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일라 증류소, 스카치위스키 최고 품질 자랑
아드벡•라가불린•라프로익 증류소 강한 피트향 특징

‘신의 물방울’이라는 일본 만화가 국내 와인붐의 열기에 적지 않은 기여를 했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실제 읽어 보면 재미있는 스토리 전개 이외에도 저자의 탄탄한 와인 지식이 뒷받침하고 있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지만, 개인적으로는 이 책의 인기에는 무엇보다도 간명하면서도 함축적인 제목이 주는 첫 느낌이 매우 크다고 생각한다. 와인을 표현함에 있어 신의 물방울이라는 표현을 능가할 만한 더 이상의 낭만적인 표현이 따로 있을까 할 정도로 그 작명에 종종 감탄하곤 한다.
그런데 위스키의 세계에서도 이에 못지않은 일본식 책 제목에서 유래된 조어가 하나 있다. 이른바 ‘위스키의 성지’라는 표현이다. 이 말은 우리나라에도 널리 알려진 일본의 유명한 소설가인 무라카미 하루키(村上春樹)가 쓴 ‘무라카미 하루키의 위스키 성지여행’이란 책 제목으로부터 나온 것이다.

이 책의 내용 자체는 사실 그다지 깊이는 없다. 무라카미가 부인과 함께 항공편으로 아일라라는 섬에 잠깐 들러 몇몇 위스키 증류소들을 들러본 기행문을 적은 글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책이 어느 정도의 인기를 누렸던 것은 무라카미 하루키라는 유명 작가의 유려한 필체도 한 원인일 수도 있겠지만, 무엇보다도 위스키의 성지라는 낭만적인 표현이 주는 강렬한 첫인상이 독자들에게 크게 어필한 것으로 생각된다.


그러면 이 책에서 위스키의 성지로 표현된 아일라(Islay)라는 섬은 과연 어떤 곳이기에 이토록 대단한 이름을 선사받게 되었을까?
아일라는 스코틀랜드 서쪽 해안의 Hebridean Islands 중 가장 남쪽에 위치한 섬으로 영어 스펠링에 비해 그 발음이 특이한 편이다. 아일라는 남북으로 약 40km, 동서로 약 32km 밖에 되지 않는 아주 작은 섬으로, 인구도 불과 3400명 정도에 지나지 않는다. 그나마 인구의 약 1/3은 바닷가 마을인 행정중심지 보모어에 그리고 또 다른 1/3이 남쪽의 항구 도시 포트엘렌에 살고 있다. 그 나머지 1/3이 섬 이곳저곳에 흩어져 살고 있으니, 정작 섬 크기에 비해 체감 인구밀도는 아주 낮은 편이다.

그런데 이 섬을 유명하게 해 주는 것은 무엇보다도 이 작은 섬에 무려 8개의 위스키 증류소가 있다는 것이다. 그것도 대부분의 증류소가 긴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고 있으며 품질 측면에서도 스카치위스키 중 최고를 자랑하고 있는 것이다. 특히 이탄(peat)이라는 천연 매장연료를 사용해 몰트보리를 볶음으로서 인해 술에서 배여 나오는 강력한 피트향은 수많은 아일라 위스키 마니아들을 탄생시키는 원동력이 되고 있다.
현재 아일라 섬에 있는 8개의 증류소 중에서 킬코만(Kilchoman) 증류소라는 곳은 그 규모도 가장 작고 설립연도도 2005년 11월로 가장 최근에 시작됐다. 따라서 제품에 대한 인지도도 아직 그렇게 높지는 않다. 그러나 그 외의 7개 증류소는 위스키 애주가들 사이에서는 모두 대단한 유명세를 떨치고 있는 곳들이다.

우선 섬의 북쪽에는 부나하먼(Bunnahabhain)과 쿠릴라(Caol Ila) 증류소가 있고, 그 반대인 남쪽에는 포트엘렌 마을 근처에 연이어 있는 아드벡(Ardbeg), 라가불린(Lagavulin), 라프로익(Laphroaig)의 세 증류소가 마치 삼총사처럼 위치하고 있다. 그리고 섬 중간에는 Loch Indaal 만에 연해있는 전통의 보모어(Bowmore) 증류소와 브루크라디(Bruchladdich) 증류소가 있다.
지역에 따라 술맛도 차이가 뚜렷해 남쪽의 3개 증류소는 강한 피트향이 특징인 반면에 북쪽의 2개 증류소는 상대적으로 피트향이 약한 편이다. 지역적으로 중간쯤에 있는 보모어는 피트향도 중간쯤이고, 브루크라디 증류소의 현재 제품들은 피트향이 강하지 않으나 곧 상당히 강한 피트향의 제품들을 출시할 예정으로 있다.

아일라에는 이들 이외에도 과거에 여러 증류소들이 있다가 사라졌다. 이 중 지금 흔적이나마 남아있는 곳은 1820년대 후반 설립됐다가 지금은 폐쇄된 포트엘렌(Port Ellen) 증류소이다. 이 증류소는 폐쇄 상태임에도 불구하고 과거 생산했던 제품들에 대한 인기가 대단해 지금도 위스키 마니아들 사이에서는 고가로 거래되고 있다.
사람들이 아일라 섬을 찾는 큰 이유는 물론 앞서 말한 위스키 증류소 방문을 위한 것이지만 그 외에도 조류 관찰, 낚시, 캠핑 등의 여가를 즐기러 오기도 한다. 사실 아일라의 해안선은 정말 아름답다. 어떤 곳은 마을과 바다가 어울려져 아름다운 풍경을 연출하기도 하고 어떤 곳은 그 자체로 마치 미니어처 다도해와도 같은 풍경을 보이기도 한다. 내륙의 경치 역시 헤더(heather)를 비롯한 낮은 관목들이 깔려 있는 넓은 평원과 함께 완만한 구릉과 초원들이 또 다른 아름다움을 선사한다.

아일라 섬으로 가는 길은 크게 배로 가는 방법과 비행기로 가는 방법 두 가지가 있다. 배로 가기 위해서는 보통 글래스고에서 시외버스를 타고 Kennacraig 부두까지 가게 되는데 약 3시간 반 가량 소요된다. 페리에는 차를 실을 수가 있어 자기 차를 가지고 가는 사람도 많다. 비행기는 글래스고 공항에서 아일라 공항까지 바로 가는 직항이 있다. 시간은 약 35분가량 걸리는데 신속하다는 편의성은 있으나 배로 섬을 보면서 들어가는 낭만은 포기해야 한다.
위스키라는 말의 원래 어원은 ‘생명의 물’이라고 한다. 문득 생각해 보면 생명의 물에 ‘위스키의 성지’ 만큼 어울리는 표현을 찾아보기도 어려울 것이다.

▲사진1 아일라 섬에서 현재 가동 중인 위스키 증류소를 표시한 지도. 모두 8개 증류소 중 Kilchoman 증류소는 비교적 최근에 설립돼 이 지도에는 표시 되어있지 않다(Ardbeg 증류소에서 만든 것이라 이 증류소 표시가 크게 되어 있다).

▲사진2
멀리 도로변에서 본 아드벡 증류소의 아름다운 풍경.

▲사진3 포트엘렌에서 라프로익 증류소 가는 길목의 바다 풍경.

▲ 사진4 아일라 섬으로 가는 페리선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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