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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의 마지막을 준비하는 자세

병원선 공중보건의로서 일한지 2년이 다되어 간다. 보건소, 보건진료소가 없는 경상남도의 50여개의 섬에 계시는 할머니들을 한 달에 한 번씩 봐왔지만, 도중에 세상과 작별하여 어느순간 뵐 수 없게된 할머니들도 제법 경험하였다. 여기 계신 할머니들은 평균나이 대략 80세의 독거노인들이 대부분이다. 대부분 자식들이 잘 찾아오지 않으며, 배신감에 자식들이 보고 싶지도 않다고 하신 할머니도 많이 보인다. 대부분 일제시대와 6.25 전쟁을 경험하였으며, 아직도 머릿속에서 그때의 고생을 생생히 기억하신다. 전쟁을 피해 살기 위해 바다를 헤엄쳐 섬으로 들어와 정착하신 할머니도 계시고, 비행기에서 직접 포탄이 떨어져 집이 부서지는 것을 목격하신 할머니들도 계신다. 그 포탄을 피해 아이들과 섬에 있는 숲속에서 몇일간을 숨어 지내신 분도 계시고, 아버지의 강압에 의해 누구와 결혼하는지 얼굴도 모르고 16세, 18세에 결혼해 육지에서 섬으로 들어와 지금까지 섬에서 살고 계시는 할머니들도 여럿 계신다. 섬에 들어와 아이도 5명이상 낳고, 키워서 육지로 내보내고 지금은 기초연금으로 한 달에 30만원 받아가면서 외롭게 살고 계시는 할머니들이 제법 있다. 몇몇 섬에는 이렇게 힘겹게 고생 고생하며 인생의 마지막을 기다리시는 할머니들이 계신다. 20년 또는 30년이 지나면 경상남도 모든 섬의 80퍼센트 이상은 무인도로 변할 것이라는 것은 이곳 섬주민들 사이에서는 모두 받아들이는 사실이다.

할머니들은 대부분 노화로 인한 골관절염으로 관절, 뼈마디마다 안 아픈 곳이 없다. 면역력이 약하고 영양섭취도 제대로 되지 않아 감기도 잘 걸리고, 소화불량도 자주 경험하신다. 스스로 음식을 장만하기 위해 그나이 되도록 밭일을 해야만하고, 아직도 나무를 잘라 땔감으로 난방을 하기 때문에 손발이 트고, 손가락에 상처를 달고 사신다. 통증 때문인지 아니면 외로움 때문인지 밤에 불면증으로 괴로워 수면제를 달라고 하시는 할머니들도 많다. 하지만 공중보건의로서 해드릴 수 있는 진료는 감기약, 소화제, 대일밴드, 후시딘, 진통제가 전부다. 할머니들은 고맙다고 하시지만, 더 이상 해드릴게 없어서 죄송하다고 하시면, 이제 죽을 일만 남았는데 괜찮다고 하신다. 오히려 통증과 외로움, 고단함 때문에 빨리 죽고 싶다고 하시는 분들이 많다.

할머니들의 인생은 지금 우리의 인생과는 너무도 다르게 살아오신것 같다. 어린나이의 결혼, 일제시대, 6.25전쟁, 피난생활, 경제적 빈곤, 자식들의 출가 후 외로움, 관절염으로 인한 끊임없는 통증, 우울감, 불면증등이 할머니들의 인생을 끊임없이 괴롭혀 왔을 것 같다. 하지만 항상 웃는 얼굴, 자상하고 따뜻한 모습을 유지하며, 인생의 마지막을 초연한 듯 바라보는 할머니들에게 존경과 숙연한 마음이 절로 들게 된다.

조그마한 일에도 불평과 불만을 하는 자신의 모습과 너무 비교되어 너무나 부끄러울 뿐이다. 언젠가는 나도 저렇게 노화가 진행되면 아프고, 외로워 질 것이다. 통증과 죽음은 아무도 대신해 줄 수 없기 때문이다. 오롯이 혼자 견뎌내고 감당해야할 숙제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때가 되어 인생의 마지막이 힘들지라도 섬에 계시는 할머니들처럼 웃으면서 살아가고 싶다.

먹을 것이 있으면 나누어주고, 얼굴을 보면 눈을 마주치고 웃어주고, 서로의 건강과 안부를 묻고, 앞으로의 길을 기도해주는 삶을 살고 싶다. 그렇게 마무리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1년 있으면 공중보건의 복무기간이 끝나겠지만, 내 마음속에서 할머니들이 인생의 스승으로 머릿속에서, 마음속에서 잊혀지지 않도록 끊임없이 되새기며 살아갈 것이다. 남은 복무기간동안 만나는 할머니마다 남은 여생의 평안을 진심으로 기도해드려야겠다.

/ 엄재두 (경상남도청 공중보건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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