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병원의사협의회 주신구 회장, ‘의료계 투쟁 일변도 정책 대응 한계점’ 지적
정부는 의사 통제 대상으로만 판단....‘전국 의사노조 결성’ 시급
[의학신문·일간보사=김현기 기자] “정부는 의료현장을 통제의 대상으로만 보고, 의료인의 권익은 뒷전으로 밀려나 있습니다. 의사들이 스스로 지킬 수 있는 유일한 제도적 수단이 바로 ‘의사노조’라고 생각합니다.”
대한병원의사협의회 주신구 회장<사진>은 최근 대한의사협회 출입기자단과 간담회를 통해 현 의료계의 위기를 돌파하기 위한 해법으로 이같이 ‘의사노조 결성’을 제시했다.
주신구 회장은 그동안 의료계 내부적으로 인지도가 낮다고 평가받았던 병원의사협의회(병의협)를 봉직의를 대표하는 단체로 성장시키는 데 큰 역할을 해온 인물이다.
실제 병의협은 그동안 봉직의의 근무환경 개선, 진료권 보장, 불합리한 계약 구조 해소 등 현실적인 문제 해결을 위해 꾸준히 목소리를 내왔다. 특히 병원 내 의사의 인권 문제, 당직·근무시간 등 노동조건 개선을 주요 의제로 제기하면서 ‘병원 내 봉직의 권익의 대변자’로 자리매김했다.
하지만 병의협 차원에서 의사노조를 보다 신속하게 확산시키지 못한 것이 주 회장에게 가장 아쉬운 점으로 남아 있다. 이에 따라 남은 임기 동안 의사노조 활성화와 제도 정착에 전력을 다하겠다는 방침이다.
주 회장에 따르면 정부의 강압적인 정책이 반복되고 의사들의 단체행동을 사실상 완전히 틀어막는 법안까지 논의되는 상황에서 합법적으로 쟁의행위를 할 수 있는 구조가 필요한 상황이다. 즉, 의사들이 생존을 위해 선택할 수 있는 합법적 방패막은 노조뿐이라는 것.
주 회장은 “아직도 의료계 내부에 ‘의사가 무슨 노조냐’는 인식이 남아 있지만, 이것이야말로 현실을 외면한 태도”라며 “합법적 쟁의수단을 확보하지 못하면 정부 정책에 대한 실질적 대응이 불가능하다”고 지적했다.
이어 그는 “기본적으로 대한의사협회라는 조직은 투쟁에 적합하지 않은 구조인 만큼 기존 실패를 답습할 것이 아니라 지금이라도 전국의사노조 준비위원회를 조속히 출범시켜야 한다”며 “의협이 병의협, 전공의노조 등과 협력해 전국 단위 의사노조 결성에 박차를 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에 따라 병의협은 기존 의사노조의 안정적 운영을 지원하고, 병원별 신규 노조 결성을 돕는 한편 지난 10일 전공의노조와 업무협약을 체결하면서 연대도 강화하고 있다.
신뢰 회복 위한 ‘세대 갈등 봉합’ 물론 ‘국민 눈높이 소통’ 필요
이와 함께 주 회장은 의대증원 사태 이후 불거진 의료계 내부의 세대 갈등에 대해 봉직의 직역이 중재자 역할을 해야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주 회장은 “개원의와 교수들을 설득하고, 의대생과 전공의들의 목소리를 경청하면서 합리적인 대안을 도출하기 위한 노력을 지속해야 한다”며 “젊은 세대 의사들이 합리적이고 법적 절차에 따른 방식으로 목소리를 낼 수 있도록 지원하겠다”고 말했다.
아울러 주 회장은 대국민 소통 방식에도 변화가 필요하다고 진단했다. 예를 들어 성분명 처방에 대해 ‘국민 건강이 악화된다’고 주장하기보다 ‘내가 처방받은 약이 의사와 환자 동의 없이 다른 약으로 바뀔 수 있다는 사실에 동의하는지’를 물어야 한다는 설명이다.
병의협은 이러한 새로운 소통 방식의 일환으로, 공신력 있는 여론조사 업체를 통해 조만간 대국민 여론조사를 시행하고, 그 결과를 국회와 언론에 제시한다는 계획이다.
주 회장은 "지금까지 의사들은 우리가 옳다고 생각하는 점을 부각하고 정부 정책의 잘못만을 비판해왔다"며 "의사 중심적인 사고를 벗어나 철저히 국민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이를 알아듣기 쉽도록 목소리를 높여야 한다"고 제안했다.
필수의료 강화? 현실 모르는 구호...의료현장 중심 정책 필요
주 회장은 ‘필수의료 강화’ 정책에 대해서도 비판적 시각을 내비쳤다. 이 정책이 현장의 현실과 동떨어진 관료 중심의 구상에 불과하다는 이유에서다.
주 회장은 “의료사회학자들이 설계하고 복지부 관료들이 구체화한 정책은 정권이 바뀌어도 동일하다”며 “정작 환자를 직접 진료하는 의사들은 논의 테이블에 없었고, 그 결과가 지금의 필수의료 붕괴”라고 꼬집었다.
이어 그는 “정책 설계 단계에서 의사들의 목소리를 반영하지 않는 한, 어떤 제도도 현장에서 작동할 수 없다”며 “정부가 의료계를 협력 파트너가 아닌 통제 대상으로 보는 한, 필수의료는 결코 회복되지 않는다”고 우려했다.
이에 따라 병의협은 그 대안으로 △독립적 의료인력추계기구 설립 △새로운 수련 시스템 구축 △의료사고 형사처벌 제도 합리화 △한국형 수가체계 개편 등을 제시하고 있다.
주 회장은 “정부 정책이 의료계를 옥죄는 방향으로만 흐르는 지금, 봉직의들이 스스로를 지키지 않으면 누구도 대신 싸워주지 않는다”며 “”병의협은 그 변화의 중심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