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학한림원 현명한 선택 캠페인 포스터 ‧ 홈페이지 오픈 등 본격 홍보
안형식 교수 “의료계 자발적 움직임이라는 점에 의미 있어”

[의학신문·일간보사=이승덕 기자]‘치료를 하지 마세요’라는 구호는 의사와 환자가 들었을 때, 말도 안 된다고 생각할 말이다. 아픈 환자를 두고 치료를 하지 않는 것은 상식에서도 의학 전문가의 판단에서도 맞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여기에 살을 하나 더 붙여 ‘불필요한 과잉 치료를 하지 마세요’라고 바꾸면 의미가 전혀 달라진다.

의료인과 환자는 어디까지, 어느 정도가 불필요한 과잉 진료인지를 고민하게 되는 것이다.

‘현명한 의료선택’ 캠페인은 여기서부터 시작된다.

고려대 안형식 교수(대한민국의학한림원 정책개발위원장)<사진>는 최근 본지와 만난 자리에서 ‘의료서비스의 현명한 선택 캠페인’ 추진의 의미와 향후 계획을 소개했다.

‘Choosing Wisely’으로 알려진 캠페인은 이미 외국에서는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는 움직임으로, 미국에서는 2012년 미국내과의사재단(ABIMF)과 컨슈머 리포트, 9개 의학 전문학회가 중심이 돼 시작했다.

의학 전문학회들이 자기 분야에서 중요하고 새롭게 변화하고자 하는 5가지 리스트를 발표하고, 이를 회원들에게 보급할 것을 권하는 캠페인은 미국, 캐나다, 영국, 호주, 일본의 전문 학회에서 시행되고 있다.

2015년 첫 논의된 캠페인, 작년부터 캠페인 본격화

공식 오픈 준비중인 '현명한 선택' 홈페이지
공식 오픈 준비중인 '현명한 선택' 홈페이지

우리나라는 대한민국의학한림원이 주도해 2015년 1월 ‘의료서비스의 적정화 방안과 보건의료인 교육- Choosing Wisely’ 세미나를 진행해 한국 의료의 적정성 문제와 Choosing Wisely 캠페인에 대해 이야기하는 계기를 마련했다.

이후 2016년 10월 ‘제7회 보건의료정책포럼’에서 진료서비스의 적정화를 위한 Choosing Wisely 캠페인을 주제로 ‘현명한 선택’ 캠페인을 국내에 도입하는 방안에 대한 토론회를 진행했으며, 2017년에는 보건의료연구원(NECA)과 Choosing Wisely 리스트를 개발하고 원탁회의를 진행해 참여를 유도했다.

여기에 더욱 가속도가 붙은 것은 국민건강보험공단의 2020년 ‘공급자 주도 가입자의 합리적 의료이용 지원 방안’ 연구과제를 통해 국내 ‘현명한 선택’ 도입을 위해 5개 의학전문학회(흉부외과, 내과, 비뇨의학, 영상의학, 임상병리학과)를 우선 협력 학회로 지정해 실정에 맞는 리스트를 개발해 확산하는 상황이다.

이러한 노력이 성과를 거둬 지난해에는 전체 17개 학회(내과학회, 외과학회, 영상의학학회, 진단검사의학회, 비뇨의학회, 가정의학회, 소아청소년과학회, 산부인과학회, 정형외과학회, 대장항문학회, 소화기학회, 이비인후과학회, 신경외과학회, 류마티스학회, 종양내과학회, 신경정신의학회, 감염학회)로 확대됐다.

그간 캠페인을 중점으로 추진한 안형식 교수는 “올해 3월 중에는 총 20여 개 학회가 최종 선정될 예정으로, 포스터를 제작했고 홈페이지 공식 오픈도 준비 중”이라고 올해 계획의 청사진을 전했다.

“의료인들의 자발적 참여가 핵심 동력”…환자 부작용 감소 초점

대한심장혈관흉부외과학회 현명한 선택 홍보 팜플렛
대한심장혈관흉부외과학회 현명한 선택 홍보 팜플렛

특히 캠페인에서 가장 중요한 점은 ‘의료인들이 스스로 하는 행동’이라는 것이다.

안형식 교수는 “모든 치료를 하지 말라는 것이 아니다. 의료인들이 자발적으로 나서서 치료를 다시 한번 살펴본다는 의미”라고 전제하며 “의사와 환자가 상황을 고려해 대화를 통해 실제로 필요 없는 의료행위를 줄여나가는 움직임”이라고 정리했다.

안 교수는 “불필요한 의료행위가 많아지만 돈이 많이 들 뿐 아니라 부작용이 있기 때문에 감소시키려 한다”며 “환자와 의료기관에 대한 설득이 필요하다”고 전제했다.

실제로 각 학회들이 만들어낸 권고 리스트는 내용도, 연구항목의 수도 다르다.

예를 들어, 가장 많은 항목을 갖고 있는 내과학회는 7개 리스트로 △증상이 없는 담낭담석 환자에게 담낭절제술을 통상적으로 시행하지 않음 △심장 관련 증상이 없으면서 저위험도 심장 수술 이외의 수술이 계획된 환자에게 관상동맥조영술 검사를 시행하지 않음 △D-이합체(D-dimer)가 음성인 폐색전증 가능성이 낮은 환자에게 흉부단층촬영 폐동맥조영술로 폐색전증에 대한 평가를 시행하지 않음 △암성 통증 환자에게 진통제를 적절하게 사용해 통증조절 치료를 시행 △진행성 암환자 가족들에게 적절한 시기에 호스피스 또는 완화의료를 권유 △생애 말기환자에게 암 의심 증상이나 소견이 없다면 암검진은 권고하지 않음 △강직성 척추염 환자에게 HLA B27 검사를 반복적으로 시행하지 않음 등이다.

반대로 가장 작은 항목을 가진 심장혈관흉부외과학회 리스트는 4개로 △저위험군 대동맥 판막 협착 환자에서, 판막 치환술에 앞서 경피적 대동맥판막 삽입술을 권유하지 않음 △복잡한 관상동맥 질환(좌주관상동맥 또는 다혈관질환) 환자는 심장통합 진료를 시행할 것을 권유 △수술 후 흉관 유지기간 동안 모든 환자에게 항생제를 지속 투약하지 않음 △증상이 없거나 대동맥 판막 탈출증 또는 역류가 증가하지 않는 작은 중격결손의 즉각적 수술을 권고하지 않음 등이다.

안형식 교수는 캠페인의 좋은 취지에도 불구하고 명백한 허들이 있다는 점을 짚기도 했다.

그는 “의료서비스가 넘치도록 제공되면 나쁠 수 있다는 사실을 당장 받아들이기는 어렵다”며 “실제 현실에서 의사도 마찬가지고, 국민도 만만치 않다. 단적으로 ‘병원 검사하고 약 먹는게 뭐가 나쁘냐’라고 따지는 경우도 있는데, 의료에 대한 생활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킬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안 교수는 “캠페인 시작 시 우리가 우리 족쇄를 스스로 채우는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가 있었으나, 그런 가운데서도 학회가 직접 우리(의학한림원)를 찾아와 참여한다는 사실 자체가 인식 변화의 시작”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또한 “어쨌든 의료인 스스로 해야하는 움직임으로, 건강보험공단‧심사평가원 등에서의 삭감 근거로서가 아니라 의학전문학회가 의료전문가 주의를 모토로 자기 분야에서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부분을 자발적으로 해 나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거듭 강조했다.

이와 함께 “앞으로는 정부의 역할도 필요해 건보공단이 보험자라는 입장에서 본다면 사회적으로, 정책적으로, 사회적 인식 전환은 필요하다고 본다”며 “환자들의 인식도 중요하다. 검사가 필요 없다고 말하면 불안해 하는 이들에 대해서도 설득할 수 있어야 한다”고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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