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이 뭐예요?

환자가 '아무것도 모르는 사이' 잠 드는 순간부터 편안히 의식이

돌아오는 순간까지 환자와 함께 숨 쉬고 호흡하는 곳이 마취과

요즘 잘 나가는 걸그룹 ‘포미닛’(4minute)의 노래인 ‘이름이 뭐예요?’는 마치 일상처럼 묻는 듯한 반복적인 가사로 한번 듣는 순간 흥얼거리며 절로 따라 부를 수 있는 노래다.

수술 후 환자가 마취에서 깨어날 때도 마취과에서 환자에게 반복적으로 물어보는 말 역시 “이름이 뭐예요?”다.

그렇다. 노랫말에서 “이름이 뭐예요?” 란 자기가 마음에 드는 상대방에게 간절히 구애하는 말이지만 의료인이 환자에게 건네는 “이름이 뭐예요?” 란 의료진에게 절대적인 신뢰감으로 자기 목숨을 맡긴 환자에게 “환자분~! 저희가 최선을 다해 수술을 무사히 마쳤습니다. 이제 편안한 마음으로 의식을 회복하십시오.”라고 하는 말이다.

대부분의 환자들이 가장 두렵고 무섭고 피하고 싶은 곳이 수술실이다. 그래서 환자들이 수술실 안으로 들어 올 때 모두들 눈을 꼬옥 감고 있다. 말을 건네도 눈을 감은 채 상대방 얼굴도 보지 않고 대답만 한다. 잘못을 저질러 엄마에게 처벌 받기를 기다리는 아이마냥 겁내하면서 “선생님 아무것도 모르게 빨리 재워주세요” 라고 한다.

수술을 무사히 마치고 회복실에 오면 ‘아무것도 모르게’ 환자를 재워주던 ‘마취’란 놈이 몸 깊숙한 곳에서 자신의 주변을 울타리치고 있는 ‘이성’이라는 방어벽을 무너트린다. ‘위신’이라는 가면도 벗긴다. 그래서 마취에서 깨어나는 사람을 울게도 하고, 노래를 부르게도 하고, 심하게 몸부림치게도 하고, 사랑하는 사람의 이름을 부르게도 한다.

오래 전, 전 국민 의료보험이 되기 전 일이다. 수술을 마치고 회복실에서 마취에서 깨어나는 환자분에게 이름을 물어보는데 차트에는 분명 ‘김영숙’이라고 적혀있는데 환자는 자꾸만 ‘김순자’라고 대답한다. “환자분~! 이름이 ‘김영숙’이라고 적혀있는데 왜 자꾸 ‘김순자’라고 하세요?” “으음… 나는 ‘김순자’고 ‘김영숙’은 친척언니야. 의료보험도 없고 병원비도 없어 의료보험증 빌렸어….” 그만 들통이 나고 마는 웃지 못 할 에피소드도 있었다.

마취과는 환자가 ‘아무것도 모르게’ 잠이 드는 순간부터 편안히 의식이 돌아오는 순간까지 환자와 함께 숨 쉬고 호흡하는 곳이다. 매섭고 예리한 매의 눈으로 환자 상태를 점검하고 신체에서 나타내는 이상 징후에 즉각적으로 대처하며 집도의가 오로지 수술에만 전념 할 수 있도록 환자상태를 유지시켜 주는 곳이다.

방학 때에는 유독 수술이 많다. 동료하고도 눈빛 인사만 교환 할 뿐, 본인의 생리적 욕구(배고픔, 화장실)에 반응하기조차 버겁다. 하지만, 오늘 하루도 신나고 활기찬 목소리로 크게 환자에게 묻는다. “이름이 뭐예요?”

저작권자 © 의학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