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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격의료의 ‘parole’은 무엇인가?

스위스의 유명한 언어학자인 소쉬르(Ferdinand de Saussure)는 그의 저서인 ‘일반 언어학 강의(Cours de linguistique générale)에서 langue와 parole에 대한 개념을 언급하였다. ‘Langue’는 언어사회의 구성원들이 공유하는 일반적이고 추상적인 언어체계라면, 이것이 실제로 개개인의 언어생활을 통해서 발현되는 것이 바로 ‘parole’이라고 설명하였다. 소쉬르는 이론적 언어학을 설파함에 있어서 기호나 구조로서의 언어인 ‘langue’의 중요성을 강조하기 위해 두 단어를 사용하였지만 ‘구조주의’의 시기를 거치며 두 단어는 상호보완적인 관계를 되찾게 된다.

인문과학에 깊은 조예가 없는 필자 같은 사람에게는 ‘langue’와 ‘parole’은 ‘문자적 언어’와 ‘함의로서의 언어’로 단순히 해석된다. 인간사회에서 생산되는 수많은 언어들은 문자적 언어로 표현되지만 실제는 깊은 뜻과 의도가 포함되어 있는 ‘parole’로서 받아 들여지게 마련이기에 우리는 언어를 이해함에 있어 ‘langue’로서 뿐만 아닌 ‘parole’로서의 의미를 파악하는데 노력을 게을리 해서는 안 된다.

필자의 예상과 우려대로 정부는 지난 10월 29일 원격의료를 허용하는 ‘의료법 일부 개정안’에 대한 입법예고를 시행하였다. 정부가 내놓은 장황한 설명은 차치하고 ‘의료기관 접근에 대한 국민 편의성을 제고하고, 궁극적으로 국민의 건강 수준을 향상시키고자 함’이라는 내용에서 의료인이자 국민의 한 사람으로 큰 실망과 걱정이 앞선다. ‘langue’로서의 ‘원격의료’는 의료에 대한 편의성과 국민 건강 향상이라는 의미일지 모르지만 그 것을 내놓은 정부의 실제 ‘parole’은 너무나 무책임하고 위험한 의미가 아닐까 하는 의심이 앞서기 때문이다.

의료현장에서 벌어지는 일들은 방문, 진단, 처방 및 처치, 조제, 복약 그리고 사후 감시 등의 흐름에 따라 이루어지는 것이 일반적이다. 이 과정들 중 중요도와 위험도를 판단하라고 하였을 때 진단과 처방 및 처치가 가장 높다고 판단하는 것은 필자가 의사이기 때문은 아닐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과정 중 가장 신중하게 접근하여야 할 단계에서 편의성을 목적으로 ‘원격’이라는 불안정한 시스템을 도입한다는 것은 국민의 알권리를 위해 정부 비밀 문서부터 공개하자는 발상과 다를 바가 없어 보인다.

이미 원격의료에 대한 수많은 기사와 방송으로 인해 이를 주장하는 자들과 반대하는 자들의 논리는 널리 알려진 상태이다. 내가 바라보는 곳이 달의 앞면이냐 뒷면이냐에 따라 내가 상상하는 달의 모습도 달라지듯이 이미 서로 다른 곳을 바라보는 이들의 원격의료에 대한 판단은 접점을 찾기 어려워지고 있다. 그사이 의료민영화, 의료계 길들이기, 원격 진료 관련 기업 밀어주기, 장기적인 의료비 축소 정책 등 정부의 ‘parole’에 대한 의심의 눈초리는 커져가고 있다.

이제는 정부가 원격의료의 ‘parole’이 무엇인지에 대해서 명확히 밝혀야 한다. 시간이 지난 후 정부의 뜻대로 정책을 강행한 뒤 벌어진 문제들에 대해서 ‘그때는 이렇게 될 것이라 생각하지 않았다. 이러한 의도가 아니었다’라고 한다면 꽤나 벌어진 의료계와 정부와의 간극은 돌이킬 수 없을 것이다. 정부의 ‘parole’에 대한 솔직한 고백 만이 갈등으로 치닫는 최근의 상황을 안정시킬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문 영 선 (전남 고흥군보건소 공중보건의사)

이창우 기자  medicalnews@bo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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