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건의료 대표 뉴스 - 자매지 일간보사
의학신문
상단여백
HOME 기획연재 김원곤 교수의 미니 술이야기
영화 ‘가을의 전설’과 금주법

대공황 발생 1933년 美 ‘금주법’ 폐지
가족 통해 금주법 얽힌 부작용 그려내

본지는 지난 1년여 동안 서울의대 김원곤 교수(흉부외과•사진)의 도움으로 본란에 ‘미니 술 이야기’를 연재해 왔습니다. 임상가로서 연구와 진료, 나아가 학생과 전공의 교육을 위해 시간을 쪼개 쓰면서도 평소 술에 대한 남다른 식견으로 본란을 통해 술에 얽힌 이론과 역사 그리고 각국의 술에 관한 상식의 폭을 넓혀 주신 김원곤 교수님께 깊이 감사드립니다. 특히 지난 1년간 본란을 통해 소개된 김 교수의 ‘술 이야기’는 단순히 알코올이나 음주에 대한 단면이 아니라 술에 얽힌 문헌을 고찰하고, 자료를 수집하여 시대와 그 나라의 문화와 역사를 일깨워준 값진 원고였기에 독자들의 반향 또한 높았습니다. 임상가로서 교육, 연구, 진료에 힘쓰며, 무엇보다 저작 저술 활동에 모범을 보여주신 김 교수님께 다시 한 번 감사드립니다. 김원곤 교수의 ‘미니 술 이야기’는 인터넷 신문인 디지틀보사(www.bosa.co.kr)에 전문이 수록되었음을 알려드립니다.

‘가을의 전설’은 에드워드 즈윅 감독의 1994년 작품으로 1979년에 발표된 짐 해리슨의 동명 소설에 기반을 두고 있다. 한국에서는 1995년에 상영되었다. 이 영화는 아카데미 촬영상을 수상하였고 작품성을 크게 인정받았지만 흥행에서는 큰 성공을 거두지는 못하였다.
영화의 시대 배경은 제1차 세계대전 전부터 미국의 금주법 시대를 거쳐 1930년대까지를 주로 다루고 있다. 이 영화는 몬타나주의 아름다운 자연풍경과 함께 아름다운 음악선율로 마치 한폭의 그림을 보는 것과 같은 느낌을 준다.

이 영화는 원스텝이라는 인디언이 그가 평생에 걸쳐 하인으로 봉사하였던 러드로 대령 일가의 지난날을 회상하는 형식으로 시작된다. 당시 미국 정부의 인디언 학살정책에 불만을 갖고 있던 윌리엄 러드로 대령은 스스로 전역을 결심하고 몬타나주의 외딴 곳에 목장을 짓고 정착하며 세 아들(장남 알프레드, 둘째 트리스탄, 막내 사무엘)을 키우며 살아간다. 어머니 이사벨은 미국서부의 산악 지대 몬타나주의 혹독한 겨울추위와 그 생활환경에 힘들어한 나머지 가정을 버리고 몬타나를 떠난 상태다.
어느해 여름 동부로 유학 갔던 사무엘이 약혼녀 수잔나를 데리고 나타난다. 뛰어난 미모에 청순미까지 겸비한 그녀의 등장은 형제 모두의 마음을 들뜨게 만든다.

어쩌면 일상의 평범한 에피소드로 끝날 수도 있는 이들의 만남은 사무엘이 당시 유럽에서 벌어지고 있는 세계 1차 대전에 참전하겠다는 의사를 밝히면서 큰 전환점을 맞게 된다. 이에 큰형 알프레드도 찬성하여 같이 참전 의사를 밝히자 전쟁의 아픔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던 러드로 대령이었지만 마지못해 승낙하고 만다. 그리고는 둘째 트리스탄에게 함께 가서 막내를 잘 돌보아 달라는 부탁을 한다.

그러나 전쟁은 사무엘의 생각과는 달리 참혹하고 힘들었다. 결국 그는 작은 형 트리스탄의 열성적인 보호에도 불구하고 독일군의 총에 전사하고 만다. 트리스탄은 형언할 수없는 슬픔에 빠져 원스텝의 가르침대로 동생의 심장을 꺼내 그의 영혼을 자유롭게 해 준다. 한편 전쟁의 와중에 다리를 다친 큰형 알프레드는 집으로 돌아온다. 사무엘의 사망 소식을 접한 수잔나는 바로 몬타나를 떠나려고 했으나 폭설로 도로가 막히자 러드로 대령의 권유로 봄이 될 때까지 계속 머물기로 한다.
수잔나가 머물게 되자 알프레드는 내심 사랑해 왔던 그녀와 사무엘 대신 결혼하기로 결심하나, 수잔나는 뒤늦게 돌아 온 트리스탄에게 마음과 몸을 주고 만다. 알프레드는 배신감으로 집을 떠나 도시 헬레나로 나가 거기서 착실히 부와 명성을 쌓아 하원의원의 자리에까지 오른다.

한편 트리스탄은 막내 사무엘에 대한 여전한 아픔과 함께 특유의 방랑벽으로 사랑하는 수잔나를 내버려둔 채 집을 떠나 몇 년간 방황한다. 그리고는 ‘사랑은 끝났으니 다른 사람과 결혼하라’는 편지를 수잔나에게 보낸다. 이를 본 러드로 대령은 뇌졸중으로 쓰러지고 설상가상으로 집안은 마침 시작된 소값 폭락으로 점점 황폐해져 간다.

결국 수잔나는 알프레드의 구혼을 승낙하게 된다. 한편 수년 후 집으로 돌아 온 트리스탄은 오래 동안 그를 사모하였던 하인 집안의 딸 이사벨과 결혼하여 두 아이를 낳는다.
때마침 미국에서는 금주법(1920~1933년)이 시행되었다. 트리스탄은 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연방정부의 모든 정책에 불만을 가지고 있던 아버지의 성원 아래 밀주 제조로 돈을 번다. 트리스탄의 사업은 순조롭게 진행되는듯 하였으나 경쟁 조직과의 갈등 과정에서 아내 이사벨이 죽게 되는 사고가 발생한다. 이후 트리스탄의 처절한 복수가 진행되고 결국 그는 감옥에 갇히게 된다. 수잔나는 감옥에 있는 트리스탄을 면회하면서 사실 사무엘과 이사벨이 모두 죽기를 바랬노라며 그에 대한 여전한 사랑을 고백한다. 고백 후 그녀는 자살을 선택한다.

▲ 영화 ‘가을의 전설’ 포스터
이 영화의 후반에서는 미국 금주법 시대를 배경으로 이야기가 펼쳐진다. 큰아들 알프레드는 금주법에 찬성한 하원의원으로 나오고 그의 아버지는 정부에 대한 철저한 반감으로 아들 트리스탄에게 밀주 제조로 이익도 보면서 정부에 본때를 보이자는 태도를 보인다. 결국 경쟁 조직과의 갈등에서 트리스탄의 인디언 혼혈 부인 이사벨이 사망하는 비극이 발생하고 이에 대한 트리스탄 일가의 복수극이 펼쳐진다.

그러면 과연 이 영화의 배경이 되고 있는 당시 미국의 ‘금주법’이란 어떤 것이었을까?
미국이 청교도 사상으로 무장된 개척자들에 의해 시작되었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이런 영향 탓인지 미국의 금주운동은 그 역사가 결코 짧지 않아 이 영화 전반부의 시대 배경이 되고 있는 1차 세계대전 이전까지만 해도 주류의 제조판매를 금지하고 있는 주가 벌써 10여 곳에 이르렀다. 그러던 것이 1차 세계대전의 발발과 함께 미국이 전쟁에 참여하면서 전시의 식량 절약, 작업 능률 향상, 맥주로 상징되는 독일에 대한 반감 등이 어울어지고, 또 당시 가난한 이민자들에 의한 음주 문제가 부각되면서 보다 전국적인 규모의 금주운동에 대한 필요성이 추진력을 얻게 되었다. 그 결과 미국연방의회를 통과한 미국 수정헌법 18조에 의해 마침내 1920년 1월 금주법이 정식으로 발효되게 된다.

그러나 금주법의 실제 시행 과정은 부패와 범법으로 얼룩졌다. 굳이 오늘날의 관점에서 보지 않더라도 사회적 캠페인으로 추진되어야 할 정도의 사안이 국가에 의해 법의 이름으로 강요되었으니 그 부작용은 가히 불문가지였다. 술을 마시고 싶어하는 사람들의 강력한 수요에 필연적으로 밀주가 등장할 수밖에 없었고, 이에 얽힌 각종 폐해는 그 후 수많은 갱영화의 좋은 소재가 되었다.
밀주와 밀매에 관련된 막대한 이익을 둘러싼 갱들의 주도권 싸움은 곳곳에서 그야말로 피비린내 나는 살인극을 낳았다. 시카고를 무대로 활동하였던 유명한 갱 알카포네도 바로 이 시대가 낳은 필연의 산물인지도 모른다. 또 밀주와 함께 무허가 술집도 대도시를 중심으로 금주법을 비웃듯이 번창하면서 또 다른 범죄의 온상이 되었다. 덩달아 정치, 사회 전반에 걸쳐 혼란스러운 날들이 계속되었다.

또 하나 역설적인 사실은 금주법으로 술을 못마시게 하니까 이전에 술을 마시지 않던 사람들도 호기심으로 오히려 술을 마시게 되어 금주법 기간 동안의 음주률이 더 높아지는 진풍경을 연출하였다. 이런 와중에 1929년 대공황의 발생으로 극심한 경기 침체가 오면서 금주법은 사실상 그 효력을 잃고 말았다. 마침내 1933년 온갖 부작용만 낳은 채 미국의 금주법은 수정헌법 21조에 의해 폐지되고 만다.
영화 ‘가을의 전설’에서는 금주법에 얽힌 이야기를 흔히 보는 갱영화의 차원에서가 아니라 한 가족의 상황을 통해 그 부작용의 한 단면을 그려나가고 있다. 영화에서 방랑아 트리스탄은 금주법으로 모처럼 이룬 단란한 가정을 지켜나갈 경제적 이익을 얻게 되지만 결국에는 이로 인해 가정이 해체되는 비극을 겪게 된다. 영화에서 주인공 트리스탄이 ‘가을의 전설’로 기억되듯이, 금주법 역시 당시 시대가 낳은 ‘어리석은 법의 전설’로 오래동안 기억될지도 모른다.

곽수연 기자  yeon8045@nate.com

<저작권자 © 의학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곽수연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여백
여백
포토뉴스
여백
여백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