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건의료 대표 뉴스 - 자매지 일간보사
의학신문
상단여백
HOME 기획연재 이명진 원장의 의료와 윤리
죽음의 경사 길로 밀지 말라
이명진 명이비인후과의원장

2012년 10월 정말 어처구니없는 비윤리적인 사건이 대한민국에서 벌어졌다. 대한병원협회와 국민건강보험공단이 국민의 건강과 생명을 지켜야 할 본분을 잊어버리고 국민의 생명을 담보로 수가 협상을 한 것이다. 지난 10월 18일 건보공단과 병원협회가 2013년 병원수가를 2.2% 올려주는 부대조건으로 체결한 부대합의문을 보면 ‘협회는 만성질환 예방 및 무의미한 연명치료 중단 등 국민운동을 전개한다. 단, 목표지표를 설정하고 그 성과에 대한 별도의 인센티브를 고려할 수 있다’고 나와 있다. 너무 어이가 없고 부끄러운 합의문이다.

이 소식이 알려지자 각계에서 윤리적 비난이 쏟아졌다. 선진통일당 문정림 의원은 복지부 국정감사에서 “국가는 환자나 환자 가족이 다른 이유가 아닌 경제적 사정으로 인해 치료 중단을 선택하지 않도록 보호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연명치료 과정에서 발생하는 의료비 부담을 줄일 의도로 치료 중단을 유도하는 것은 헌법 제10조에 따른 국가의 생명 보호 의무를 저버리는 것”이라고 강하게 질타했다.

수가협상 부대조건이 생명윤리 시비로 번지자 병원협회는 부랴부랴 진화에 나섰다. 병협은 “무작정 연명치료를 중단하자는 게 아니라 노년기 등 생전에 사망 직전의 치료 계획을 주위 사람과 의논하고, 효과 없는 연명치료는 포기한다든지 하는 의사를 밝히는 수준”이라고 해명했다.

그런데 해명의 내용을 보면 무엇이 잘못된 것인지 도무지 핵심을 알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윤리적으로 무지한 담당자들이 생명을 담보로 흥정을 한 것이다. 연명치료 중단이라는 행위의 주체는 무엇보다도 환자자신이고, 환자의 자기결정권에 의한 것이 전제되어야만 한다. 이 과정에서 병원운영의 이익을 얻기 위해 연명치료 중단을 유도하는 비윤리적 이해상충(Conflict of Interest)문제가 개입되어서는 절대로 안 되는 것이다.

특히 이번에 노출된 이해상충 문제에는 병원협회의 운영자들이 의사들이기에 더더욱 문제가 심각한 것이다. 2.2%의 수가를 더 받기 위해 환자의 연명치료중단을 유도한다는 것은 윤리적 문제를 넘어 국민에 대한 범죄행위다. 아마도 협상에 관여했던 분들은 이런 심각한 문제에 대해 좀더 진지한 고민을 했어야 했다. 공인으로서 중대한 자질문제와 문제점이 노출됐다.

역사적으로 연명치료 중단이나 안락사가 정책적으로 남용될 때 나타나는 부작용은 너무나 크다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특히 환자의 자기결정권(자율성)을 침해하는 정책들은 생명경시 풍조를 당연시하는 무서운 결과를 가져온다. 타인에 의한 임의적 판단으로 자기표현을 하지 못하는 환자들에게 안락사나 연명치료중단이 쉽게 결정될 소지가 있다. 의사표현을 못하는 환자들이나 힘없는 환자들이 마구 죽어 나갈 수 있다.

역사적으로 나치들이 저질렀던 인종정책은 타인에 의한 결정으로 인권과 생명이 무시된 전형적인 사례다. 뉘른베르그의 전범 상담소장으로 있었던 정신과 의사 레오 알렉산더는 나치들의 인종정책에서 출발점이 되었던 것은 ‘살 만한 가치가 없는 삶이 있다’라는 안락사와 관련된 전제를 받아들였던 것이라고 한다. 이 전제는 초기에는 단지 질병하고만 관련이 있었으나, 차츰 “사회적으로 생산적이지 못하고, 이데올로기적으로나 인종적으로 바람직하지 못하며, 마지막으로는 게르만족이 아닌 사람들을 포괄하게 되었다”라고 했다.

우리는 역사적으로 미끄러운 경사길을 이미 경험했었다. 안락사나 연명치료 중단이 사회적 합의나 소통이 없이 경제적인 목적이나 독선적인 정책에 이용될 때 이런 심각한 부작용을 가져 올수 있다. 생명의 존엄함을 무시하고 돈만 얻기 위해 저지른 비윤리적 행태를 강력히 규탄하고 싶다. 병원협회 담당자와 공단 협상 담당자들은 환자들을 죽음의 경사 길로 밀어 떨어뜨릴 뻔 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이제라도 관련자들은 무엇이 잘못된 것인지 스스로 밝히고 공개 사과해야 한다. 또한 재발 방지를 위해 엄중한 책임을 물어야 할 것이다.

이창우 기자  medicalnews@bosa.co.kr

<저작권자 © 의학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창우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여백
여백
포토뉴스
여백
여백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