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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들, 대리처방 거부해야

농번기의 농촌은 눈코 뜰 새 없이 바쁘다. 농부가 이 기간에 게으르면 일년 농사를 망치게 되므로 끼니는 거를지언정 농사일에 모든 시간과 노동력을 투입하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것이다. 따라서 이 기간의 농부들에게 매일 복용하는 고혈압약을 타러 보건기관에 가는 것은 시간 낭비일 수 있다. 그렇지만 매일 먹는 약을 먹지 않았을 때의 그 미묘한 불안감은 일의 효율을 떨어뜨릴 수 있기에 주변의 누군가라도 대신 보내 약을 타오게 마련이다. 꼭 내 부모나 가족이 농부가 아니라 할지라도 이러한 농부들의 마음을 이해하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다.

그러나 앞의 예는 가장 건전한 형태의 대리처방 중 하나일 뿐이다. 실제 의료현장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대리처방은 그 형태와 사유가 너무도 다양하다. 단지 대리처방이라는 커다란 타이틀만 같을 뿐 성격의 판이함은 5000만 인구의 다양함과 다를 바가 없다. 이러한 다양함에도 불구하고 실제 법적 테두리에서는 의사의 선의나 환자의 요구에 대한 고려보다 대리처방인지 아닌지 하는 이분법적 판단이 판결의 잣대가 될 뿐이다.

현행 의료법 제17조 1항에서는 ‘의료업에 종사하고 직접 진찰하거나 검안한 의사, 치과의사, 한의사가 아니면 진단서·검안서·증명서 또는 처방전을 작성하여’라고 하여 환자가 의사로부터 직접 진료를 보고 처방전을 교부 받는 것을 전제로 하고 있다. 처방이라는 의미 자체가 환자가 의사로부터 직접 대면을 할 것을 전제로 한 개념이기 때문에 원칙적으로 보호자가 대리처방을 받는 것은 허용되지 않는다. 다만, 보건복지부 고시나 유권해석은 대리처방을 허용하고 있고 대리처방이 가능함을 전제로 급여코드 등이 정해져 있는 등 실무상으로는 가능하도록 운용이 되고 있다.

상위법에서는 불법인 대리처방이 보건복지부 고시에서는 허용되는 이러한 법적 불완전성을 배경으로 하여 의료현장에서는 대리처방이 관행적으로 이루어져왔다. 그러나 이러한 관행적인 대리처방도 법원에서는 수차례 의료법 위반으로 처벌하였고, 공단에서는 진료비를 삭감하였다. 원칙적으로 대리처방을 불법으로 하여 환자들이 이를 요구하지 못하도록 하든지 허용 가능한 대리처방의 종류를 구체적으로 명시하여 이에 대한 혼란이 발생하지 않도록 하는 것은 세금을 받고 일하는 정부와 국회가 해야 할 일이다. 그런데 오히려 국민의 한 사람인 의사들로 하여금 불완전 법체계에 대한 결과를 책임지도록 강요하는 것을 보면 대한민국에서 의사는 국민의 하위개념이 아닌지 묻고 싶다.

현재까지 나온 판례 등을 종합해 보면, △재진의 경우에 한하여 △환자가 거동이 불가능한 상태로 △환자를 진찰하였던 의사가 △친 가족을 대리 상담하여 △처방하더라도 의학적으로 생명·신체·건강에 위험성이 없다고 판단되는 △동일한 질병에 대하여만 △대리처방이 허용된다고 볼 수 있다. 즉 법적으로 허용하는 대리처방의 경우는 매우 엄격하여 현실에서의 이루어지고 있는 대부분의 사례가 불법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제는 의사들 스스로가 불법인 대리처방을 거부해야 한다. 현행법으로 불법인데도 불구하고 의사들 스스로 이런 저런 이유를 대면서 대리처방을 하는 것은 다시 봐도 불법일 뿐이다. 의사들 스스로 대리처방을 거부할 때, 대리처방이 필요한 수많은 환자와 보호자들이 정부에 법적 보완을 요구할 것이고, 정부도 이에 귀 기울일 것이다. 수년간 의사협회나 의료계에서 이에 대한 보완을 끊임없이 요구하였지만 해결되지 못했던 문제도 국민들이 나섰을 때만 해결될 수 있다. 이제는 수십 년 간 이루어졌던 불법과 편법 사이에서의 위험한 줄타기를 끝낼 시점이 왔다.

문 영 선 <전남 고흥군보건소 공중보건의사>

이창우 기자  medicalnews@bo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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