기세포 연구를 통해 의학적 발전에 기여하는 등 국내외에서 난치성 외안부 질환 치료 연구로 널리 알려진 인물이다. 그런 그가 사진 촬영(미디어아트)이라는 새로운 도전을 시작했다. 예상치 못한 계기는 건강검진이었다.
김재찬 교수는 “건강검진을 받다가 3시간 정도 대기 시간이 생겨서, 문득 중앙의대 예과 시절 강의실이 생각나 찾아가 보니 그곳이 사진학과로 변해 있었다”며 “평소에도 사진에 관심이 있었는데, 그 장면을 보고 결심할 수밖에 없었다”라고 사진 촬영과의 첫 만남을 회상했다.
이에 김 교수는 중앙대 평생교육원 사진학과에서 사진 촬영 기술들을 익혀갔지만, 막상 사진을 예술적으로 표현하는 일은 결코 쉽지않았다. 수십 년간 의학 연구에서 ‘정확성’을 추구해온 김 교수에게 감각적 표현의 세계는 또 다른 도전이었던 것. 그러나 그 과정에서 또 다른 가치를 발견했다.
김재찬 교수는 “의대교수 시절 육하원칙에 의해 연구하고 논문을 쓰던 습관으로, 예술적인 감각이 잘 나오지 않는달까 그렇지만, 새로운 것을 항상 시도하고 있다”며 “그 과정에서 눈물층을 의학적으로 분석하는 것에서 나아가, 그 아름다움을 콜라주 작품으로 표현했다. 수십 년간 이런 시도는 없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김 교수는 “눈물층에는 점액층·수분층·지방층이 있는데, 이를 LED 조명으로 비춰 보니 그 아름다움이 새롭게 보였다”며 “마치 중력과 눈꺼풀의 압력에 의해 형성되고 눈물구멍에서 빠져나오는 블랙홀처럼 작용하는 것처럼 보인다. 진단·치료 적인 부분에 엄청난 도움을 줬고, 예술적으로 ‘그 누구의 작품보다 멋있다’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덧붙였다.
이 같은 그의 노력이 담긴 전시회가 지난달 15일부터 21일까지 ‘눈 안의 소우주’를 주제로 열렸으며, 출품작들은 마이크로스코프로 찍은 환자들의 눈에 RGB LED조명을 통해 빛의 간섭을 일으켜 눈물층의 아름다움을 표현했다.
이 작품은 미시적 소우주에서 일어나는 별의 탄생 및 죽음은 물론, 블랙홀이 세상을 정화하는 과정 등을 떠올리게 했다는 관람객들의 평가를 받기도 했다.
이번 전시회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김재찬 교수는 모든 것은 정체되지 않으며 하루하루를 감사하게 살아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언급했다.
김재찬 교수는 “눈물층은 변화한다. 절대 정체되지 않는다. 그걸 보면서 ‘아닛짜(무상 無常)’이라는 개념이 떠올랐다”며 “인간도 거대한 우주의 일부분으로 변화하고 있구나 현실에 만족하며 하루하루를 감사하게 살아야 한다는 걸 새삼 깨닫게 됐다. 내 작품을 보는 사람들에게도 전달됐으면 좋겠다”고 미소 지었다.
취미로서 사진, 의료인에게 어울려
김 교수는 취미로서의 사진이 의료진들에게 잘 어울린다고 추천하기도 했다. 정적으로 보이지만 동적인 취미들 못지 않게 활동적이고 도움이 되는 취미라는 것.
그는 “사진을 찍는 것과 그 결과물은 정적이라고 볼 수 있지만, 이를 위해서는 어떻게 표현할지 많은 생각이 필요하다. 특히 많이 걷고, 험한 곳을 오르고 하는 과정도 필요하다”며 “자연스럽게 여러 가지 운동이 되면서 건강에도 도움이 된다”고 설명했다.
이어 김재찬 교수는 “의료진들은 늘 환자의 질병과 데이터를 분석하는 데 익숙하다”며 “하지만 사진을 찍다 보면 감각적이고 직관적인 사고가 길러진다. 환자를 볼 때도 더 섬세한 관찰력이 생기고, 공감 능력도 향상된다”고 덧붙였다.
환경 오염에 관심 생겨…차기작기대
마음이 고요할 때 사진이 가장 잘 찍힌다는 김 교수의 다음 작품은 환경 오염이 주제가 될 것으로 보인다. 산책하다 본 풍경이 너무 마음이 아팠기 때문이다.
그는 “산책 중 깨진 플라스틱 통, 뿌리째 뽑힌 나무를 보고 마음이 아팠다”며 “오래된 나무는 뿌리가 깊어서 아무리 바람이 불어도 넘어지지 않는데 환경 오염이 이렇게 만들었구나”라고 탄식했다.
그러면서 “그냥 넘어갈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됐다”며 “주변 열병합발전소 태우는 쓰레기에서 나오는 질소·탄소 화합물이 눈물층 형성에도 굉장히 나쁜 영향을 미친다”고 우려했다.
향후 의사·연구자의 시선과 예술가의 감각이 결합 된 김재찬 교수의 작품이 어떤 메시지를 전달할지 기대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