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라운드호그 데이, ‘사랑의 블랙홀’ 영화로 유명세
‘버무스’ 식물 첨가한 방향성 와인… 독특한 향 특징

‘사랑의 블랙홀’은 해롤드 래미스 감독의 1992년 작품이다. 영어 원명은 ‘그라운드호그 데이’(Groundhog day)인데 이대로는 의미 전달이 어렵다고 보고, ‘사랑의 블랙홀’이라는 꽤 그럴듯한 영화 이름이 탄생됐다.
그라운드호그 데이는 매년 2월 2일 미국과 캐나다에서 지켜지는 축제일로 겨울의 끝에서 봄이 언제 올 것인가를 점치는 날로 알려져 있다. 이날의 유래에 관해서는 몇 가지 설이 있으나 독일에서 시작됐다는 것이 가장 유력하다.
원래 유럽에서 지켜지던 가톨릭의 촛불 행사인 성촉일(Candlemas) 행사에 독일에서는 그날 아침 고슴도치 또는 오소리가 구멍에서 나와 만약 해가 떠있어 자기 그림자가 생기면 겨울이 아직 6주정도 남았다고 생각해서 다시 들어가고, 만일 날이 흐려 그림자가 생기지 않으면 봄이 온 것으로 생각하고 밖으로 나온다고 믿었다고 한다. 이런 다소 황당한 이론의 풍습은 천성적으로 워낙 경계심이 많은 이들 동물들이 자기 그림자만으로도 무서워 숨는다는 이야기와 절묘하게 연결된 측면이 있다.

아무튼 그 후 독일 이민자들이 미국 펜실베니아에 정착할 때 이 풍속을 그대로 가져 왔고, 다만 유럽산 고슴도치 대신 그 지방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우드척’(Woodchuck: Groundhog)이라는 큰 다람쥐처럼 생긴 북미산 ‘마멋’(Marmot)을 사용하게 됐다. 어떻게 보면 양력으로 3월 초ㆍ중순경에 개구리가 땅 밑에서 나온다는 우리의 경칩과 비록 시기는 맞지 않지만 비슷한 개념의 풍습이라고도 볼 수 있다.
그라운드호그 데이는 1886년 2월 2일 펜실베니아의 펑추토니라는 작은 마을에서 처음 공식적으로 거행됐다. 이후 매년 정기적으로 거행된 이 행사는 점점 미국뿐만 아니라 세계인들의 관심을 끌게 되었고, 이를 배경으로 1993년 ‘사랑의 블랙홀’이란 영화가 좋은 흥행성과를 거두면서 더욱 유명세를 타게 되었다.

영화에서는 자기중심적이고 오만하기까지 한 피츠버그 소재 방송국 기상통보관 필 코너스(빌 머래이 분)가 방송국 피디인 리타(앤디 맥도웰 분)와 카메라맨 래리와 함께 그라운드호그 데이 취재차 펑추토니 마을로 가는 것으로 시작한다.
취재날 아침 6시 호텔의 알람 시계의 라디오 음악에 맞춰 필은 잠을 깬다. 여전히 얄팍한 스타의식으로 거만한 그에게 재수없는 하루가 펼쳐진다. 반갑지도 않은 보험판매원 고교동창을 만나 지겨운 대화를 나눠야만 했고, 이를 피하고자 급히 길을 재촉하다 얼음구덩이에 발을 빠뜨리기도 한다.

어쨌든 그라운드호그 데이의 행사는 펼쳐지고, 필이란 문패가 달린 특별히 마련된 나무둥지에 들어있던 그라운드 호그를 행사 진행자들이 꺼낸다(그라운드호그의 이름과 주인공의 이름이 똑 같이 필이다). 그리고 금년은 그림자를 보았다라고 말하고 겨울이 6주 더 연장된다고 선언한다. 리타는 이 과정을 무척 재미있어 하지만 필은 그저 대충 촬영을 마치고 얼른 돌아갈 궁리만 한다. 하지만 폭설로 인한 도로 불통으로 일행은 어쩔 수 없이 하룻밤을 더 묵고 가게 된다. 투털거리던 필도 어쩔 수가 없었다.
문제는 다음날부터 시작됐다. 그가 정확하게 6시에 똑같은 라디오 음악에 맞춰 눈을 떴을 때 그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은 똑같은 그라운드호그 데이의 반복이었다. 세 번째 날에서는 리타에게 이 기막힌 현실을 고백하기도 하나 미친 사람 취급만 받는다. 정신과의사의 “내일 또 다시 오라”는 말에 내일이 없는 그로서는 혼자서 답답해 하나 아무도 이해해 줄 리가 없다.

이후로 수없이 반복되는 그라운드호그 데이를 맞이하며 필의 심경에도 변화가 생긴다. 처음에는 “내일이 없다면 책임질 일도 없다”는 이론과 특유의 못된 성격이 어우러져 여자 꼬시기 등 마음 놓고 온갖 짓궂은 일을 자행해 나간다. 그러다가 이 기막힌 현실에 지친 나머지 갖가지 방법으로 수없이 자살을 시도한다. 그러나 결국 다시 똑같은 아침에 똑같은 장소에서 눈을 뜨게 되는 자기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결국 이 상황을 겸허하게 받아들이기로 한 필은 주위 사람들에게 친절하고 도움이 되는 사람이 되기로 마음먹는다. 먼저 모든 사람들에게 진심으로 대하는 한편 끝없이 반복되는 하루를 이용하여 각종 피아노, 얼음조각 등 특기들을 배워 주위 사람들을 즐겁게 해준다.

그리고 일기예보를 할 때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정확하게 하루를 미리 예상하여 식사 중 틀니를 잘못 삼켜 질식 직전인 남자, 나무에서 떨어지는 아이, 타이어가 펑크나 쩔쩔매는 할머니들과 같이 되풀이 되는 사건에 슈퍼맨처럼 나타나 이들을 도와주면서 점점 선량한 사람으로 변해간다.
필은 자기중심적 사고방식의 긴 겨울잠에서 벗어나 인간애로 가득찬 진정한 사람으로 새롭게 태어나게 되고, 그와 함께 마침내 바라던 리타의 사랑도 얻게 된다. 그리고 바로 그 다음날 그가 그토록 기다리던 내일이 눈앞에 펼쳐진다.

영화에서는 필의 일상이 계속되는 시기에 바에서 리타와 함께 술을 마시는 장면이 나온다. 필이 먼저 ‘짐빔’(버번위스키의 일종)과 얼음과 물을 시키니까 리타는 ‘스위트 버무스’(sweet vermouth)를 주문한다. 이를 기억해둔 필은 그 다음 똑같은 상황이 반복되었을 때 본인이 먼저 스위트 버무스를 주문한다. 리타는 본인과 취향이 같은 필을 보고 호감을 느끼게 된다. 필은 “이 술이야말로 자기로 하여금 로마의 태양이 오후의 건물을 비출 때를 생각나게 한다”고 너스레를 떤다. 둘은 세계평화를 기원하며 술을 들고…. 이 장면은 필이 똑같은 날의 끌 없는 반복에 좌절하고 있는 중에서 리타에게 본격적인 애정을 느끼게 되기 시작하는 것을 암시하는 중요한 장면이 된다.

그러면 여기서 리타가 좋아했던 술 스위트 버무스, 보다 정확하게는 얼음과 트위스트를 넣은 스위트 버무스는 과연 어떤 술일까?
먼저 버무스는 한마디로 말하면 식물을 첨가한 강화와인이라고 할 수 있다. 즉 단순히 높은 알코올 농도의 술을 첨가하여 주도를 높인 강화와인에 비해 각종 식물을 첨가하여 특유의 향을 강조한 와인인 것이다. 이 때문에 버무스를 ‘방향성 와인’(aromatic wine)이라고도 부른다.
버무스는 기본 술인 백포도주에다 제품에 따라 다양한 허브, 꽃, 식물뿌리, 향신료를 넣고 설탕으로 단맛을 낸다. 알코올 도수는 브랜디를 사용하여 강화를 시키기 때문에 보통 18~19%까지 도수가 올라간다.
버무스에는 크게 드라이 버무스와 스위트 버무스의 두 종류가 있다. 이 영화에서 나오는 스위트 버무스는 1786년 까르파노라는 사람에 의해 이탈리아에서 처음 만들어졌다. 이후 이탈리아에서는 19세기에 친자노(Cinzano)와 오늘날 세계 최대의 버무스 회사로 자리잡은 마티니 앤 로시(Martini & Rossi) 등 유명 회사들이 속속 등장하였다. 스위트 버무스는 식전에 마시는 아페리티프로 사용되거나 칵테일 맨하탄의 재료로도 사용된다.
특히 스위트 버무스는 영화에서 리타가 처음 주문한 것처럼 얼음과 트위스트를 넣어 함께 마시면 그 참맛을 즐길 수 있는 것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여기서 트위스트는 라임 또는 레몬 껍질을 벗겨서 만든 것으로 술 안에 넣어 특유의 풍미를 더해주는 역할을 한다. 스위트 버무스에는 색깔에 따라 레드 또는 화이트의 두 가지가 있다.
반면 맑은 색깔의 드라이 버무스는 19세기 초 프랑스에서 처음 개발되었고, 진과 함께 유명한 칵테일 마티니를 만드는 주재료가 된다.
여러분들도 정말 즐거운 일로 가득찬 하루를 마무리할 때 스위트 버무스 한잔을 얼음과 레몬 트위스트와 함께 드셔 보시면 어떨런지?
혹시 아름다운 하루가 일생 동안 끝없이 반복되는 행운이 같이할지도 모른다. 비록 듣기 좋은 꽃노래도 한 두 번이라는 긴 세월의 교훈이 우리를 망설이게 할지라도 말이다.

스위트 버무스<왼쪽>와 드라이 버무스 미니어처(50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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