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계, 정신질환자 제때 치료 못받는다 '시행전 개정'
정부, 민간 정신과의사 투입 2인 진단 강행 '시행후 보완'

정신질환자의 비자의(강제) 입원 절차를 까다롭게 하는 골자의 '개정 정신보건법'을 둘러싼 의료계와 정부간 입장차가 여전히 현격한 것으로 확인됐다.

의료계는 이번 개정 정신보건법이 정신건강의학 전문가들의 의견을 충분히 반영하지 않은 문제투성이라며 시행 전 개정을 주장한 반면 정부 측은 일부 보완을 통해 강행할 의지를 분명히했다.

개정 정신보건법 토론회가 16일 오후 국회도서관에서 열렸다

다만 강제입원 조건인 자타해 위험 판단기준과 관련, 하위법령에서 융통성을 발휘할수 있다는 의견을 제시해 주목된다.

16일 오후 국회도서관에서 열린 '개정 정신보건법 문제점과 재개정을 위한 토론회에서 대한의사협회(의협), 대한신경정신의학회 등 의료계는 개정법이 시행되면 적절한 치료를 받지 못하는 정신질환자들이 환자 본인 또는 일반국민들에게 테러리스트가 될수 있다며 우려를 표명했다.

김태영 의협 의무이사는 "정신질환자의 치료 일선에서 매일 환자의 입원을 결정하고 치료하는 정신건강의학과전문의의 의견이 충분히 반영되지 않은 개정 정신보건법은 더 큰 혼란과 해악을 가져올 수밖에 없다는 것은 누구든 예상할 수 있는 일"이라고 주장했다.

김 이사는 "오는 5월 30일 개정법 시행 전에 반드시 개정돼야 하며, 시행 전 개정이 불가능하다면 시행 즉시 개정안이 발의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박성혁 대한정신건강의학과봉직의협회 대표는 현재도 격무에 시달리는 정신병원 의사들이 '정신질환자 입원 치료여부 판단시 공공병원 정신과 의사 1인을 포함해 2명의 진단이 필요한 '2인 진단업무'까지 더해진다면 해당병원 입원환자에 대한 치료의 질이 저하될게 분명하다고 우려했다.

박 대표는 "현재 만성 정신의료기관인 경우 법정 최소인력의 전문의만 고용하고 있는 상태로 해당 병원의 전문의들은 1인당 약 60명의 환자를 담당하고 있어 환자 1인당 받는 정신치료 서비스의 질을 높게 유지하는 것이 불가능한 실정"이라고 전했다.

이런 상태에서 전문의들에게 2인 진단업무가 추가되면 치료의 질 저하 문제는 매우 심각할 것이라는 것.

그는 "정신과는 다른 어느 과보다 환자-치료자의 관계가 중요시 된다"며 "단순한 약물치료만이 아니라 환자와 나누는 대화, 감정에의 공감, 새로운 대인관계 경험의 제공 등이 치료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많은 정신과 전문의들은 되도록 많은 시간을 환자와 보내려 노력하고 있다"고 부연했다.

박형욱 변호사(단국의대 인문사회의학교실)는 이번 개정 정신보건법의 개정 단초가 된 헌법재판소 결정이 '기한의 재량'을 인정하고 있다며 국회와 정부가 우리 현실에 맞는 법률을 만들 것을 주문했다.

박 변호사는 "실효성이 담보되지 않은 많은 규정이 자꾸 추가되고 누적된다. 현실에서 정신질환자의 인권을 실효적으로 담보해주지 못하면서도 불필요하게 과도한 규제가 쌓이고, 그 틈에서 의료인들은 인권침해의 주체로 매도되는 상황까지 몰릴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런 총체적 규제의 정도를 이해하지 못하고 개별적으로 접근하면 규제의 합은 과도하게 늘면서도 정신질환자의 실효적인 인권보호가 어려울 수 있다"며 "실제로 헌재 결정문을 보면 헌재가 비자의 입원 요건의 총체적인 규제의 정도를 고려하면서 개별적인 요건의 문제점을 다룬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며 보건복지부 역할론을 요구했다.

박 변호사는 "헌재가 헌법불합치결정을 내리면서도 입법개선이 이루어질 때까지 현행 법률을 잠정적용할 것을 명하고 기한을 명시하지 않았다는 점을 유의해야 한다"며 "헌재는 국회와 보건복지부에게 '기한의 재량'을 인정하고 우리 현실에 맞는 법률을 만들 것을 주문한 것으로 보인다"고 해석했다.

의료계와 법조계 입장에 대해 정부 측의 차전경 보건복지부 정신건강정책과장은 사법심사제도 도입에 공감하는 등 일부 융통성을 보였으나 부족한 정신과의사의 인력을 보강하는 등 개정법 시행 의지를 분명히했다.

차 과장은 "사법심사 도입에 대해서는 정부 입장도 같다. 법 시행 후 인프라가 깔리면 추후 논의해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며 "작년에 발표한 정신보건법 청사진에 담겨있고 그에 따라 논의해가려고 한다."고 밝혔다.

차 과장은 또 "강제입원 요건에 대해 고민은 많다. 자타해 위험이란 해석은 기본적으로 의료진의 판단이다. 다만 자타해 위험은 시행규칙으로 어느 정도는 보완을 했다"고 밝혔다.

차 과장은 민간 정신과의사 동원과 관련, "인력확보는 그 냥 될 수 있는게 아니라 행자부와 긴밀히 노력 중이다. 최대한 인력을 확보해서 국공립에 서 최대한 커버토록 하는게 일단 목표다."라고 말했다.

그는 "국공립병원이 전체의 3%밖에 안되니 국공립으로 100%를 채울 수는 없다. 단계적으로 늘려나가겠지만 당장은 어렵우니 민간에 협조를 부탁하게 된 것"이라고 밝혔다.

의료계가 공공병원 정신과의사가 부족하니 민간병원 의사를 '2인 진단'에 투입하겠다는 발상이라며 비판하고 있는데 대해 아랑곳 하지 않고 민간 인력투입을 강행하겠다는 의지를 보인 것이다.

차 과장은 "2차 입원진단시 민간의사가 소송을 당하거나 폭행을 당하는 경우도 있을 수 있다"며 "법적 문제들을 다 정리하고 문제가 없도록 자문단을 구성하거나 여러 방법을 고민 중"이라고 밝혔다.

이날 공청회에는 정신장애인가족협회 등 관련단체에서도 토론자로 참여해 정신장애인 가족들의 현안을 전달하고 개선을 요구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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