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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에 대하여

병원선 공중보건의로서 내가 하는 일은 그다지 어려운 의료지식이나 복잡한 의술을 요하지 않는다. 배에 구비되어 있는 약품을 가방에 싸서 독거노인들을 찾아가 필요한 상비약을 드리고 오는 것이 전부다. 약이라고 해봤자, 혈압약, 당뇨약, 감기약, 소화제, 진통소염제, 파스, 무좀약, 후시딘, 대일밴드, 안티푸라민, 겔포스, 비타민, 칼라민연고, 행단, 엽산, 회충약 등이 전부다. 그 외에 전신이 아프다고 하시기 때문에 디클로페낙 계통의 진통소염제 근육주사를 놓는 것이 내가 하는 일의 전부라고 할 수 있다.

내가 만나는 독거노인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가장 많이 하시는 말씀은 "빨리 죽고 싶다. 아프기만 하고 죽지도 않고 이러고 있다"이다. 가끔 나에게 통증이나 증상에 대하여 물어보시지만, 구비되어 있는 약은 없고 검사가 필요한 경우에도 배를 타고 큰 병원에 가서 검사하시라고 말씀드리면 "그냥 죽어버리면 그만이다" 하며 육지까지 못 나가신다고 하신다.

병원선은 한 달에 한 번씩 돌아가며 섬을 찾아뵙는데, 3개월에 한 번 정도는 저번 달에 뵈었던 노인분이 안 보인다. 옆집에 물어보면, 한 달 사이 돌아가셔서 없다는 것이다. 내가 기록한 차트를 보면 얼굴도 기억나고, 어디를 아파하셨는지도 기억도 나는 그런 분들이다. 한번은 진료를 하러 한 할아버지 집을 방문차 문을 열었는데, 말 그대로 죽은 상태로 팔다리가 굳은 채 몇 일간을 누워계셨던 것 같다. 이웃집에서도 전혀 몰랐던 모양이었다. 침대에 적혀있는 메모지를 찾아 직접 아드님께 할아버지의 죽음을 전화로 알려드렸는데, 반응이 시큰둥하였다. 이웃 사람들도 반응이 미지근할 뿐이다. 예견된 일이고, 많이 봐와서 그런 건지 잘 모르겠다.

한 달에 한 번씩 찾아뵙다 보면 솔직히 곧 돌아가실 것 같다는 느낌이 드는 노인 분을 뵙곤한다. 수축기 혈압도 80이하로 떨어지고, 기력도 거의 없어 누워만 계시면, 속으로 '다음 달에는 못 볼 수도 있겠구나'라는 생각이 들곤 한다. 가끔은 할아버지나 할머니가 직접 "나 죽을 때 다됐지? 나 언제 죽어?"라고 물어보시기도 한다. 그럴 때면 할 말이 없어지면서 씁쓸한 마음으로 그저 바라볼 뿐이다.

아드님께 전화를 하면, 할머니는 "전화하지 말라, 그냥 놔두라, 이대로 죽겠다"라고 하신다. 대부분의 아드님들은 담담한 목소리로 "알겠습니다"하고 전화를 끊으시는데, 다음 달에 가보면 할머니, 할아버지의 몸 상태는 두 가지로 나뉘게 된다. 하나는 아드님이 병원에 모시고 가서 입원 후 기력을 되찾아서 오시는 경우이다. 정말로 죽다 살아난 것처럼 기력이 좋아지신 경우이다. 아무래도 영양상태가 나빠서 그렇게 기력이 없어진 경우이기 때문에 병원에서 영양공급만 충분히 해도 좋아지게 되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예견대로 한 달 사이 돌아가시고 안 계신 경우이다.

나는 할머니, 할아버지 집을 방문하면 벽에 걸려있는 젊었을 때의 사진을 꼭 눈여겨본다. 이제 막 자식을 출산하여 품에 안고, 손을 잡고 초등학교 졸업을 함께 기뻐했던 팔팔하고 기력이 왕성했던 30대의 할머니 할아버지의 모습과, 현재의 죽음을 얼마 남겨두지 않는 모습을 비교하면서, 세월의 무상함을 느끼곤 한다.

현재 30대인 나도 언젠가는 여기계신 할아버지, 할머니의 모습과 별반 차이 없이, 아파하며 죽음만을 기다리는 날이 올 것이다. 노인분들 말씀대로 인생은 짧고 세월은 쏜 화살같이 빠르기 때문이다.

현재의 내 모습은 영원하지 않다. 영원히 젊지 않으며, 영원히 건강하게 살 수는 없다. 영원히 살지도 못한다. 나뿐만 아니라 지구상의 사람 중에서 죽음을 피할 수 있는 사람은 단 한명도 없다. 예외 없이 우리는 자연의 법칙을 따라 언젠가는 죽게 되어있으며, 현재에도 죽음을 향해 가고 있다. 전신이 아파다고 하며 죽음을 얼마 남기지 않은 할아버지, 할머니의 모습은 곧 우리의 미래의 모습임을 느끼며,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오늘따라 돌아가신 할머니가 무척이나 그립다.

엄 재 두(경상남도청 공중보건의)

이창우 기자  medicalnews@bo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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