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늘보
김현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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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천히 걸어간다 이것저것 구경한다 흥정한다 옷을 입어본다
누군가를 찾아 헤맨다 서로 쳐다보며 웃어댄다 부딪치며
지나간다 유모차를 끌고 간다 전단지를 살핀다 에스컬레이터를
탄다 올라간다 내려온다
그냥 흘러간다 뻐끔뻐끔 유영한다
새로 생긴 고속도로 뒷켠으로 밀려난 국도의
이정표는 희미해지고 구겨진 가드레일은 을씨년스럽다
폐가처럼 방치되어 있는 언덕 밑 낡은 차 옆에서
허리 굽은 노파가 잡초를 뽑고 있다
폐쇄공포증 환자처럼 엘리베이터를 싫어하는 나는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올라간다 반대편에는
컨베이어를 탄 사람들이 내려오고 있다
나무처럼 반듯이 서서
나는 나무늘보가 된다
나무늘보는 나무에서 거의 잠만 잔다지
신진대사율이 아주 낮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지
가끔 눈만 껌벅거린다지
환경파괴로 서식지가 줄어들고 있다지
사람들이 부딪칠 것 같이 몰려다니고 있다
삶을 시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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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식: 전남의대 졸업. 송도병원 부원장.
애지 등단(2006).
‘하루에 18시간 정도 나무 위에서 잠을 잔다. 후각은 잘 발달되어 있지만 청각은 둔하다. 지능은 낮은 편이다. 체온은 변온성(變溫性)이다. 야행성이며 나무의 새싹•잎•열매 등을 먹는다.’ 나무늘보에 대한 설명의 일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