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일, 보건복지부는 돌연 원격의료 도입에 관한 의료법 개정안의 입법예고를 연기한다고 발표하였다. 새 정부 출범 후 속도 조절 없이 원격의료를 강행할 것만 같았던 보건복지부도 의료계의 강한 반발이 못내 불편했던 것 같다. 그러나 이미 정부 최고위층의 확고한 의지가 천명된 만큼 입법예고의 시점은 그리 멀지 않은 것 같다. 잠시 시간을 번 의료계에서는 대책을 마련 하느라 분주하지만 주도권이 정부에 넘어간 것은 분명해 보인다.

새 정부는 출범 당시 ‘원격의료는 창조경제의 아이콘’이라는 모토 하에 원격의료를 통한 의료산업 활성화, 해외환자 유치, 일자리 창출이라는 거대한 경제적 청사진을 제시하였다. 물론 의료 취약지역을 위한 정책임을 강조하였지만, 의료의 문제는 오로지 복지의 관점으로 풀어야 한다던 그간의 정부의 태도와는 모순되게 경제적 시각으로만 부풀려진 문구들이라 걱정이 앞선다.

정부는 크게 의료산업의 활성화와 의료 취약 지역에 대한 보호 등을 원격의료 시행의 명분으로 내세웠다. 그러나 이 두 가지는 원격의료를 시행하기 위한 변명일뿐 필요충분조건은 아니다. 이유로 제시한 두 가지를 위해 필요한 것은 원격의료가 아니라 의료산업의 활성화를 저해하는 현 의료제도의 개혁 및 의료 취약 지역에 대한 공공의료의 확충이다.

먼저 의료산업의 활성화 측면에서 살펴보면, 대한민국의 의료시장은 정부의 과도한 개입과 통제로 인해 극도로 경직되어 있다. 환자의 치료에 대한 모든 지침이 정해져 있고 가격이 통제되는 시스템 하에서 시장경제적 원리가 거의 남아 있지 않기 때문에 발전하고 있는 것은 오로지 의료 기술뿐이다. 뒤에서는 통제의 굴레를 벗어나기 위해 고육지책으로 만들어진 각종 비급여에마저도 차디찬 칼날을 내밀면서 앞에서는 새로운 의료산업을 활성화 하겠다는 꼴이다.

의료계를 통제와 관리가 필요한 존재로 보는 정부가 원격의료 관련세력의 사탕발림에 넘어가 또 다른 실패한 국책사업을 양산 하려 한다. 정부가 의료산업 활성화를 진정 원한다면 의료시장을 좀더 탄력적이고 자율적인 환경으로 개선해주는 것이 첫째다. 그런 환경만 조성 된다면 정부가 발벗고 나서지 않아도 의료계가 먼저 대한민국을 세계 최고 수준의 의료산업 국가로 만드는데 앞장설 것이다.

의료 취약 지역의 보호측면에서도 원격의료는 설득력이 떨어진다. 의료 서비스의 성격상 환자가 있는 모든 지역에 원하는 수준의 의료서비스를 제공한다는 것은 연소득 10만달러의 국가가 되어도 실현 불가능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한민국은 전세계 최고의 의료 접근성을 가진 나라다. 섬마을 구석까지 보건기관이 들어가 있는 나라가 과연 지구상에 어디에 있겠는가? 행여나 이마저도 못한 지역이 있다면 환자의 안전을 담보하는 방향으로 공공의료를 확충하면 된다.

그러나 이에 투자되는 돈이 적지 않다 보니 가장 간편하고 생색내기 좋은 원격의료로써 그 자릴 메우려고 한다. 의료 취약 지역의 보호를 위한 것임에도 불구하고 의료사고나 오진의 가능성이 매우 높은 원격의료를 시행한다는 것은 아이러니한 발상이다. 진료란 시∙청∙촉∙타진을 통한 환자 파악에서부터 시작하는데 모니터를 통해 환자를 보고 진료하라고 한다면 그 가운데서 발생하는 모든 문제는 누가 책임 질 것인가.

대한민국의 의료는 저비용 고효율의 근간 하에서도 세계 최고 수준의 의료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세계 각국에서는 한국의료를 부러워하는데 이에 익숙한 국민들은 좀더 싸고 좀더 질 좋은 서비스를 원하고 있고 의료계는 각종 굴레에 신음하고 있다. 이럴 때일수록 정부는 수요자와 공급자의 요구에 민감하게 반응하여 이 시스템을 어떻게 잘 유지할 것인가를 골몰할 때이다. 섣부른 제도의 도입이 이마저도 붕괴시킬까 걱정하는 것이 기우일까? 애초부터 원격의료의 품격이란 공허한 환상이 아니었을까.

문 영 선 (전남 고흥군보건소 공중보건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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