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굴 탐사

박언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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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레는 마음으로
경이의 눈동자로
처음 위내시경의 노즐을 잡던 날
창 밖엔 첫눈이 흩날리고 있었습니다.
떨리던 두 손과 마음을 다잡으며
태고의 신비를 찾아 미지의 동굴 탐사가 시작되었습니다.
내시경 검사를 받던 그 환자의 위장은
단 한 번도 빛이 닿지 않은 공동(空洞)의 동굴이었습니다.
내시경 검사, 요즈음 나에겐 일상이 된 동굴탐사입니다.
눈꺼풀이 무거워짐을 아는 순간
내 눈동자는 두 배로 키워지고, 마우스피스가 물려진 입구를 지나
조심조심 암흑의 통로로 헤드램프를 비추며
미지의 동굴동(洞窟洞)에 도착합니다.
병소를 놓칠 새라 순간순간 긴장하며
처녀성(妻女星)을 뒤지듯 샅샅이 환자의 속을 들여다봅니다.
종유석이라 이름 지은 <용종>이 보입니다.
벽면에는 곳 악마의 숨소리가 들릴 <장상피화생>이 보이기도 합니다.
까칠해진 천정과 위축된 바닥, 물기 흐르는 통로,
동굴의 벽이 공명을 하며 구역질소리를 내기도합니다.
속을 훤히 다 보았지만, 아직 환자의 속마음만은 알 길이 없습니다.
첫눈이 내린 이른 아침
병변을 조금만 늦게 발견했더라면
목숨을 잃을 뻔 했던 그 할아버지가
천수(天壽)를 다하시고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오늘도 나는
달 표면에서 시료를 채취하던 <닐 암스트롱>마냥,
내시경 집게로 검사조직을 잘라 담으며,
어두운 거리에 촛불을 밝히는 마음으로
희망의 동굴에 조용히 사랑과 생명의 불빛을
밝히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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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언휘: 경북의대(의학박사), 소화기내과, 박언휘 종합내과 원장.
한국문학신문 등단(2010).

생명이 경이롭다면 생명을 치유하는 행위 역시 경이롭지 않을 수 없다. 그 행위의 역할자가 의사다. 신비한 미지를 탐사하는 눈꺼풀이 무거워지는 고단한 일상을 조심조심 살아간다. 혹여 사지를 쉴 여유로운 틈새에도 머리 속 뇌세포에 불을 켜듯 헤드에 램프를 달고 눈을 바라보며 손을 잡아가며 조직을 살펴가며 속마음을 헤아리려 애쓰고 그의 여명(餘命)을 붙들고 새벽을 기다린다. 그렇다. 바로 그게 생명이며 생명 경외이며 사랑이다. 그게 바로 희망이며, 그로 인해 고단한 흰 가운 속의 일상이 품고 있는 위장은 허기(虛飢)를 설레임으로 바꾸고 있다. 그런 동료가 여전히 함께 있음과 그 동료가 전하는 詩를 일상에 품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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