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기기 유통 불공정거래 심각하다

의료기기법 개정 정부·국회 차원 논의 필요
의료비 부담 완화-산업 지속가능성 고려 제도 개선 시급

[의학신문·일간보사]

김한&nbsp;<br>한국의료기기산업협회 유통구조위원회 위원장
김한
한국의료기기산업협회 유통구조위원회 위원장

국내 의료기기 시장은 연간 약 10조원 규모에 이르며, 기술 발전과 초고령화에 따라 지속적으로 성장하고 있다. 그러나 이처럼 성장하는 시장의 이면에는 의료기기 유통의 구조적 문제가 자리잡고 있다.

병원과 의료기기 공급업체(제조·수입업체) 사이에서 발생하는 불공정 거래가 고착화됐으며, 그 중심에는 간접납품회사(이하 간납사)라는 독특한 중간단계가 존재한다. 본래 간납사는 병원과 공급업체간 물류와 계약을 대행하며 유통 편의를 제공하는 것이 주역할이다. 하지만, 실질적으로는 병원 납품 권한을 위임받아 공급업체에 불합리한 조건을 요구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이는 의료기기산업의 생태계를 위협하며, 특히 중소기업이 대부분인 의료기기업체의 경영을 압박하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의료기기 불공정 유통구조= 국내 의료기기 유통 구조는 병원이 간납사에 납품을 위탁하고, 공급업체는 해당 간납사를 통해서만 병원에 제품을 공급하는 방식으로 운영되고 있다. 사실상 간납사가 병원과 공급업체 간의 거래를 좌우하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공급업체는 병원과의 직거래가 불가능하거나 극히 제한적인 상황에 놓여 간납사의 일방적인 요구를 수용할 수밖에 없는 현실이다. 결국 간납사는 우월적 지위를 갖게 되고, 다양한 형태의 불공정 거래가 생길 수밖에 없는 구조이다.

간납사의 불공정 행위는 결국 의료기기 공급가와 환자 의료비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악순환을 낳게 된다. 아래에서는 간납사 중심의 유통구조에서 지속적으로 발생하는 대표적인 불공정 사례를 들어보겠다.

△불공정행위 사례①: 물품대금 결제기한의 부당한 지연= 물품대금의 지급 기한이 일방적으로 연장 통보되고 있다. 실제로 A 간납사는 기존 3개월 내 지급하기로 한 대금을 상호 협의 없이 일방적으로 6개월로 변경해 통보했다. B 의료기관에 의료기기를 납품해 온 일부 공급업체는 1년이 넘도록 의료기기 대금을 받지 못한 채 운영되면서 경영상의 어려움을 호소하고 있다.

△불공정행위 사례②: 거래계약서 미작성= 거래계약서 미작성 사례 또한 빈번하다. 공급업체가 간납사와 서면 계약서를 작성하지 않고 의료기기를 공급하거나, 담보, 계약기간, 대금지급 기간 등이 명시되지 않은 물품공급 협약서(약식 계약서)를 작성하는 경우가 많다.

△불공정행위 사례③: 의료기기 물품 대금의 담보 미설정= 의료기기 공급업체와 간납사 간 의료기기 납품 대금에 대한 보증 또는 담보 설정이 이뤄지지 않는다. 이로 인해 간납사가 부도 처리될 경우 공급업체는 어떤 보호 장치 없이 손해를 고스란히 떠안게 된다.

△불공정행위 사례④: 과도한 납품가 할인 요구= 간납사가 중간 유통이익을 위해 과도한 납품가 할인을 요구하거나 간납사 간 수주 경쟁에서 발생한 할인 부담을 납품가 할인으로 요구하는 방식으로 공급업체에 전가하고 있다. 보험 상한가 내에서 이뤄지는 과도한 할인은 결국 간납사가 공급업체의 마진을 취하는 상황이 되는 것이다.

◇의료기기법 개정이 답이다= 이 같은 유통 구조의 불합리를 개선하기 위한 제도적 시도는 이미 있었다. 지난 21대 국회에서는 보건복지위원회 서정숙 의원이 ‘의료기기법 일부개정법률안’을 대표발의한 바 있다. 개정안은 간납사와 공급업체 간 표준계약서 체결을 의무화하고, 간납사의 불공정 행위에 대한 규제·제재 근거를 마련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또한 정부가 의료기관의 의료기기 구매 현황과 불공정 거래 등에 대한 실태를 조사하고 결과를 공표하는 조항도 포함돼 있었다.

그러나 해당 법안은 회기 종료로 폐기되며 제도 개선의 기회가 무산됐다. 실질적 피해가 발생하고 있는 불공정한 유통 구조를 개선하지 않고서는, 공급업체의 경영 불안정성이 커지고, 산업의 지속 가능한 성장을 저해할 수 있다.

따라서 의료기기법 개정은 시장 질서 회복과 유통 투명성 강화를 위한 중요한 과제로 검토돼야 한다. 의료기기 납품 전 간납사와 공급업체 간 표준계약서 체결 의무화, 실태조사 근거 마련, 행정 제재 장치 도입 등은 공정한 유통 생태계를 조성하는 핵심 조치이다. 법 개정을 통해 간납사 중심 의료기기 유통 구조의 투명성을 확보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

◇협회의 역할과 노력= 한국의료기기산업협회 유통구조위원회는 의료기기 유통구조의 불공정성을 해소하기 위해 지속적인 노력을 기울여 왔다. 간납사의 불공정행위에 대한 실태조사 요청, 의료기기 분야 표준계약서 제정 제안 등 민간 차원의 자율정화 노력과 정책 제안을 이어오고 있다.

그러나 이 모든 노력은 법적 뒷받침 없이는 한계가 있다. 제도적 장치 없이 시장의 자율만으로 불공정 행위를 바로잡기란 어렵다. 이제는 정부와 국회가 적극 나서야 할 때다. 현 상황에 대해 관심과 의료기기법 개정을 위한 정부와 국회 차원의 논의가 필요하다.
의료기기 유통의 공정성은 양질의 의료기기에 대한 접근성으로도 이어지며, 이는 국민 건강에 직결되는 문제이다. 단순한 상거래 문제가 아닌, 의료비 부담 완화와 산업 생태계의 지속 가능성을 고려한 제도 개선이 시급하다.

협회 유통구조위원회는 이 모든 과제를 실현하기 위한 제도적 해답으로서 의료기기법 개정을 추진하기 위한 노력을 지속해 나갈 것이다.
​​​​​​​<김한 한국의료기기산업협회 / 유통구조위원회 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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