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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보의칼럼] 병원선 공중보건의

나는 경상남도에 소속된 공중보건의사이다. 올해로 2년차에 접어들었으며, 나는 경상남도 통영시에 있는 동호항으로 출퇴근을 한다. 항구에 있는 병원마크가 새겨진 배가 나의 출근지이다. 7명 정도의 선원과 의사 2명, 한의사 1명, 치과의사 1명, 간호사 3명으로 이루어진 조촐한 팀이 우리의 한식구이다. 우리는 경남병원선 511호 배를 타고 경상남도 50여개 섬으로 1년에 대략 3000명 정도의 섬주민들을 진료하러 다닌다. 하동에서부터 사천, 남해, 고성, 통영, 거제, 마산, 진해의 주변섬까지 의료취약지를 돌아다니며 진료를 본다.

우리가 다니는 곳은 의료취약 지역이라서, 섬주민들은 대부분 연세가 70이 넘으신 독거노인이다. 60세 이하의 섬주민을 찾기가 힘들 정도로 노인인구가 대다수이다. 도시에서의 물질문명에서 살아왔던 나로서는, 공중보건의사의 임무로 시작된 섬에서의 진료업무는 나에게 하나의 쇼크였다.

내가 진료다니는 섬에는 50세 이하의 젊은 사람은 거의 없으며, 육지와 비교하여 삶의 질은 너무 떨어져보였다. 대부분이 독거노인들이었고, 과연 사람이 살 수 있는 곳인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살림은 형편 없어 보이는 곳도 많았다.

경상남도의 만지도라는 섬에는 김 아무개라는 할머니가 계셨다. 그 할머니도 섬에 계시는 대부분의 할머니처럼 독거노인이었다. 연세는 80이 훌쩍 넘으셨고, 눈과 귀가 멀어서 혼자서 사시는게 불가능하였지만, 누구 하나 돌봐주시는 분이 없었다. 집과 마당에는 음식 쓰레기를 비롯한 여러 쓰레기가 널부러져 있었고, 수백마리의 똥파리가 할머니와 마당을 자기 집 다니듯이 마구 날아다녔다. 사람 것인지 동물 것인지 알 수 없는 분변도 치워지지 못한 채 여기저기 그대로 있었다. 현관에 들어서기 전부터 오물냄새로 들어가기가 매우 힘이 들었다. 할머니는 대소변을 본 속옷과 이불에 대해서도 빨래를 전혀 하지 못하시고, 방안에 그대로 두고 있는 것 같았다. 이웃사람들에게 물어봐도 그 할머니는 답이 없다는 식의 체념어린 얼굴로 대답을 하셨고, 방안 메모지에 적혀 있는 아드님의 휴대전화로 전화를 해봐도 퉁명스럽게 전화가 곧 끊어지기를 반복했다. 영화에서도 설정된 상황으로 보이는 이러한 상황에서도 나만 놀라서 어떻게 해야할 지 여기저기 물어다니면서 고민하였지만, 이전부터 보아오던 이웃주민들은 신경쓰지 말라고 오히려 나를 위로하면서 그냥 가라고 하였다.

나는 통영근처의 요양원에 모시는 방법이 없을까 하여, 금액을 알아본 뒤, 친구들에게 미리 도움을 요청하고, 금액을 모아 우리 힘으로 할머니를 요양원에 모시려고 하기도 하고, 할머니의 아드님에게도 수차례 전화를 하였다. 우여곡절 끝에 3개월 뒤, 아드님이 할머니를 통영에 있는 요양원으로 모시고 갔다는 소식을 듣고 속으로 참 잘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도시의 물질문명에서 사치와 향락에 젖어 사는 우리들은 자기자신과 우리의 아이에게는 소비로부터 비롯된 풍족한 삶을 누리게 하기위해 온갖 노력을 다하고 있지만, 정작 우리를 나아주고 키워주신 부모님과 타인의 부모님에게는 인색하게 대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 보았다. 나부터 우리 부모님에게 잘하고 있는지 반성하게 되었다.

우리도 언젠가는 늙고, 병들고, 죽는 것은 피할 수 없는 문제임을 마음속에 가지고 살아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늙고, 병들고, 통증이 심하여 죽기만을 기다리는 노인들은 곧 나의 미래이며, 우리의 미래와 다르지 않다. 생명의 탄생도 중요하지만, 생의 마지막도 존중되어야 한다. 나의 부모님을 비롯한 이 시대의 노인분들이 생의 마지막을 평온하게 정리하고 평화로운 삶을 완성하고 떠나실 수 있게 관심을 갖고 노력하는 사회분위기를 꿈꾸어 본다. 엄 재 두(경상남도청 공중보건의)

이창우 기자  medicalnews@bo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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