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국동문회나 의사선배들과의 자리에서 요새 빠지지 않고 나오는 얘기가 모두 힘들다는 것이다. 심지어 누구누구는 폐업하여 빚더미에 앉게 되었다는 얘기, 어디에서 무엇을 하며 사는지 연락이 통 안된다는 얘기도 듣는다. 빚에 쫓겨서 어느 시골병원에서 당직의사로 삶을 살아간다는 얘기도 듣는다. 나는 공중보건의사의 삶을 살아가고 있기 때문에 개업을 하여 살아가는 의사의 경제적 어려움을 잘 알지는 못한다. 하지만, 내가 아는 의사 선배들 중에서 돈걱정 하지 않고, 소신있게 교과서대로만 환자를 보는 선배들은 거의 없는 것 같이 느껴진다. 얘기를 들어보면 월급을 받고 살아가는 봉직의 선배마저도 병원에서의 압박으로 외래환자수, 입원환자수, 수술건수 등의 실적으로 엄청 스트레스를 받는다 하였다. 의사들이 모두가 모두에 대한 경쟁자라는 소리도 들었다. 자신의 전공과목이 아닌 진료를 행하고, 돈되는 진료, 비급여 진료를 위해 유행따라 진료과목을 바꾸기는 예삿일이라 하였다.

전공의 시절부터 지금까지 우리나라 의료지식과 기술은 세계 정상과 어깨를 나란히 한다고 자부하며 살아왔지만, 의사들의 직업의식과 진료 환경은 한참 못 미치는 것 같다. 다른 직업과는 달리 서비스의 결과가 서비스를 받는 대상의 몸과 생명에 직결되는 만큼, 신중하고 양심적이고 교과서적으로 서비스가 이루어져야 함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의 의료서비스는 경제 시스템에 의한 시장바닥처럼 의료서비스가 거래되고 있는 것 같다.

의사는 장사꾼이 아니다. 장사꾼처럼 살면 안 된다. 장사꾼처럼 대가를 바라고, 경제적 어려움을 걱정하고 불안해하며, 경제적 어려움의 타개책으로 환자를 보기 시작하면, 그 피해는 결국 우리나라 국민들에게 고스란히 돌아가게 마련이다.

이번 의료파업에서 보듯, 우리나라 의료 환경은 곯을 때로 곯아있다. 의사들의 비양심적인 진료 형태, 돈으로 가치판단되는 실적위주의 병원 경영, 의료비낭비의 주요 원인인 심평원과 보험수가문제는 각각 따로 풀어야할 개별적인 문제가 아닌 것 같이 보인다. 심평원에서 적절한 보험수가를 책정하지 못하여 국민들은 이중으로 보험을 들어 의료비낭비를 경험하고 있고, 저수가 정책은 병,의원들의 경제적 어려움을 양산하여 폐업을 면하려는, 빚더미를 피해 살아보려는 생계형 의사를 만들게 되었다. 쪼들리고 궁지에 몰린 의사가 어떻게 양심적이고 교과서적인 진료를 볼 수 있을까. 나의 미래의 모습이 이와 다르지 않을 것 같아서 매우 무섭고, 불안하고, 심지어 우울하기 까지 하다. 나는 다르게 살 것이라고 다짐해보지만 벌써부터 솔직히 자신이 없다.

지금은 국가에서 월급을 받고 있지만, 언젠가 나도 경제적인 어려움에 당면하여 환자를 어떻게든 꼬시고, 수술시키고, 입원시키고, 복잡하고 값비싼 검사를 행하며 살아가고 있다면, 그것보다 불쌍한 인생은 없을 것같다. 부유하여, 여유롭고, 넉넉하지는 못하더라도 돈걱정 않고, 빚걱정하지 않고, 양심에 어긋나는 진료행위는 하지 않으며 살아가기를 진심으로 소망해 본다.

환자들에게 돈을 조금 내게 하고, 돈이 덜드는 치료와 검사를 시행하여 환자편에서 진료를 생각하는 이상적인 의사의 모습을 오늘도 꿈꿔보지만, 우리나라의 진료 환경에서 그것이 가능할지 의심스럽다. 앞으로 의료파업 이후 의료정책이 얼마만큼 어떻게 진전이 있을지 모르겠지만, 국민은 경제적 이득과 건강을 얻고, 의사는 양심적인 진료환경을 얻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

<엄재두 경상남도청 공중보건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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