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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문희 인제대 서울백병원 외과 전담간호사

나에게 의료봉사란…

봉사는 받는 쪽보다도 베푸는 쪽이 훨씬 더 많이
치유 받고 행복한 것을 느끼게 되었다

올해로 4회째를 맞는 캄보디아 수술캠프, 그 중 3회를 함께하고 있다.

출국 당일 오후 두시쯤 병원으로 가 챙겨놓은 물품들을 실어 보낸 후 공항으로 향했다. 제일 먼저 인천 공항에 도착한 교수님, 전공의 선생님과 나는 이제 곧 도착하여 7박8일의 일정을 함께할 동료들을 기대 반 긴장 반의 마음으로 기다렸다. 서울, 상계, 부산, 해운대백병원에서 같은 뜻으로 모인 우리들은 여느 해와 마찬가지로 기대에 가득 차 들뜬 마음으로 캄보디아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다섯시간 정도 비행했을까, 캄보디아의 수도인 프놈펜 국제공항에 도착하였고 마중을 나오신 현지 선교사님과 헤브론 병원 선생님들의 도움으로 물품은 병원으로 보내고 우리는 숙소로 갈 수 있었다. 우리나라 시간으로는 새벽 세시가 넘은 시간이었지만 두 시간 느린 시차 덕분에 한시가 조금 넘어 잠을 청할 수 있었다.

다음 날 아침 일찍 헤브론 병원으로 출발하여 소중히 가져온 물품들을 풀어서 정리하고 수술실을 세팅하였다. 모두가 각자의 위치에서 필요한 기구나 물품을 준비하고 정리하느라 여념이 없었다. 헤브론 병원은 한국인 선교사분들이 모여서 세운 선교병원으로 현재 캄보디아인들을 대상으로 무료진료를 하고 있다. 현지 선교사님의 말씀에 의하면 새벽3시경부터 지방에서 올라온 환자들이 모여들어 북새통을 이룬다고 한다. 평생 한 번도 진료를 받지 못하고 생을 마감하는 사람도 있다는 캄보디아의 현실이 너무나도 안타까울 따름이었다.

수술실 준비가 끝나고는 다음날 아침 일찍부터 수술할 환자들을 예진하고 계획을 세웠다. 올해도 어김없이 갑상선에 20cm 이상 크기의 혹을 가지고 있는 환자들이 수술을 기다리고 있었다. 현재 우리나라에서는 체계적인 건강검진과 진단검사의 발달로 그 정도 크기의 혹을 가지고 있는 경우는 거의 볼 수 없다. 하지만 이 곳 캄보디아는 아직 의료보험 제도의 부재와 빈곤으로, 검사를 제대로 받지 못해 발병을 알지 못하거나 발병을 알고 나서도 경제적인 문제로 수술이 불가능한 경우가 많았다. 비록 말은 통하지 않았지만 우리는 그들의 마음을 이해하려 노력했고 그들 또한 우리들의 마음을 알아주어 백만불짜리 미소로 화답하였다.

수술 첫날, 한국의 각자의 병원에서 보다 더 빠르게 오전 수술이 시작되었다. 수술 규모가 크고 무엇보다 짧은 일정에 많은 수술이 예정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함께 호흡을 맞추기는 처음인 구성원들이지만 한 마음으로 수술에 임했다. 마취과 선생님들은 다소 낡고 오래된 장비였지만 수술하는 동안 최선을 다해 환자들을 편히 잠들고 깨어나도록 하였으며 외과와 수술실 선생님들 또한 최대한 빠른 시간에 안전하고 확실한 수술이 이루어지도록 애썼다. 두 방에서 동시에 수술이 진행되었고, A룸은 첫 환자부터 약 30cm 크기의 갑상선 종양이 기도를 누르고 있는 상황이었다. 직접 종양을 제거하는 이도, 뒤에서 지켜보는 이들도 숨죽여 기도하였다. 큰 문제없이 수술은 진행되었고 환자는 20년만에 정상적인 목을 가질 수 있게 되었다. 보는 이들의 속이 다 시원하였다.

B룸의 첫 환자는 유방암으로 진단을 받은 상태였다. 예전에는 우리나라에서도 대부분 유방전절제술을 시행했지만 2000년 이후 항암치료와 방사선 치료의 발달로 암 덩어리를 제외한 유방조직을 남기는 부분절제술이 더 많이 시행되고 있으며 이는 여생의 life quality를 향상시킨다는 중요한 의미가 포함되어 있다. 아직 항암치료와 방사선 치료가 미미하고 경제적 어려움을 겪고 있는 이곳 사람들에게 추가적인 치료부담과 삶의 질을 논하기엔 어려움이 있었다. 40대 초반의 젊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유방전절제술을 시행할 수 밖에 없는 안타까움에 수술을 하면서도 마음 한구석이 먹먹하였다. 그날 예정되어 있었던 8건의 수술을 마치고 해가 진 후에야 숙소로 돌아왔다. 모두들 긴장하고 피곤했던지 바로 잠자리에 들었다.

▲ 올해로 4회째를 맞는 캄보디아 수술캠프는 짧은 일정에 많은 수술이 예정되어 있어 의료봉사 기간 내내 모든 참가자가 새벽부터 밤 늦게까지 분주하게 움직였다.

수술 둘째 날, 역시 아침 7시 15분에 버스에 올라타 병원으로 향했다. 오늘의 첫 환자는 18세 여환으로 배에 축구공만한 크기의 혹이 있는 상태였다. 난소에 생긴 물혹이 30cm가 넘도록 자란 것이었다. 주변 부위로의 유착이 심할까봐 걱정을 많이 했는데 생각보다는 심하지 않아 큰 무리 없이 혹을 제거할 수 있었다. 수술이 끝나고 떼어 낸 혹을 세숫대야 크기의 용기에 담았는데 조금의 공간도 남지 않고 가득 차 모두들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열여덟 소녀의 미소를 되찾아 줄 수 있어서 무엇보다 기뻤다. 오전동안 두 건의 수술을 무사히 끝낸 후 교수님과 전공의 선생님, 그리고 나는 이동진료를 위해 외부로 나가게 되었다. 40분여를 비포장 도로 위를 달려 도착한 곳은 도시개발로 인해 강제로 이주된 주민들이 모여 사는 곳으로 수도인 프놈펜의 외곽 끝자락에 위치하고 있었다. 캄보디아에서는 아직 대부분 어린 나이에 결혼하여 많은 아이들을 낳고 있는데 빈민가의 대가족들은 더욱 열악한 상황일 수밖에 없었다. 마을 이장님 댁을 잠시 빌려 간이 진료소를 만들었고 소문을 들은 주민들이 하나둘 몰려왔다. 아직 미성년자인 엄마들이 아픈 아이를 안고와 진료를 받는 모습에 마음이 아팠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병원을 가 본적이 없었다. 예진을 하며 혈압과 체온, 혈당을 측정하고 두 분 선생님이 나누어 진료를 보셨다. 소독이 필요한 상처를 치료하고 열이 나는 아이들에게 해열제를 처방했다. 하지만 한 번의 진료로 완전한 치료를 하기에는 부족한 부분이 많았다. 웃기도하고 울기도 했던 아이들의 더 없이 맑은 눈망울이 아직도 아른거린다. 여러 가지로 아쉬움이 많았지만 그 들을 뒤로 하고 우리는 다시 병원으로 복귀했다.

▲ 캄보디아 수술 캠프에서 의료봉사단 기념촬영 모습.
수술 셋째날, 어김없이 아침 일찍 병원으로 향했다. 양 방에서 예정된 수술을 모두 문제없이 마치고 수술실 정리까지 깔끔하게 한 후 병원을 나왔다. 잠깐의 휴식 후 근처의 음식점에서 저녁식사와 함께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다들 즐겁게 이야기꽃을 피우고 있을 때 쯤 병원에서 연락이 왔고 첫날 첫 번째로 수술했던 갑상선종양 환자가 과호흡증세를 보이며 위험한 상태가 예상된다는 내용이었다. 더구나 그 환자는 지병으로 천식까지 앓고 있는 상황이라 더욱 안심할 수가 없었다. 현재 가장 환자 가까이에서 치료하고 있는 전공의선생님 두 분이 짐을 챙겨서 병원으로 갔다. 만일의 상황에 대비하여 응급약물도 준비하였다. 나머지 사람들은 숙소로 돌아가 잠을 청했지만 마음이 편치 않았다. 다음 날 아침 서둘러 병원으로 향했고 다행히 환자도 무사했다. 밤새 잠도 못자고 수고한 전공의 선생님들에게 모두 감사의 마음을 표했다. 두 팀으로 나뉘어 전체 환자의 회진 및 드레싱을 시행했고 역시 말은 통하지 않았지만 서로가 눈빛으로 느낄 수 있었다. 상처는 깨끗하게 나아가고 있었고 그 들의 미소가 우리들의 마음을 더욱 따뜻하게 해주었다.

병원에서 일하고 있는 우리들은 누구나 한번쯤 의료봉사에 대해서 생각해 본다. 하지만 여러 가지 이유로 실천까지 가기에는 어려움이 많은 것이 사실이다. 나 역시 막연한 생각들뿐이었고, 외과 전담 간호사로 일하게 되고, 장기려 박사님을 알게 되기 전까지는 그랬다. 봉사라는 단어는 생각만으로도 왠지 모르게 마음이 무겁고 벅차다. 내가 매일매일, 이제는 너무나도 익숙하게 하고 있는 내 일이 누군가에게는 도움이 될 수 있다는 것이 정말 뿌듯하다. 봉사라고 하는 것이, 받는 쪽보다도 베푸는 쪽이 훨씬 더 많이 치유 받고 행복해지는 것인 듯하다. 이러한 행복을 느낄 수 있게 해주시고 함께 수고하신 많은 분들께 감사하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 또한 수술을 받은 19명의 환자 모두에게 빠른 쾌유와 앞으로의 건강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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