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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ME 기획연재 유형준 교수의 행림 詩 산책

황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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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수 끝난 들판을 날아다니며
떨어진 이삭들을 찾아 헤매는

인적 끊긴 나루터에 호올로 서서
강 건너 언덕만 바라다보는

눈 덮인 벌판 건너 바랑도 없이
앞을 막은 북벽(北壁) 향해 걸어만 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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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건: 서울의대 졸업, 인하의대 성형외과 펠로우 교수.
‘시와 시학’ 등단(2005)
.

떨어진 이삭들을 찾아 헤매며 줍는 일은 발과 손의 수고가 입과 식욕 충족을 위하여 이루어 낸다. 공중을 날든 지상을 걷든 이삭을 주제로 행하는 모든 일은 식욕을 채우기 위한 것이다. 식욕을 달랜다는 본능만을 강조하면 영락없는 방황이다. 먹기 위해, 생존을 위해 찾아 헤매는 방황이다. 매 끼니 마다 먹을 것을 가져다 주는 자비는 없다. 오늘도 이삭을 주우려 이곳 저곳을 얼마나 걸었는가.
홀로 서서 바라보는 일은 눈의 인내가 저 속 깊이 가슴에 남아 여전히 거니는 인기척을 달래려 참아내는 흐름이다. 머얼리 바라본다는 건 시간과 공간을 의식적으로 느리게 하고 넓힌다는 것이다. 홀로 서서 멀리 바라 본다는 것은 결국 멀리 객관적으로 서서 자기 자신을 바라본다는 것이다. 강 건너 언덕을 바라보면 저 언덕이 나를 응시한다. 내가 병을 치료하고 아픈 이를 치유한다고 믿지만 사실은 병이 나를 환자가 나를 살피고 돌보고 있는 것이다. 그게 진료며 치유다.
된바람 불어 쳐오는 북쪽은 가물가물하며[검을 玄], 추운 겨울[겨울 冬]과 물[물 水]의 이미지며, 지혜[슬기 智]와 곧음[곧을 貞]을 표징(表徵)한다. 이러한 북쪽의 속사정들이 벽처럼 벌떡 일어나 앞을 가로 막든 아니면 이러한 사정들이 든든히 우뚝 하든 바랑도 없이 걸어가는 단호함은 피동적 사건은 아니다. 바랑은 중이 등에 지고 다니는 자루 모양의 큰 주머니를 이르는 말이다. 그리고 바랑은 잿빛이다. 바랑도 없다는 건 심지어 모든 잿빛까지 버리고 그저 몸만 가는 게 아닌가. 다분히 능동적 사연이다.
지금 내가 어느 위치에 있든 손과 발과 입과 눈과 가슴, 그리고 다시 손과 발을 열심히 젓고 밀어내며 바로 앞에 보이는 벽을 향하여 가는 항해는 끊임없는 능동적 사건이 분명하다. 물론 그럴 수밖에 없다는 섭리 가득한 해명도 분명히 가능하다. 어디를 향해 가든 어디에 서서 있든 이삭이 있고 언덕이 있고 벽이 있다는 말은 내가 존재한다는 말과 동의어(同義語)다. 나와 병과 병자(病者)가 각각의 명칭으로 한 진료실 안에 함께 있는 것과 같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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