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의료계는 ‘사모님의 외출’이라는 프로그램 방영 이후 세간의 곱지 않은 시선 때문에 홍역을 치르고 있다. ‘갑’의 위치이자 흉악범인 환자에게 전문가인 의사가 허위 진단서를 써주었다는 것이 비난의 핵심인 듯 하다. 국민적 비난을 의식해서인지 의사협회는 부랴부랴 허위 진단서 작성이 의심되는 교수를 윤리위원회에 회부하기로 결정하였고, 해당 병원은 자체 감사를 통해 진실을 밝히겠다고 발표하였다. 그럼에도 많은 국민들은 의사들이 작성하는 진단서의 신뢰성에 대한 의심의 눈초리를 걷지 않고 있는 듯 하다. 의료계 일부에서 “이러한 비난은 대부분의 환자들이 본인에게 유리하도록 진단서를 써주기 원하는 것과 이율배반적인 태도”라고 말하는 것은 궁색한 변명으로 밖에 안 보인다.

정신건강의학과를 전공한 필자는 이번 사건을 지켜보며 범죄자에게 허위 진단서를 써준 것에 대한 공분을 느끼며, 동시에 진단서 작성에 있어 딜레마에 빠지는 것을 경험하게 되었다. 최근 지인이 필자에게 자녀의 결석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허위(?) 진단서 작성이 가능한지 여부를 문의하였기 때문이다. 물론 냉정하게 거절하였지만 이런 일을 종종 경험하기 때문에 사실 놀라운 일도 아니었다.

눈에 보이는 실험실 또는 영상의학적 검사 등을 통하여 환자를 진단하는 타과와 달리 정신건강의학과의 환자들은 본인이 호소하는 증상이나 가족이 관찰한 모습을 바탕으로 환자를 진단하고 치료하는 경우가 흔하다. 물론 심리검사, 신경인지검사, 뇌파검사 그리고 영상학적 검사 등이 타진단을 배제하거나 진단을 명확히 하는 것에 도움을 주기는 하지만 진단에 있어 절대적인 잣대가 되지 않는 경우가 상당히 많다. 오히려 환자가 실제 생활 속의 고통 받는 모습과 생활의 장애 정도가 가장 정확한 진단의 기준이 될 수 있다. 그러므로 의사가 개인의 생활을 감시하지 않는 한 정신질환을 호소하는 환자들의 진단과 치료에 있어 환자와 보호자의 말을 상당부분 신뢰할 수 밖에 없다는 한계는 명확하다.

바로 여기서부터 딜레마가 출발한다. 정말 괴로워서 도움을 요청하기 위해 온 환자의 경우에는 이러한 한계가 문제가 되지 않지만 의사에게 환자 증상의 진위여부 및 정도를 판단하도록 요청하는 경우에는 100%의 객관적인 평가를 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특히 이차적 이득을 노리고 환자와 보호자가 함께 거짓 내용을 말할 경우 의사가 그들의 진술의 신뢰성을 의심한다고 하여 거짓이라고 말하는 것은 너무 어려운 결정이기 때문이다. 아마도 이런 경우에서는 위에서 언급한 검사들을 토대로 현실과 타협하여 소극적 인정 수준으로 진단서를 써주게 되는 경우가 종종 발생할 것이다. 물론 이러한 진단서에 허점이 매우 많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다.

세간에는 병역기피자들에게 남은 마지막 보루가 정신질환이라는 말이 있다. 그만큼 정신질환은 거짓으로 연기할 경우 의사를 속일 가능성이 다른 질환보다 높다는 것을 의미한다. 필자도 전공의 시절 유명인의 병역기피가 의심되는 사례를 경험하였지만 환자와 보호자의 진술을 거짓으로 단정짓지 못했던 경험이 있다. 치료 상황에서 의사가 환자의 증상에 대하여 객관적으로 평가하려는 노력은 당연하지만 그것이 법적 또는 보험 등과 연계된 상황으로 갔을 때는 치료상황에서의 평가와 전혀 다른 것이 될 수 있다. 의도적으로 속이려 하는 환자에 대해 짧은 시간의 진료와 검사만으로 그 진위를 알아내도록 의사에게 책임을 강요하는 것은 너무 가혹하지 않은가.

의사는 환자와 보호자의 호소에 따라 검사 및 진료를 하고 의료의 영역에서 판단만 하면 좋겠다. 단 한 장에 불과한 의사의 진단서에 절대적인 권위를 부여하는 것은 의사와 환자 모두에게 부담이다. 충분한 진료기록과 치료과정이 없는 환자의 경우에는 환자나 보호자의 진술의 진실성을 사법당국 등이 추적 및 확인하여 이를 바탕으로 쓰여진 진단서를 객관적 평가주체가 종합하여 최종 판단하는 시스템을 추천하고 싶다. “너를 찾아 오는 환자를 의심하는 순간 그 환자의 어려움을 진심으로 공감하지 못하게 되어 적절한 치료에 이르지 못하게 될 것이다”라는 은사님의 말씀이 메모 속의 가르침으로 머물게 만드는 세상이 야속하기만 하다.

문 영 선 <전남 고흥군보건소 공중보건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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