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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직업인의 품격

지난 몇 주간 수족구병에 걸린 아이들이 끊이지 않았다. 동네 어린이집마다 비상이 걸렸었다. 연약한 면역의 아이들이여. 그런데 여러 날 피곤하다 싶더니 어른들에게는 흔치 않다던 그 병에 내가 걸리고 말았다. 진료실을 떠나 꼼짝없이 집에서 쉬면서 무슨 스트레스가 나의 면역체계를 이렇게 약화시켰을까 생각해보았다.

개원의사로서 의원 경영이 큰 스트레스였던 것 같다. 임대료와 직원 월급은 물가 따라 올라갔다. 그런데 수입은 오히려 줄었으니 속이 쓰렸다. 자녀들이 성장함에 따라 늘어나는 가사지출 역시 스트레스가 되고 있었다. 만악(萬惡)의 근원이라 불리는 저수가정책은 해결될 기미조차 안 보인다. 오히려 이 나라의 의료정책은 규제 만능주의로 가고 있다. 커다란 빚더미 한 짐을 지고 제도의 덫에 걸려있는 모양새다. 수입을 늘리기 위해 주6일 최선을 다해 진료를 보았다. 정부 정책과 의협 대책을 꼼꼼히 짚어가며 성토대회를 벌이기도 하였다. 그렇지만 억울하다는 생각에 화가 좀처럼 풀리지 않는다.

내 또래 의사들은 대부분 비슷한 이유로 짜증과 분노에 차있다. 제도의 뒷받침 없이 진료실에서 쉴 새 없이 일하며 진이 다 빠져버렸다. 흔한 뉴스 제목처럼 ‘고소득 전문직’으로 살고 싶었다. 하지만 고소득은 물 건너갔고, 정권이 바뀌어도 전문성을 훼손하는 정책들이 계속 나와 갑갑하기만 하다. 그래서인지 돈벌이로 프로포폴을 불법 투약한 의사, 중국인들에게 허위진단서로 비자장사를 한 의사, 거액의 리베이트를 챙긴 의사들의 기사를 접하면 분노와 실망을 느끼는 동시에 측은지심이 생기는 것도 사실이다. 생활인인 그들도 얼마나 돈이 필요하고 갖고 싶었을까. 다들 받는 관행이니 챙기라는 제약사의 권유가 얼마나 솔깃했을까가 현실적으로 상상이 간다.

그러나 쉽게 변하지 않는 제도를 성과 없이 탓하며 스트레스만 받다가 병에 걸린 내 모습과 범죄자로 전락해 버린 의사들을 보면서 생각했다. 만악의 근원은 저수가정책이 아니라 결국 ‘돈을 사랑함’이기 때문이리라.

돈을 사랑하여 전문직, 특히 의사의 길을 가겠다고 마음먹은 이들이 있다면 이후로도 심각한 스트레스에서 자유롭지 못할 것이다. 전문직의 개념이 바뀌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노력을 덜하고 능력이 모자라서 예전 의사들처럼 돈을 못 버는 것이 아니라 시대가 그렇게 변하였다. 부동산으로 돈 벌기 힘든 시대가 온 것처럼 전문직이 더 이상 고소득자로 거론되지 않는 시대가 온 것이다. 이젠 전문직을 정의할 때 ‘high income’과 ‘high social status’ 항목은 없어졌다고 한다. 통상 전문직의 위상이 떨어졌다고 할 때 다른 건 참아도 수입이 떨어지는 것은 못 참았던 일부 전문인들이여. 수입증진을 위한 꼼수부리기보다는 조금 검소한 라이프스타일로 바꾸는 것이 훨씬 건강에 도움이 될 것이다.

우리가 의사로서 전문직업성, 즉 프로페셔널리즘을 논할 때 애초부터 수입에 대한 항목은 없었다. 거기에는 전문직에서의 책임감, 전문적 능력, 환자에 대한 정직, 의료접근성의 개선, 정의로운 분배, 과학적 진보에 대한 노력 등이 있다. 이에 따르는 대가로 적절한 수입을 보장받은 것이다. 그러기에 전문직 위상의 하락을 돈에 집중하여 생각한다면 그들 앞엔 추락만이 남을 뿐이다. 그러나 전문직업성의 본질에 초점을 맞출 때에 의사들의 품격은 높아질 것이다.

나의 정신 건강을 위해서, 불만을 가득 내뿜으며 의료제도를 비난하는 일은 의협에 맡기련다. 나는 좀 더 지혜로운 돈 관리에 신경을 써야겠다. 집에서도 아빠처럼 의사가 되고 싶다는 아이에게 스트레스 없는 품위를 보여주고 싶다. 그리고 이런 시대를 사는 의사로서 문제의 의사들을 퇴출시키는 일에 동참할 것이다. 작은 법규조차 지키지 못하는 당신들을 얼른 도려내고 나서야 우리들이 품위 있게 의료제도를 운운할 수 있겠기 때문이다.
문 지 호 원장 <명이비인후과 공동원장, 의료윤리연구회 운영위원>

이창우 기자  medicalnews@bo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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