政, 현장 부담 최소화 위해 최대 노력 강조 반복…醫, ‘혼란 없기를 바라지만 혼란 불 보듯’ 염려 여전

개정 정신보건법의 시행(5월 30일)이 일주일 앞으로 다가온 가운데 의료계는 걱정을 넘어 체념하고 있는 분위기다.

의료기관은 물론 지역사회에서도 개정 정신보건법 대비를 완벽히 갖추지 못하고 있어 시행 후 환자 대거 퇴원조치 등의 혼란이 예상됨에도 현재로서 의료계는 이를 바라보고만 있어야 한다는 답답함이 투영된 것.

보건복지부는 23일 ‘정신보건법 개정 배경 및 정신건강복지법 주요내용’을 담은 설명자료를 배포했다.

그동안 의료계와 지역사회가 꾸준히 제기하고 지적해 온 문제점들과 의문점에 대해 문답 형식을 빌린 자료다.

앞서 대한신경정신의학회를 비롯한 정신의료기관협회, 봉직의협의회, 환자단체 등 관계자들은 개정 정신보건법 논란이 수면위로 떠오르면서 현실과 동떨어진 법이라는 점을 지속적으로 지적했다.

이에 지난 3월 복지부는 ‘정신보건법 시행령 및 시행규칙 개정안 입법예고’에서 논란이 된 ‘강제입원 시 각각 다른 의료기관 전문의 2명의 소견이 필요하다’는 조항에 불가피한 경우 1회에 한해 연장을 가능케 하고 판정의사 파견 의료기관 기준도 민간의료기관의 참여가 가능토록 완화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의료계 관계자들은 정신보건법 모법 자체의 개정과 인프라 구축, 재정 확보, 시뮬레이션 가동 등의 대책 없이 실시되는 법으로 인한 사회적 혼란은 ‘불을 보는 것처럼 뻔하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이를 의식한 듯 복지부는 배포자료를 통해 법 시행 후 정신질환자가 사회로 쏟아져 나온다는 우려에 ‘그렇지 않다’며 제도 변화로 인한 현장 부담을 최소화하기 위해 최대한 현장 의견을 수렴해 반영토록 노력 중이라고 밝혔다.

국립정신건강센터의 전문의 증원(16명)이 현재 공고 중에 있으며 이들이 모두 채용될 경우 수도권 지역의 대부분을 담당할 수 있고 정신건강증진센터 및 사회복귀시설 확충, 정신장애인 토탈케어 서비스 전국 확대, 지역사회 적응을 위한 중간집 확충 등 지역사회 인프라를 확대해 나가겠다는 것.

즉, 법을 일단 시행하고 점진적으로 제도를 보완한다는 방침으로 해석된다.

■ 보건의료계 관계자들, "우려가 현실이 될 것이 당연한 것이 걱정..." 한목소리

하지만 의료계 관계자들은 정부의 지나친 낙관론과 불도저식 강행에 우려 섞인 목소리를 냈다.

A대학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이번 개정 정신보건법에 대학병원이 가장 영향이 적을 것이고 관심도 없을 것이라는 이야기가 있지만 그렇지 않다”며 “결국 대학병원이 조기 정신병에 대한 발견과 치료, 정신질환의 근본 문제에 대한 해결책을 위해 해야 할 역할이 있는데 정신과의 입지는 점점 줄어들어 원동력을 잃어버리게 될 것”이라고 염려했다.

그는 이어 “엎질러진 물은 절대 다시 담을 수 없듯이 일단 법이 시행되고 나서 생기는 문제점들을 어떻게 해결할지 걱정”이라며 “충분한 논의 없이 ‘일단 해보자’는 식의 방식은 분명 잘못됐고 결국 피해는 환자, 책임은 의사에게 쏠릴 것”이라고 강조했다.

수도권소재 정신병원 B병원장은 환자들이 탈원을 넘어 진정한 탈수용화가 되기 위해서는 병원중심의 사회적응 훈련을 할 수 있도록 돕는 제도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B병원장은 “환자들이 퇴원을 많이 하는 것은 좋지만 퇴원 후에 가족들이 부담을 이기지 못해 다시 병원에 입원시키거나 특정 시설로 환자를 보내면 법 취지에 어긋난다”며 “정신보건센터가 모두 감당 할 수 없기 때문에 환자를 잘 아는 치료받던 병원에서 재활치료 서비스를 받을 수 있도록 하는 제도적 시스템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또한 그는 “여러 가지 방법으로 강제입원을 어렵게 해 인권을 존중하려 한다고 하는데 모법 자체에서 의사도 없고 인력도 병원과 현격한 차이를 보이는 정신요양시설로 강제입소 하도록 하는 부분은 반드시 개선돼야 한다”고 피력했다.

지방의 C보건소장은 개정정신보건법이 시행되는 30일 이후 많은 환자들의 탈원화를 감당할 여건이 보건소에 전혀 마련되지 않았음을 토로했다.

그는 “복지부의 답답함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지만 전체적인 예산이 너무 적고 건강증진센터의 경우 시설지원이 전혀 없다”며 “임대를 하든지 보건소 안에 설치를 하든지 독립건물을 짓든지 하라는 식으로 지자체에 떠넘기고 있는데 이 때문에 전국 보건소는 현재 비상상황”이라고 언급했다.

그는 이어 “복지부가 지속적으로 협조요청을 하고 있지만 준비가 전혀 안되어 있고 지원도 없는데 협조 부탁을 어떻게 들어 주는가”라며 “사회적으로 정신보건에 대한 인식이 낮은 상태에서 현장의 실정을 전혀 모르고 시행하는 정부는 책임을 피할 수 없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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