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병기 수련병원협의회 총무이사, 진료·교육 트랙 분리한 수련병원 체계 촉구
정부 수련환경 혁신 관련 전담 인력 확보 등에 대한 보상도 요청
수련시간 줄더라도 역량 키우는 교육 강조..."수련 평가와 역량 측정을 체계화해야"
[의학신문·일간보사=이재원 기자] 수련현장 복귀 관련 전공의가 내세운 대정부 요구안에 수련환경 개선과 수련연속성 보장이 들어가면서, 이에 대한 방안 모색이 화두가 되고 있다.
이러한 가운데, 조병기 수련병원협회 총무이사(충북대병원 정형외과 교수)는 의정갈등 시기 전공의 없이도 돌아간 병원을 고려해, 그 경험을 바탕으로 전공의의 업무와 교육을 분리해 교육 중심 병원으로 바꿔나갈 때라고 조언했다.
조병기 수련병원협회 총무이사(충북대병원 정형외과 교수)는 4일 국회에서 열린 ‘전공의 수련환경 및 연속성 보장 토론회’에서 이같이 밝혔다.
먼저 조 이사는 “충청북도는 3차 병원이 하나뿐이라 진료 부담이 크다. 나 역시 전공의 시절에는 ‘의사는 희생해야 환자가 편하다’는 사고로 버텼지만, 지금은 후배들에게 그 부담이 전가되는 구조를 고쳐야 한다”며 “이번 의정 사태로 교수들도 전공의의 존재 가치를 뼈저리게 느꼈다”고 말했다.
이어 전공의 복귀를 앞두고 병원 현장에 쌓여 있는 긴장과 갈등의 현실도 솔직하게 털어놨다. “이미 PA 인력과의 업무 분장, 복귀 전공의들과 기존 인력 간의 융화, 교수들과의 신뢰 회복 등 해결해야 할 문제가 산적해 있다”며 “그러나 결국 함께 일했던 동료로서 시간이 해결해 줄 것이라 믿고 있다”고 말했다.
조 이사는 “전공의가 없던 1년여 동안 병원들이 자생력을 키웠고, 이는 교육 트랙과 진료 트랙을 나눌 수 있는 계기가 됐다”며 “이제는 전공의의 업무와 교육을 분리해 실질적 교육 중심 병원 체계를 구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다만, 해결 과제도 따라온다고 언급했다. 조 이사는 “책임지도전문의, 교육전담 인력을 확보해 수련의 질을 높이자는 정부 수련환경 혁신 시범사업은 좋은 시도지만, 지방병원은 인력 부족으로 참여조차 어렵다”고 현실적인 한계를 지적했다.
또한, 재정 보상도 촉구했다. 그는 교육전담 전문의의 진료량 축소로 인한 병원 수익 감소 문제도 언급하며 “병원장들이 기피하는 구조다. 실효성 있는 재정 보상 없이는 제도가 안착할 수 없다”고 말했다.
조 이사는 수련시간이 줄더라도 역량을 키우는 교육이 이뤄져야 한다고도 조언했다. 조 이사는 “전공의 수련 시간이 줄어드는 것에는 공감하지만, 그만큼 수련의 질을 높이는 것이 선결 과제”라며 “근무 시간만 줄이고 역량을 키우지 못하면 ‘전문의 자격’에 대한 신뢰도 흔들릴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어 그는 “6시 퇴근이 목표가 아니라, 이후에도 스스로를 갈고닦는 치열함이 있어야 세계적인 의사가 될 수 있다”며 “수련 평가와 역량 측정을 체계화하고, 그에 따른 진급과 자격 부여 시스템도 정비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전공의 복귀와 수련 연속성 문제 해결하려면 ‘인력과 재정 확보’가 핵심”
이날 토론에 참석한 고범석 전국의과대학교수협의회 부회장(서울아산병원 유방외과 교수)은 전공의들이 복귀할 때 기존 수련 연차를 인정받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군 복무 등으로 수련이 중단된 전공의가 연차를 다시 시작해야 한다면 이는 개인과 사회 모두 큰 낭비”라며 “TO(수련 정원) 보존이 필수적”이라고 밝혔다.
다만 병원 현실상 TO를 비워놓지 않으려 할 것이므로, 복귀 전 기간 동안 일할 수 있는 대체 인력, 즉 ‘버퍼 인력’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또한 야간 당직 문제, 임신·출산으로 인한 업무 공백 부담에 대해 현실적인 어려움을 토로했다. 고 부회장은 “임신·출산을 장려하는 사회 분위기와 달리 실제 현장에선 업무 부담 증가와 눈치 보는 문화가 존재한다”며 “출산을 축하받기 위해선 이를 지원할 충분한 인력과 버퍼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재정 문제에 대해서도 고 부회장은 “인력 충원과 수련 환경 개선을 위해선 의료 보험료 인상이 불가피하다”면서도 “국회가 국민 정서를 고려해 보험료 인상을 쉽게 승인하지 않는 현실이 문제”라고 짚었다. 그는 “재정 확보가 이뤄져야만 전공의들이 안정적으로 교육받고 국민에게 질 높은 의료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다”고 강조하며 발언을 마무리했다.
수련 관리 전담 상설 기구 요청...세부안에는 의협-의학회 '동상이몽'
전공의 수련환경 개선과 수련 연속성 확보를 위해서는 수련 관리 전담 상설기구가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이어졌다. 그러나 큰 틀에서는 같으나, 세부적으로 의협과 대한의학회의 의견이 다소 엇갈렸다.
도경현 대한의학회 홍보이사(서울아산병원 영상의학과 교수)는 “전공의는 단순한 개인 성취의 과정이 아닌, 국가가 필요로 하는 전문 의료 인력을 길러내는 공공의 영역”이라며 “전공의 수련을 잘 시키는 것이 대한의학회의 가장 큰 목표이자, 국민 건강을 지키는 길”이라고 말했다.
특히 그는 현장의 교육 부담과 재정 한계를 언급하며 “예전에는 전공의들이 병원의 노동력으로 간주됐지만, 이제는 그에 합당한 교육 투자가 필요하다. 이를 위한 재정 지원이 전제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대한의학회는 이 같은 문제의식 속에 ‘전공의 수련교육원’ 설립을 추진 중이다. 도 이사는 “전공의 수련과정 개발, 평가, 지도전문의 교육, 수련기관 인증 등 전반적인 수련 질 관리를 위한 상설 기구가 필요하다”며 “해외 선진 모델을 벤치마킹해 제도화하겠다”고 밝혔다.
또한 그는 “좋은 교육을 위해선 인식의 변화도 필수”라며, 여성 전공의의 임신·출산·육아 문제를 사회 전체가 책임지는 구조로 전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실제로 그는 인턴 시절 임신과 출산을 겪고 전공의 과정을 1년 미룬 본인의 경험을 언급하며, “육아는 여성만의 몫이 아니다. 남성 전공의들도 함께 육아에 참여할 수 있는 구조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한동우 대한의사협회 학술이사(강남세브란스병원 마취통증의학과 교수)는 전공의 수련의 질적 개선을 위한 구조적 개혁을 촉구했다. 한 이사는 “기존 수련 환경 평가는 병원의 외형적 인프라 여부에 치중돼 실제 교육의 질을 파악하기 어렵다”며, “수련 프로그램 개발, 평가, 피드백을 맡는 독립적 관리기구가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특히 그는 “지도전문의 확보만으로는 교육이 담보되지 않는다”며 “현 체계는 교육 실적이 교수 업적에 반영되지 않아 전공의 교육이 뒷전으로 밀리는 현실”이라고 지적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지도전문의 교육 시간 의무 배정과 교육 성과 평가 및 보상 체계를 도입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또한 현장의 수술실·병동 등 실무 수련이 교수 개인 역량에 좌우되고 체계화돼 있지 않다는 점도 문제로 꼽았다. 한 이사는 “전공의 스스로 학습 진도를 점검할 수 있는 역량 기반 평가 시스템 도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아울러 의료사고에 대한 법적 부담 완화와 수련 연속성을 보장하기 위한 병역 제도 개선도 강조했다. 한 이사는 “의료 사고에 대한 합리적 보상체계 마련과 함께, 수련 중 전공의의 입영 유예 및 제대 후 원 병원 복귀 보장이 절실하다”고 말했다.
이 같은 요청에 대해 보건복지부 방영식 의료인력정책과장은 “그간 상대적으로 주목받지 못했던 전공의 수련 문제가 이번 기회에 정책적으로 본격 개선될 계기를 마련했다”며 “정부도 이를 매우 중요한 과제로 인식하고 지속적으로 노력하고 있다”고 밝혔다.
방 과장은 수련 제도의 근본적 목표를 “의료 질을 높일 수 있는 실질적인 교육 과정”이라고 정의하며, 단순한 수련 시간 채우기 방식에서 벗어나 역량 중심 수련제도로 전환할 필요성을 강조했다. 그는 “이제는 특정 수련 기간을 단순히 이수하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필요한 임상 역량을 갖췄는지를 평가하는 시스템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밝혔다.
이어 최근 논란이 된 임신·출산, 육아 휴직 등 수련 중단 문제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그는 “과거에는 중단 없는 수련이 원칙처럼 여겨졌지만, 이제는 시대 변화와 수련자의 권리를 고려해 전향적인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며 “의료계 내부에서도 인력 운영 방식의 변화를 모색하고 병원 차원에서도 대체 인력 확보 등 구조적 전환이 병행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방 과장은 특히 정부가 관심을 두고 있는 분야로 필수의료 인력 배치를 꼽았다. 그는 “전공의가 꺼리는 과를 중심으로 인력 확보와 보상체계 개선, 의료소송 관련 제도 마련 등이 필요하다”며 “현재 국회에서도 여러 법안이 발의돼 논의 중”이라고 설명했다.
또한 전공의 수련 과정 중 발생할 수 있는 의료사고에 따른 사법 리스크에 대한 우려에도 공감했다. 한 참석자가 “실습 중 교수 지시에 따라 진료했음에도 소송에 휘말리는 전공의가 많다”고 지적하자, 방 과장은 “단순히 개인 책임으로 돌리지 않도록 법률적 보호 장치와 병원의 적극적인 지원 정책이 병행돼야 한다”고 답했다. 이어 “형사책임과 의료의 특수성을 고려한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며 국회 및 관련 단체와 협의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방 과장은 “현재 대한의학회, 수련병원협의회, 전공의협의회, 정부가 함께하는 수련협의체가 가동 중이며, 오는 9월 수련 개시 일정 전까지 수련 제도 및 운영 방안에 대한 집중 논의가 진행 중”이라고 전했다. 그는 “제도 개선은 의료계와 정부 간 협력뿐 아니라 입법과 예산을 수반하는 과제이므로 국회의 역할도 매우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