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5년 전 대학동아리로 미술 활동…오는 9월 두 번째 개인전 개최
원자력병원 전대근 교수 “논문과 그림이 나의 흔적으로 남을 것”
[의학신문·일간보사=유은제 기자]“수술과 그림은 같다. 정확한 진단과 최적의 수술 기법을 사용했을 때 수술의 성공률을 높이듯 그림도 그리려는 구성과 주제의 정확한 파악과 최적화된 표현을 사용했을 때 타인이 공감할 수 있는 그림이 되는 것이다.”
원자력병원 정형외과 전대근 교수<사진>는 최근 서울대학교총동창회와 서울대학교미술대학동창회가 주최하는 ‘S-아트 페스타’에 참여해 작품을 전시했다. 미술 전공이 아니지만 서울대학교 동문으로 미술 작품 활동을 하는 이들의 작품을 모아 전시회장을 꾸몄다.
전 교수는 ‘별이된 양이들’이란 작품을 전시했다. 은하수가 휘몰아치는 가운데 중앙에 고양이 가족이 자리 잡고 있으며 주변으로 다양한 고양이의 모습이 담겨 있다.
전 교수는 “길고양이들이 불쌍해 한두 마리 거둬 키운 것이 어느새 4마리가 됐고 고양이에 대한 애정이 깊어졌다”며 “거창한 의미보다 주변의 여러 소재들을 담담하게 스토리텔링 형식으로 담아냈다”고 말했다.
의술=미술, ‘정확한 진단과 최적의 기술’ 필요
전 교수와 미술의 인연은 45년 전부터 시작됐다. 서울대학교에 입학한 그는 미술을 전공하지 않지만 미술반 동아리에 들어갔다.
이성적이어야 하는 의대생이 감성적인 미술 작품 활동하는 것이 어색한 것 같다는 질문에 그는 “수술과 그림은 같다. 정확한 진단과 최적의 수술 기법을 사용했을 때 수술의 성공률을 높이듯 그림도 그리려는 구성과 주제의 정확한 파악과 최적화된 표현을 사용했을 때 타인이 공감할 수 있는 그림이 되는 것”이라며 “수술을 통해 어떤 결과를 얻어낼 것인가, 그림으로 하고 싶은 얘기가 무엇인가 계속해 고민하고 머릿속으로 계속 시뮬레이션을 돌리며 작업한다”고 설명했다.
젊은 시절 혹독한 인턴과 레지던트 과정을 밟으면서도 붓을 놓지 않았던 전 교수는 2000년 돌연 붓을 놓았다. 가장 큰 이유는 본업은 ‘의사’이고 모든 역량을 여기에 쏟아야겠다고 마음먹었기 때문이다.
전 교수는 “문득 의사로서 가장 많은 시간을 쓰는 곳이 병원인데 의사로서 뭘 얻었니? 라는 의문이 생겼다”며 “10년간 종양 전문의로 환자들을 치료‧수술했지만 의사로서 연구에 대한 절실함을 느꼈고 그림에 쏟을 에너지를 논문에 쏟자고 마음 먹었다”고 말했다.
미술 활동을 중단한 전 교수는 한 해 많게는 10편의 논문을 발표하며 약 20년간 총 80여 편의 논문을 발표했다. 그러다 코로나가 성행하던 2020년, 60대에 들어선 그는 다시 붓을 잡을 수 있는 용기를 냈다. 아내가 집에 보관하고 있던 캔버스를 버려야 하지 않겠냐고 물으면서다.
전대근 교수는 “캔버스를 버리기 전에 마지막으로 물감 냄새나 맡아보자 하며 20년 된 물감으로 장난하듯 3~4장 그렸다”며 “20년 만에 그림을 그려보니 뭔가 할 수 있겠다는 마음이 들었고 2~3일 동안 캔버스 원단을 다 뜯어 다시 다듬고 그림을 다시 그리게 됐다”고 말했다.
‘노스텔지어’, 어린 시절 추억을 담다
전대근 교수의 대표적인 작품 시리즈는 ‘백사마을’이다. 서울의 마지막 남은 달동네라고 불리는 백사마을을 배경으로 70년대 사람들의 일상이 담겨 있다.
전 교수는 “백사마을은 옛날 우리가 살던 시절이 그려진다. 골목만 나가면 친구가 있었고 정서에 와닿는 곳”이었다며 “백사마을을 풍경으로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아 아름다움이 자연스럽게 피어나는 것을 표현하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백사마을 시리즈 중 백사 연인은 4개의 그림으로 구성돼 연인의 만남부터 결혼까지의 과정이 담겨있다.
전 교수는 “아파트가 있는 현대 배경과 달리 백사마을은 옛날 마을의 분위기와 불빛이 어우러지며 수많은 이야기가 있고 이는 현대 정서와 다르다”며 “아이들의 순수함, 마을의 따뜻함 등 다양한 이야기를 담으려 했다”고 강조했다.
두 번째 개인 전시회로 시민과 소통
이외에도 어린왕자나 화투를 모티브로 인생의 의미를 담아낸 그림도 매력적이다. 이런 작품들은 보관에 그치지 않고 인스타그램으로 공유되고 있으며 올해 9월 두 번째 개인전을 통해 세상에 공개될 예정이다. 전 교수는 1993년 첫 개인전을 열었으며 다시 미술을 시작하고 4년간 그렸던 170여 개의 작품 중 일부가 전시된다.
한편, 현역 교수로 진료와 수술 일정까지 모두 소화하면서 그림을 그릴 수 있었던 원동력에 대해 그는 ‘삶아온 삶의 흔적’이라고 밝혔다.
그는 “인간은 살아온 흔적을 원하고 자식도 하나의 큰 흔적이지만 나만의 살아온 흔적이라면 그간 발표된 논문과 그림이 흔적이 될 것 같다”며 “일생을 마감해도 논문과 그림을 통해 내가 어떤 사람인지 흔적으로 남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인터뷰를 마무리하며 전대근 교수는 주어진 삶에 맞게 열심히 환자를 진료하며 앞으로 예정된 전시 준비에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전 교수는 “현재 필수의료에 인력이 부족한 만큼 의사로서 환자들을 열심히 진료하는 것이 제일 중요한 역할”이라며 “이와 함께 4년간 약 170장의 그림을 그리며 숨이 차긴 하지만 9월 전시까지 지치지 않고 그림을 그리는 것이 목표”라고 강조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