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코, 강한 호프향의 황금빛 ‘필센 맥주’ 탄생 효시
‘버드와이저’ 이름 연고권 소송으로 유명세 떨쳐

어느 정도 연배가 있는 분들이라면 1952년 헬싱키 올림픽의 영웅 자토벡(Emil Zatopec)을 아직도 기억하고 있는 사람이 적지 않을 것이다. 그 대회에서 남자 육상 5000미터, 1만미터, 그리고 마라톤 3종목을 석권한 자토벡은 고통에 가까운 철학적인(?) 표정으로 역주하는 것으로도 유명한 선수였다. 지금도 20세기를 대표하는 육상인의 한사람으로 손꼽히고 있는 그가 바로 체코 출신이다. 이밖에도 체코는 아름다운 몰다우강의 풍광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명곡 ‘나의 조국’의 작곡가 스메타나(Bedrich Smetana)와 유명한 ‘신세계교향곡’의 작곡가 드보르작(Antonin Dvorak) 등 수많은 예술가들을 배출한 곳이기도 하다.

한편 체코는 유명한 민주화 운동이었던 1968년 프라하의 봄과 공산 체제를 무너뜨린 무혈 시민혁명인 1989년 벨벳 혁명에 이르기까지 정치적인 사건으로도 우리에게 잘 알려져 있는 나라다. 원래는 체코슬로바키아로 불리었으나 1993년 체코와 슬로바키아의 두 공화국으로 분리 독립된 이후 지금에 이르고 있다. 또한 체코는 서쪽 영토의 옛 이름이었던 보헤미아(Bohemia)로도 우리에게 친숙하게 다가오기도 한다. 이런 체코이지만 맥주에 관한 이 나라의 역사적 기여에 관해서 알고 있는 사람은 그렇게 많지 않을 것이다.

사실 체코는 어느 맥주 생산국에 뒤지지 않는 오랜 맥주 제조 역사를 가지고 있다. 일찍이 1118년에 이미 맥주 양조장이 있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체코맥주를 대표하고 있는 유명한 두 도시 Pilsen과 Budweis(이 지명들은 체코어에서 변형된 독일식 지명이다)에서도 13세기에 이미 양조장에서 맥주를 만든 것으로 기록하고 있다.
맥주가 역사에 처음 기록된 것은 무려 5000년 전인 메소포타미아의 수메리아인에 의해서이지만 1842년전까지의 맥주는 오늘날 우리가 맥주라면 당연히 떠올리는 황금빛 액체와는 거리가 멀었다. 맛도 물론 달랐고 색조도 짙은 톤에 탁한 맥주들이었다. 이는 당시의 제조공법으로는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러던 것이 1842년 Pilsen의 한 양조장에서 독일 바바리아 출신의 기술자 Joset Groll이라는 사람을 고용하면서 세계맥주의 역사를 바꾸어 놓는 획기적인 맥주가 탄생하게 되었다. Groll은 새로운 냉각발효법을 이용하여 이전과는 전혀 다른 매혹적인 황금빛을 띤 맑은 맥주를 생산하였다.
이 맥주가 오늘날 맥주 색깔의 상징으로 자리잡게 되는 그 유명한 필센 맥주(Pilsner)의 효시가 된다. 필센 맥주는 그 후 외국으로 수출되면서 폭발적인 인기를 끌게 되고 수많은 모방제품들을 낳게 된다. 오늘날 많은 맥주 상품에서 보는 Pilsen type, Pilsner 또는 Pils라는 표기들이 바로 이러한 종류의 맥주들을 가리키는 말이다. 수많은 아류의 범람에 위기를 느낀 필센맥주의 원조 양조장에서는 1898년부터 ‘Pilsener Urquell(original Pilsener)’이라는 상표로 맥주를 출시하며 원조임을 강조하고 차별화를 꾀하고 있다(사진 1). 현재 국내에도 정식으로 수입되고 있는 이 맥주는 일반 맥주와는 구별되는 강한 호프향으로 많은 전통 맥주 애호가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필센맥주 이외에 체코맥주로 유명세를 떨치고 있는 또 하나의 맥주가 ‘Budweiser’이다. 이 맥주는 그 맛에서도 다른 맥주에 뒤지지 않지만, 정작 이 맥주를 유명하게 만든 것은 그 이름에 대한 연고권에 관한 오랜 법정 다툼이었다.
1876년 독일 태생의 미국 양조업자 Adolphus Busch는 체코의 체스케 부데요비체(독일식 지명 Budweis)를 방문하였을 때, 수도원에서 맛본 맥주에 감명을 받고 미국에서 새로운 상표의 맥주를 생산하기로 하였다. 그는 그의 장인 Eberhard Anheuser의 양조장에서 일하면서 훗날 맥주회사 안후이저부시(Anheuser-Busch)사의 창립을 주도한 사람이었다. 그는 새로운 맥주 이름을 ‘Budweiser’로 명명하였다. 이 맥주가 바로 Anheuser-Busch사의 대표 상품이면서 우리에게도 너무나도 잘 알려진 미국 최고의 히트 맥주상표 ‘버드와이저’이다.

그런데 1907년 체코 Budweis에 본거지를 두고 있던 지역 양조장에서 Budweiser란 명칭의 소유권을 주장하면서 법적 논쟁이 시작되었다. 그로부터 100년이 넘도록 무려 100건이 넘는 소송으로 이어지고 있는 이 상표전쟁을 주도한 회사는 1865년부터 이미 Budweiser란 이름으로 맥주를 판매하고 있던 Budweiser Budvar 양조장이었다. 체코는 Budweiser라는 명칭은 일반명칭이 아니며 지역 연고권이 있는 고유의 명칭이라고 강력하게 주장하였다.

그러나 당시에는 어차피 대륙을 넘어선 장거리 판매에 필요한 운송 수단이 제대로 확립되지 않았을 때였기 때문에 북미대륙에서는 안호이저부시사가 상표권을 유지하고 부드바르사는 유럽에서의 판매에 치중하기로 1911년 합의하였다. 이후 1937년 부드바르사의 미국 진출 시도로 또 한번 소송전을 벌였던 두 회사의 싸움은 세계 제2차 대전으로 체코가 독일에 합병되고 종전 후에는 공산화가 되면서 잠시 수면 밑으로 잠복하였다.

그러나 결국 1989년 체코의 자유화와 함께 상표권 문제가 다시 부상하게 된다. 이후 안호이저부시사의 부드바르 인수합병 시도를 비롯한 수많은 소송이 세계 각국에서 진행되었다. 이러한 상표전쟁의 결과 부드바르사의 경우 유럽 대부분의 국가에서는 Budweiser Budvar로 판매되고 있으나, 북미대륙에서는 Czechvar로 그리고 기타 국가들에서는 Budejovicky Budvar로 소개되는 등 상표전쟁의 뒷모습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사진 2). 안호이저부시사의 경우도 체코는 말할 것도 없고 러시아, 헝가리, 폴란드 등 동구권에서는 Budweiser 상표를 사용하지 못하고 있다.
최근에는 2009년 3월 유럽연합(EU) 1심 재판소가 안호이저부시 인베브(Anheuser- Busch InBev)사가 개별 국가가 아닌 EU 전역에서 Budweiser 상표를 사용할 수 있도록 해달라는 신청을 유럽상표청(OHIM)이 거절한 것은 정당한 조치였다고 판시하기도 하였다.
우리나라에서는 8년 소송 끝에 부드바르사가 승소하여 안호이저 부시사의 Budweiser 이외에 2007년 5월부터 Budweiser Budvar란 상표로 부드바르사의 맥주가 정식으로 수입되고 있다.

<사진 1>황금빛 맥주 시대를 연 필센 맥주.
<사진 2>독일 시장에서 판매되고 있는 체코의 대표적인 맥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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