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사전서 한국 현대사 고민 읽는다

▲ 김일훈 박사
在美 내과 전문의, 의사평론가

나의 서재에는 이미 고물이 된 우리말 ‘큰 사전’ 전6권이 꽂혀 있다.
옛날 사전이라 쓸모가 거의 없지만 선친이 남긴 값진 유물이나 골동품같이 귀하게 느껴져 책장 한구석에 간직하고 있는 셈이다.
일찍 돌아가신 선친이 애용하던 이 사전을 나는 마치 벽에 걸린 그의 초상화를 보듯 한번씩 물끄러미 쳐다보는 습성이 생겼다. 이 부피가 큰 책은 모진 비바람 속에 풍화작용을 겪은 외로운 비석같이 초라하게 보이지만 그 모습 속에서 내 선친이 살아온 한국 현대사의 고민을 새겨놓은 듯 여겨지기 때문이다.

총 3670페이지로 구성된 6권의 제목과 발행연도는 다음과 같다.

제1권: 조선어학회지음 조선말 큰 사전(ㄱ~깊)-1947년 10월
제2권: 조선어학회지음 조선말 큰 사전(ㄴ~ㅁ)-1949년 5월
제3권: 한글학회지음 큰 사전(ㅁ~숑)-1950년 6월
제4권: 한글학회지음 큰 사전(수~잎)-1957년 8월
제5권: 한글학회지음 큰 사전(ㅈ~칭)-1957년 8월
제6권: 한글학회지음 큰 사전(ㅋ~ㅎ)-1957년 10월

제1권의 머리말에선 “말은 사람의 특징이요, 겨레의 보람이요, 문화의 표상이다. 조선말은 우리 겨레가 반만년 역사적 생활에서 문화활동의 말미암던 길이요, 연장이요, 또 그 결과이다”로 시작하여 “제 말의 사전을 가지지 못한 것은 문화민족의 커다란 수치일 뿐 아니라 민족자체의 문화향상을 꾀할 수 없음을 절실히 깨달아…”로 사전을 만들게 된 큰 뜻을 장황하게 언급하고, 1928년 한글날에 조선어사전 편찬회가 창립되어 그후 조선어학회에서 이 편찬회 사업을 인계받은 자초지종을 설명하고 있다.
일제의 조선 민족 문화 말살정책으로 소위 조선어학회 사건이 생겨 “포악 무도한 왜정은 1942년 10월에 어학회에 관련된 사람 30여명을 검거하여, 사전원고도 사람과 함께 홍원과 함흥으로 굴러다니며 감옥살이를 겪는 신세가 되었다”하고 그러다가 해방이 되어 감옥에서 살아남은 한글학자들이 다시 모여들고 잃었던 사전원고를 서울역 창고에서 도로 찾게 되는 행운을 얻어 “여기에 첫 권을 박아 501회의 한글날을 맞아 천하에 이 사전을 펴내게 된 것이라”고 발표하고, “이로서 문화민족의 체면을 세우는 첫걸음을 삼고자 한다”고 맺고 있다.

제1권은 일제하에 시작한 큰사전 편찬사업이 말로 다할 수 없는 진통 끝에, 해방 후 1947년 10월 9일 탄생을 보게 된 것이다. 그런데 제2권이 선보인 것은 2년 후(1949년 5월)로 되어 있다.
해방직후 우리나라 개인소득은 인도나 아프리카 후진국과 다름없는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에 속했으며 서울거리에 나서면 흰옷에 갓 쓴 사람들이 많을 때라 이러한 진풍경을 보고 조선 사람은 가난하고 무지해서 독립할 능력이 없으니 신탁통치해서 다스려야 한다고 떠들썩하던 때이기도 했다.

그래서 사전원고가 이미 완비되었는데도 출판이 그토록 늦어진 데는 재정적 이유 때문이 아니었는가 짐작되는데, 이 짐작이 틀림없는 것은 제2권의 책머리에 적은 글이 입증하는 듯하다. 즉 “이 책은 미국 록펠러재단에서 원조해준 물자로써 박아낸 것이다. 그 물자 값의 절반으로써 이 책값을 싸게 하였다…”라고 적혀 있기 때문이다.
국가적이어야 할 큰사전 완성사업에 국고원조는 기대할 수 없던 처지에 미국재단의 원조로 2년을 기다려 제2권이 겨우 빛을 보게 되었으니 이 얼마나 가슴 아픈 일이었던가!
또 특기할 일은 제1권, 제2권의 책이름이 <‘조선어학회’지음 ‘조선말 큰 사전’>이었던 것을, 제3권부터는 <‘한글학회’지음 ‘큰 사전’>으로 이름을 바꾸었다.

그리고 제3권은 6.25사변 직전(1950년 6월 1일)에 발간된 것으로 이때는 대한민국이 수립되어(1948년 8월 15일), 반공으로 사상정리가 마무리되고 국호도 대한민국 또는 한국이라 불러야 했고, 조선이라 함은 좌익적이라 해서 금지했던 때라 조선어학회도 ‘탈조선’하여 한글학회로 개칭한 것까지는 좋은데, 그때만 하더라도 한국말 큰사전이라 하기엔 좀 생소한 어감이 있었던지 ‘큰 사전’이라고만 이름 하였다.

다른 나라 사람이 봤으면 무슨 ‘큰 사전’인지 의심할 법도 했지만 당시의 시대적 모호성과 사상적 고충을 역력히 나타낸 타협적인 결과라 하겠다. 이러한 사회일반의 ‘반풍수 집안 망치는’ 듯한 무방향성 바람은 드디어 6.25 전쟁이란 돌풍으로 이어져 ‘큰 사전’ 발간도 중단되어 버렸던 것이다.

제3권(ㅁ~숑)은 마지막에 ‘숑아지= 송아지의 옛말’로 끝나버렸으니 애석한 일이었다. 이제 우리 조선족의 혼은 어진 송아지의 울음같이 구슬프게 울면서 동족상잔(6.25 전쟁)의 지옥속으로 빠져든 것이었다.

해방후 발간한 ‘조선말 큰 사전’과 ‘큰 사전’ 전6권

제1권 ‘조선말 큰사전’(1947년)과 제3권 ‘큰 사전’(1950년)의 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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