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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ME 기획연재 유형준 교수의 행림 詩 산책
헛발질

헛발질

남상혁

● ● ●

흘러 흘러
계절 지나
가락 잃은 노래속

숨어버린
쓰린 사연
가지 끝에 걸려 있다

바람도
손 쓸 수 없는
달라붙은 응어리.

연분홍 빛
물들은
가슴 뭉클 아쉬움

하늘을
휘저어서
옛일들을 그려 볼래

신 세월
더듬어보니
헛발질만 했구나

● ● ●


남상혁: 연세 의대. 남상혁 외과.

문예사조 등단(1965).

「우리는 누구나 꿈 많고, 하고 싶은 일 많고, 야심 많고, 모든 것을 이룰 수 있을 것만 같은 젊은 시절이 있었다. 그리고 영원히 살 것처럼 위대한 사업들을 구상하고 실천하며 성공을 꿈꿔 왔던 그런 시절이 있었을 것이다.」 -남상혁, ‘황혼의 행로’ 中-
세월도 맛이 있다. 달콤한 시절, 매운 나날, 씁쓰름한 하루, 신산(辛酸)한 신 세월 등으로 사람마다 때마다 다른 맛을 낸다. 또 세월은 강도가 있다. 바위처럼 단단히 응어리진 세월, 손 대면 뭉클한 연분홍 시간 등.
세월은 온전하게 쌓여가는 것이라고 믿고 있다. 어느 누구나 어릴 적 -아니 지치고 곤비(困憊)한 요즈음에도 더러- 버스에 타고 있노라면 별안간 길가의 가로수가, 가로수 옆의 집들이 뒤로 뒤로 줄지어 달려가던 기억을 지니고 있을 것이다. 버스가 또한 버스에 탄 내가 앞으로 달려갔지만 순간적으로 가로수며 집이 뒤로 간 것처럼 착각 한 것이다. 혹시 쌓였다가 허물어지거나 색이 바래고 문드러져 뭐가 뭔지 분간할 수 없이 섞여 버리기도 하지만 세월은 쌓여간다. 애정이 쌓이고 우정이 미움이 사랑이 쌓이고, 지식도 덕도 빚도 추억도 슬픔도 쌓이고 쌓인다.
사치스러운 장식인지 모르겠다. 전구를 갈아 끼우는 법만을 알면 됐지 빛의 물리학적 성질을 익혀둘 필요까진 없는 것처럼 그저 살아가면 세월은 스스로 제격대로 쌓여 가는 법인데. 다만, 제 나름대로 의료의 한 귀퉁이에서나마 환자는 이래야 되고, 의사는 저래야 된다면서 겪은 삶의 동강들을 혹시나 참한 비단 한 가닥으로 꿸 수 있지 않을까 한두 가지 생각을 마름질한다. –유형준 ‘조그마한 동강 하나 부여잡고’ 中-
이제 헛발질 할 만큼의 기력이 남아 있음을 고마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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