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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해 경희대병원 간호본부장

간호사로서 나는?

“나는 일생을 의롭게 살며 전문 간호직에 최선을 다할 것을 하느님과 여러분 앞에 선서합니다. 나는 인간의 생명에 해로운 일은 어떤 상황에서도 하지 않겠습니다. 나는 간호의 수준을 높이기 위하여 전력을 다하겠으며, 간호하면서 알게 된 개인이나 가족의 사정은 비밀로 하겠습니다. 나는 성심으로 보건의료인과 협조하겠으며 나의 간호를 받는 사람들의 안녕을 위하여 헌신하겠습니다.”

나이팅케일 선서식과 감동

내가 2학년 촛불의식 때 캡을 쓰고 빨강·파랑 케이프 두르고 여러 교수님, 엄마, 언니, 동료 앞에서 선서한 나이팅게일 선서이다. 하얀 유니폼에 짧은 머리에 캡을 쓰고 붉은 긴 망토가 멋있어 보이는 너무도 예쁜 간호사 언니의 모습에 반하여 막연한 동경심으로 간호학을 선택했다. 첫 번째 병원 실습 때 나는 맥박과 호흡을 재면서 얼마나 손이 떨리든지 그때 세었던 맥박과 호흡수가 혹시 나의 것은 아니었는지 싶다. 첫 실습지에서의 정형외과 환자분께 정말 감사를 드린다. 그리고 두 번째 세 번째는 조금 더 쉽게 대상자에게 다가갈 수 있는 자신감을 조금씩 얻어가는 뿌듯함도 있었다.

분주했던 신경외과 근무

간호사로의 역사적(?) 사명감을 띠고 졸업 후 신경외과에 근무하게 되었다‘. 신체적·정신적으로 아픈 사람에게 꼭 필요한 사람이 되자’라는 신념으로 정말 열심히 근무를 하였다. 모든 기술은 서툴렀고 잠시 앉아 있을 틈은 물론이고, 환자와는 대화할 수 있는 시간조차 없이 기능적인 일에 늘 하루가 가곤 하였다. 환자 45명에 간호사는 뿐이었으니 늘 정신없이 바쁜 일상이었다.

중환자실도 베드수가 적어 중환자도 다 병실에서 간호를 하였으며, case도 그 때가 훨씬 다양했다. 많은 교통사고 환자, 오토바이 사고 환자, falldown한 환자, 한쪽 마비 환자, 디스크 환자 등등 신경외과에서 치료받는 환자는 모두가 여건상 불쌍한 환자가 더 많았다. 목 아래부터 마비증세로 감각도 없이 입만(?) 살아서 평생을 누구한테 의지하지 않고는 삶을 꾸려나갈 수도 없는 Stryker frame turning 환자가 왜 그리도 많던지…. 내 가족이 저런 상황이라면 나는 어떠했을까? 그래도 사랑하는 어머니한테 간호받는 그 사람이 행복해 보였다. 나는 부모님과 가족의 소중함을 그때 다시금 깨달았다.

중환자실에서 15년 경험

시간의 흐름으로 신경외과 병실에서 중환자실로 옮겨가게 되었다. 학생 실습 때 그렇게도 싫어서 제발 중환자실 근무는 하지 않았으면 했지만, 그때의 행정이란 결혼하면 그만두어야하고, 옮겨 가지 않으면 그만두어야 하는 시절이었기에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많고 힘든 수업을 하였고, 열심히 공부해서 국가고시도 보았고, 교생실습에다 용산에 있는 여군도 일주일 갔다오고 여기까지 온 과정이 너무도 아깝고 억울해서라도 더 열심히 해야지 하는 각오로 임하였다.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병실에서 느껴보지 못했던 희열감이 더했고, 만족감도 대단하였으며 간호사로서의 보람도 병실에 비교할 바가 아니었다. 물론 그만큼 시간도 노력도 공부도 더 투자하였다. 보호자 없는 공간에서 환자를 맘껏 씻겨서 몸에서 윤기가 흐르게도 하였다.

빠른 검사와 처치로 환자는 빠르게 호전되어 병실로 전동되는 모습을 보면 그만큼의 보람도 더 했다. 중환자실에서 초기 근무시에 있었던 일이다. 65세쯤 되신 할아버지셨는데 계속되는 혈관주사로 혈관을 찾을 수가 없었다. 중환자실에서의 IVroute는 생명줄과도 같은 것인데 애써 찾아서 주사한 혈관이 터져서 항생제가 혈관주위로 새버렸다. 주변 피부 조직은 괴사되어 색깔도 변해가고 통증도 심해졌다. 정말로 나의 실수로 인해서 너무도 큰 일이 벌어지고 보호자께는 환자 혈관의 문제점과 본의 아니게 일어난 일이라며 잘 말씀드려서 치료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했다. 다행스럽게도 전부터 환자와 보호자와 간호사들 간의 인간관계는 좋게 유지되어 있는 상태였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증상은 더 심해지고 급기야는 피부과에 의뢰를 해서 하루에 세 번 dressing을 하게 되었다. 저로 인해 고통 받을 환자 및 보호자를 위해 dressing 하는 데 최선을 다했다. 하루가 다르게 상처가 아물더니 더 이상 치료도 필요하지 않게 되었다. 많은 노력과 얼마만큼 관심을 갖느냐에 따라 상처회복이 빠르다는 것을 나는 그때 깨달았다. 지금도 특히 더 강조하는 부분이다.

중환자실 간호사는 환자를 볼 때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한 눈에 볼 수 있는 능력을 키워야 한다. 내게 주어진 근무 시간동안 보호자 없이 그 환자의 모든 것을 간호해야 하므로 그 만큼 간호사가 해야 할 역할도 크다.

신경외과 병실에서의 5년, 중환자실에서 15년 경험은 나에게 많은 발전과 변화를 가져오게 해주었으며, 간호사로서의 주체성도 갖게 해 주었다. 교육파트의 6년은 좀 더 색다른 것을 체험할 수 있는 시간이었던 같다.

섬기는 리더십 실천 노력 중

환자 곁에서의 소중한 시간들은 ‘아픈 사람에게 꼭 필요한 사람이 되자’라는 신념을 가지고 베푸는 사랑과 가족의 소중함도 알았고, 상대방을 이해하고 상대방의 입장에서 들어주고 대화로서 서로를 알아 가는 모습에서 간호사로서의 성숙된 저를 찾을 수 있었던 것 같다. 많은 노력과 얼마만큼 관심을 갖느냐에 따라 환자의 회복도 빠르다는 것을 깨달았으며, 다른 사람에게 모범이 되려면 솔선수범해서 스스로 먼저 해야 함을 배웠다. 또한 배움의 길은 끝이 없음을, 늘 새롭게 도전받는 모습의 아름다움을, 섬기는 리더십을 조금은 알게 되었다.

간호사로서 나를 돌아보면서 이 직업을 택한 것이 얼마나 소중하며 사랑스러운지 모른다. 간호사로서 이렇게 자랑스럽게 키워주신 부모님께 감사 드리며, 학문적인 힘을 길러주신 교수님 그리고 나의 든든한 백이 되어 주는 사랑스런 직장도 감사드린다.

지금 선배 간호사로서의 나는 후배 간호사들에게 “간호사로서의 소명을 다하며, 환자의 행복과 조직의 발전에 기여할 수 있는 멋진 간호사가 되었으면 참 좋겠다”고 전하고 싶다. 그리고 간호사로서의 역할을 다 할 수 있을 때까지 행복한 마음으로 그들의 든든한 지지자가 되고 싶다.

▲ 경희대병원 이명해 간호본부장(왼쪽에서 세 번째)이 임상간호 연구논문 발표회를 마치고 동료들과 포즈를 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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