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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세기 경북도민과 함께한 경북대병원

대구동인의원→대구의대부속→경북대병원

최초 ‘저온법하 개심술’ 성공
본관건물 사적 443호로 지정

한세기를 경북도민과 함께 해온 경북대학교병원. 경북대병원의 모태는 1907년 ‘대구동인의원’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906년 여름 일본 도쿄에 소재한 동인회에서 가타야마 부회장이 대구에 와 동인의원의 부지를 선정, 제반 절차를 결정하면서 ‘대구동인의원’ 설립이 본격적으로 추진됐다.

▲ 경북대병원 본관 건물

당시 일본인들이 개원한 의원이 대부분 민영의원이라 환자의 진료나 시설구비 등에서 한계를 드러내고 있는 상황이었다.

이러한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모색된 대구동인의원은 1906년 8월 대구부 동문정(東門町·현 중구 동문동)에 신축공사를 시작, 그해 12월 목조 단층건물을 완공하고 이듬해인 1907년 2월10일 진료를 시작했다.

대구동인의원은 1910년 9월 조선총독부 지방관제에 의해 ‘관립 대구자혜의원’으로 개편되고, 1925년 4월 조선도립의원 관제에 의해 경북도로 이관되면서 ‘도립대구의원’으로 개칭됐다.

▲ 1928년 당시 도립대구의원 모습.
도립대구의원은 1926년 3월 화재로 완전 소실된 이후 경상북도에서 현재 대구광역시 중구 삼덕동에 병원 부지를 새로 마련, 새 병원을 신축하게 된다.

1927년 6월 신축공사가 착수돼 1928년 3월 30일 붉은 벽돌조 2층 건물이 준공됐으며, 본관 건물이 신축된 후 동문정 구 병원에 남아 있던 건물들이 병원 본관의 동쪽으로 옮겨져 이축·신축됐으며, 1929년 5월 대대적 낙성식이 진행됐다.

당시 새로 지어진 도립대구의원은 그 규모만도 상당한 건축물이었다. 건축 공사는 공정별 분할청부 방법으로 30여개 업체가 참여하였으며, 작업 연인원은 7만4100명에 달했다.

병원 건축에 사용된 벽돌은 총 232만장이었으며, 석재는 호남지방에서 생산된 황등석재(화강석)를 쓰고, 전등(펜던트, 샹들리에, 브래킷 등)과 전선은 일본 오사카에서 가져온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병원의 부지면적은 8306㎡였고, 본관 건물안에는 각과 진료실 및 대·소수술실, 병리시험실, 뢴트겐실 등에 급수, 난방, 급탕, 소화설비 등 최신 설비를 갖추고 있었다.

광복 후인 1945년 10월에는 대구의학전문학교가 대구의과대학으로 개편됨으로써 도립대구의원은 ‘대구의과대학 부속병원’으로 이관되었고, 1952년 4월에는 경북대학교의 창립에 따라 ‘경북대학교 의과대학부속병원’으로 계승되었다가 1988년 3월 1일 ‘경북대학교병원’으로 개칭되었다.

유구한 역사를 가진 경북대병원은 의료분야에 한 획을 그은 걸출한 인물들과 한세기를 함께 했다.

일례로 1961년 9월 13일 우리나라 최초로 ‘저온법하 개심술’이 경북대병원에서 성공적으로 이뤄진 데에는 당시 첨단의료를 배워온 고병간, 이성행, 박희명 등의 노력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당시는 세계적으로 심장수술 초창기였으며, 미국에서도 1953년 처음 수술에 성공했다.

우리나라에서는 서울대, 연세대, 경북대에서 시도했지만 한 번도 성공하지 못했던 수술을 경북대병원이 최초로 성공시키는 쾌거를 이룩한 셈이다.

경북대학교병원 본관은 지금까지 원형이 잘 보존되어 있고, 한국 근대사와 건축역사 연구의 자료적 가치가 큰 건물로 인정받아 2003년 1월28일 사적 제443호로 지정되었다.
/ 안치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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