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

주영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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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혹에는 너무 <惑>해서 허무했고 그 후 내내 나는 도무지 고독했고 한 바퀴
돌아 귀가 순해질 때면 비로소 사랑을 하리라.

초겨울 밤에는 둥지에 달빛이 고이는
별똥별처럼
눈이 멀고야 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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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영만: 충남의대 졸업. 광명 우리내과 의원.
문학사상 등단(1981).

나이 듦에 따라 사랑의 모양도 그 정의도 다르게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그 대상이 단수이든 복수이든 혹은 남이든 자기 자신이든 서로의 맞닿음이 있다는 것은 세월이 쌓인 높이와 무관하다.
유혹을 하는 그대가 있어 유혹을 받는 내가 있고, 유혹을 받는 그대가 있어 유혹을 하는 내가 있어 그렇게 홀로 쓸쓸하여 고독이라 불렀다.
세상을 세파(世波)로 여겨 밀리고 깎이는 편력이 쌓이고 관록이 붙으면 사랑을 얼마간 깨우칠 줄 알아 서둘러 나이 들어도 역시 허무함이 사랑의 일부임을 확인할 뿐이다. 대상은 여전히 숨쉬고 거리를 걷고 있다. 이처럼 더러 변형된 모습으로 마음의 안팎을 스산하게 서성이는 나와 그대의 처지를 고독이라 불리고 싶어지는 일. 사랑이다.
우주에 떠있던 물체가 지구의 대기권에 들어오며 공기와의 마찰로 인해 빛을 내며 흙으로 떨어지는 것을 별똥별이라 한다. 무생명(無生命)의 우주 부스러기가 초겨울 밤하늘 빛으로 선을 긋는 일은 대기와의 절절한 또한 격렬한 맞닿음의 현상이다. 닿아 부딪치거나 맞닿아 으스러지도록 끌어 당기는 현상. 바로 사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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