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의료는 이미 세계적 수준으로 올라섰다는 평가를 받습니다. 정부도 한국의료를 수출상품 목록에 올렸습니다. 이런 우리의 높은 의료수준에는 일제 강점기부터 의사 선각자들의 피와 땀이 서린 결과물입니다. 의학신문이 의료계의 뿌리를 형성하고 있는 유적, 유물, 인물 등을 찾아 그 뜻을 헤아리고 현대적 의미로 재해석하는 ‘의료계 뿌리를 찾아서’를 연재 합니다. 이번호부터 격주로 독자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대한민국 근대의료 발전 지휘소 역할 충실

서울대병원에는 오가는 사람들의 시선을 강탈(?)하는 건물이 하나 있다. 붉은 벽돌과 화강암으로 시공된 2층짜리 근대 유럽풍의 고색창연한 건물. 2016년 병신년(丙申年) 새해를 맞아 우리식 나이로 백열 살. 게다가 건립 당시의 모습을 거의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아치형의 현관, 곳곳의 태극 문양, 지붕 위의 액세서리 조형물 등 건축미학 측면에서도 아름답고 독특하다. 그래서 1976년에 사적 제248호로 지정됐다. 그런데 이 건물에서 가장 인상적인 것은 뭐니 뭐니 해도 네오 바로크 양식으로 지은 시계탑 부분이다. 그래서 서울대병원 사람들은 오래 전부터 이 건물 전체를‘시계탑’이라고 불러왔다.

▲ 건립초기 대한의원 모습
■ 시계탑은 대한의원 본관= 이 ‘시계탑’은 대체 어떤 건물일까? 바로 1907년 대한제국 시기에 설립된 국립병원인 대한의원(大韓醫院)의 본관이었다. 그 시절 대한의원의 환자 진료와 수술, 각종 검사, 약 처방, 수납과 병원 행정까지 모두 이곳에서 이뤄졌다. 2층의 여러 강의실에서는 부속 의학강습소의 학생들에게 의학교육을 실시했다.

■ 당대 동아시아 최고 병원= 그럼 대한의원은 어떤 병원이었을까? 궁금증을 해결하기 위해선 파란만장했던 개항기의 역사를 짚어봐야 한다. 1885년 고종과 조선정부는 우리나라 최초 서양식 국립병원인 제중원(濟衆院)을 설립해 서양의학의 도입을 통한 의료 근대화와 공공의료의 실천에 힘썼다. 이어서 고종황제와 대한제국은 제중원의 정신과 경험을 살려 의학교(醫學校), 광제원(廣濟院), 대한국적십자병원(大韓國赤十字病院) 등을 운영했다. 1907년 대한제국은 이 국립 의료기관들을 하나로 통합해 초대형 국립병원을 설립하기에 이르렀다. 이것이 바로 대한의원이다.

▲ 현재의 대한의원 건물
대한의원은 당대 동아시아 전역에서도 손꼽을 정도의 규모와 시설을 자랑하는 초대형 최신식 병원이었다. 내과, 외과, 산부인과, 안과, 이비인후과, 피부과, 치과 등 전문 분과별로 나눠진 근대적 종합병원이었다. 정교하게 짜인 교과과정을 마련해 4년제 의학교육도 실시했다. 오늘날의 보건복지부가 없었던 상황에서 종두 사무, 전염병 방역 등 보건위생행정을 담당했고, 빈민층의 무료진료 등 공공의료기관의 역할도 수행했다.

대한의원의 역사적 성격에 대해서는 상반된 두 가지 시각이 있다. 우선 부정적인 시각에서는 대한의원 설립을 실제로 주도한 것은 일본 통감부였고, 대한의원의 행정과 진료 모두 일본인들이 장악하고 있었다는 점을 강조한다. 즉 대한의원은 일본인들의 이익을 대변하는 의료기관이었다고 규정한다.

대한의원을 긍정적으로 이해하는 시각에서는 다음과 같은 점에 주목한다.

첫째, 병원 명칭에 ‘대한’이라는 국호가 사용됐고, ‘대한의원 개원식 기념 사진첩’과 학생들의 졸업증서에 태극기와 대한제국 황실의 문장인 이화(李花, 자두나무꽃)가 들어 있으며, 대한의원 부지가 황실 소유였던 점이다. 즉, 대한의원에는 고종황제와 대한제국 정부의 구상과 지분이 반영돼 있다고 본다.

둘째, 대한의원으로 통합됐다는 가장 본질적인 점에 주목해야 한다는 것이다. 즉, 고종황제와 대한제국이 추진하던 의료근대화 정책의 경험과 성과와 비전이 대한의원의 밑바탕에 깔려 있다고 이해하는 것이다.

■ 서양식 의료근대화 산실= 결국 대한의원 자체만 본다면 일본인들이 주도한 병원일 수 있지만, 넓은 시야에서 보면 대한의원은 제중원부터 시작된 우리 정부의 서양식 의료근대화정책의 연장선상에 놓여있다고 평가한다.

한편 대한의원 건물에는 오병희 서울대병원장을 비롯해 김희중 진료부원장, 정연한 감사, 문주영 행정처장, 정진호 기획조정실장, 권준수 교육인재개발실장, 방문석 대외협력실장, 신찬수 의료혁신실장, 백재승 의학역사문화원장 등이 상주하고 있다.
/ 홍성익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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