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학신문·일간보사=정윤식 기자]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힘들고 부조리한 현실과 충돌했지만 그 환경이 변하지 않을 것이라 생각하고, 그 환경이 미래를 결정하기 때문에 ‘포기’와 ‘순응’이 ‘미덕’이 되기도 하는 세상이다.

특히 과거에 이미 형성된 환경 안에서 살아가는 젊은 세대들은 간혹 ‘내가 아무리 노력하고 발버둥 쳐도 변하는 것은 없을거야’라는 생각을 하게 되는데 이는 의료계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지난 17일 한국보건의료인국가시험원은 2019년도 제83회 의사실기시험부터 응시자가 응시한 12개 문항의 각 항목명, 항목별 합격여부와 취득점수를 공개하겠다는 보도자료를 배포했다.

당연하게도 주요 포털사이트에서 ‘국시원’을 검색하면 해당 보도자료 내용이 다수 검색됐고 언뜻 보면 국시원이 의대생들을 위해서 실기시험의 대대적인 변화를 자체적으로 이뤄낸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이는 반은 맞고 반은 틀린 말일 수 있다. 국시원의 이 같은 변화 속 이면에는 ‘젊은 의사’ 그것도 의대생들의 약 8개월간에 걸친 긴 행정소송이 존재했다. 과정은 이러하다.

대한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학생협회(의대협)는 그간 국시원에 실기시험 성적표 공개 및 현황 파악을 두고 수차례 질의 한 바 있다.

하지만 국시원은 의대협에게 ‘내부 지침상 공개 불가’라는 답변을 내놓으며 거절 해왔다.

2018년이 되어 일부 의대생들은 국시원에 재차 실기시험 정보공개를 청구(3월 23일)했고 국시원은 이를 다시 거부(3월 29일)했다.

결국 이 의대생들은 국시원의 ‘정보공개청구 거부’를 두고 행정소송(정보공개거부처분취소) 소장을 제출(5월 9일, 서울행정법원 2018구합641139)하고, 국시원에 소장이 도달(6월 29일)한다.

이후 국시원은 돌연 실기시험 항목별 통과여부를 공개하기로 결정(7월 4일)한다. 우연의 일치겠지만 소장 도달 5일 후인 절묘한 타이밍이다.

의대생들은 여기에서 멈추지 않고 합격과 불합격 통지 방식만으로는 무엇을 틀린지 알 수 없으니 응시자의 점수 및 OSCE 체크리스트가 추가 공개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1차 기일과 2차 기일이 9월에 진행되고 핵심쟁점 관련 참고서면이 제출(10월 5일) 된 후 서울행정법원은 “원고의 주장을 받아들여 국시원은 항목별 응시자 점수는 공개하지만 OSCE 각 항목별 체크리스트 공개에 대해서는 이유 없다”고 판결(10월 12일)했다.

이후 국시원은 최종 판결 5일 후 또 한 번의 절묘한(?) 타이밍으로 ‘응시자가 응시한 항목명과 각 항목별 합격여부 및 항목별 취득점수 공개한다’는 제목의 보도자료를 배포한다.

의대생들의 국시원을 상대로 한 소송은 계란으로 바위를 치는 일이었지만 이들은 ‘아무것도 하지 않지’ 않고 ‘무엇인가(계란 던지기)’를 했다.

결국 최종 판결 내용은 의대생들에게 절반의 성공을 안긴 셈인데 즉, ‘무슨 일’인가 일어났으며 계란은 ‘삶은 계란’이었다.

국시원이 의사 국시 실기시험 성적 공개 방식을 변화시키겠다고 발표한 것이 100% 이번 행정 소송 때문이었는지 아니면 본래 계획된 것이었는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오랫동안 실기시험의 문제점을 지적한 의대협과 많은 의대생들, 그리고 이들을 뒤에서 지원한 다른 젊은 의사 단체인 대한전공의협의회의 영향이 전혀 없었다고는 할 수 없을 것이다.

최근 의료계에서 젊은 의사들의 행보와 적극성은 놀랍다. 이번 국시원과 의대생들의 행정 소송과 실기시험 결과 발표 방식의 변화 또한 ‘아무 일이라도 해야 무슨 일이라도 일어난다’를 보여준 사례가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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